그리스로마신화보다 더 재밌는 <우리 신화 이야기>

극단 우금치가 선사하는 환상적인 우리식 마당극

등록 2008.04.06 12:26수정 2008.04.0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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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서쪽나라 개비랑국의 왕과 왕비가 늦도록 자식이 없자 옥황상제께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정안수를 떠 놓고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때 홀연히 삼신할매가 나타난다.

 한지등, 한지꽃, 연꽃 등등...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여 우리의 신화세계를 동화책 보듯 신비하고 재미나게 재구성한 '우금치'극단의 '우리신화이야기'
한지등, 한지꽃, 연꽃 등등...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여 우리의 신화세계를 동화책 보듯 신비하고 재미나게 재구성한 '우금치'극단의 '우리신화이야기'조우성

삼신할매:  지금 뭐하는 것인지 알어? 예쁘고 착한 아기 하나 점지 해달라고 치성을 들이는 것이여. 이 세상의 생명이 저절로 제 맘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여. 하늘에 빌고, 땅에 빌고, 산에 빌고, 물에 빌고, 나무에 빌고, 바위에 빌고 또 빌고 지극정성으로 빌어 그 정성이 쌓이고 쌓이면 그제서야 부모님의 몸으로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여. 그렇게 소중하고 귀하게 태어난 생명이 바로 여기 모인 사람들이지. 알겠어요?
아이들: 알아요~


근데 어디서 “몰라요”라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뒤이어 새어나오자 관객들은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관객들과 같이 웃고 호흡을 함께 하기 위해 연주단을 무대안으로 들이고 소품을 배우들이 직접 들고 움직이고, 이동식 무대로 마당극을 연출했다.
관객들과 같이 웃고 호흡을 함께 하기 위해 연주단을 무대안으로 들이고 소품을 배우들이 직접 들고 움직이고, 이동식 무대로 마당극을 연출했다.조우성

국내 최고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대전의 민족예술단 ‘우금치’가 사랑방에서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우리 민족 고유의 신화세계를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마당극 <우리 신화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요즘 아이들은 서양중심의 교육을 받고 자라서 그리스로마신화는 알아도 정작 풍부한 상상력과 철학이 담긴 배달민족 고유의 신화나 설화는 잘 알지 못한다. 극단 ‘우금치’에서는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 신들의 이야기인 생명의 탄생을 관장하는 삼신 ‘당금애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북쪽하늘의 별 ‘북두칠성이야기’, 인간의 생존을 위한 먹거리를 관장하는 농경의 신 ‘자청비’ 등 3개의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는 동화책처럼 새롭게 구성하여 마당극 <우리 신화 이야기>로 풀어냈다.

마당극 <우리 신화 이야기>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4월 5일과 6일 양일간에 걸쳐 총3회 공연을 열었다. 

 극중에서 서로 사랑에 빠진 문도령과 자청비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모할멈과 선녀의 도움을 받아 결혼을 하는 장면.
극중에서 서로 사랑에 빠진 문도령과 자청비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모할멈과 선녀의 도움을 받아 결혼을 하는 장면. 조우성

마당극에서는 우리 설화가 가진 풍부한 상상력을 시각화시킬 수 있는 연잎과 잎사귀, 박잎, 죽부인과 장승, 한지등, 한지꽃 등 다양한 소품 및 장신구와 공연장 상황에 맞게 이동이 가능한 무대를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그림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


금불암의 도승이 당금애기집를 찾아오는 대목에서 극중 배우가 직접 문짝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도승 앞을 가로막는 모습, 낮과 밤이 바뀌면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장면 등 고정되어 있는 소품이 아니라 극중 상황에 맞게 배우들이 소품을 움직이면서 활용하고 보여주는 재미있고 색다른 무대연출을 선보였다.  

 연주단이 얇은 천으로 살짝 가려진 무대 뒤편 높은 곳에 위치해 시청각적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연주단이 얇은 천으로 살짝 가려진 무대 뒤편 높은 곳에 위치해 시청각적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조우성

또 민요와 판소리, 탈춤과 고전무용, 기천무예와 마임, 풍물과 모듬북 연주 등, 각 장르의 예술적 특징을 압축하고 종합해서 마당극을 이끌어갔다. 관객과 배우와의 교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반주자를 무대 뒤 공연마당안으로 배치하고, 무대를 이동식으로 만들고, 작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관객석에 설치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대전의 금성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김영우(여) 학생은 마당극을 보고 난 뒤 “소품을 들고 배우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게 조금 어지러웠지만 재미있었어요. 마당극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소모양의 탈이나 나비 등 다양한 모양의 소품들이 신기했어요. 삼신할머니가 나타나 자장가를 부를 적에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그리고 안개처럼 뿌옇게 퍼져나오는 것(드라이아이스)이 신비한 느낌을 주었어요”라고 말했다.

아직 초등학생들은 전래 신화의 내용은 잘 모른 채 날아다니는 야광나비나 용, 소나 말처럼 생긴 다양한 생김새의 소품들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관객석에 설치된 아름다운 한지등. 여러 곳에 이렇게 훌륭하고 우아한 우리식 소품들이 관객들과 함께 해 한층 분위기를 멋스럽게 만들었다
관객석에 설치된 아름다운 한지등. 여러 곳에 이렇게 훌륭하고 우아한 우리식 소품들이 관객들과 함께 해 한층 분위기를 멋스럽게 만들었다 조우성

극단 ‘우금치’의 홍승광 기획실장도 공연을 다니다보면 어린이들이 연꽃잎, 박잎, 한지등, 한지꽃 등 소품들을 많이 갖고 싶어하고 또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한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극을 관람했던 대전 신성동에 사는 박유선(여, 38)씨는 “국악을 접하게 할려고 아이들을 데려왔어요. 신화나 설화는 저도 잘 모르는데 재미는 있었어요. 동양적인 덕목인 정성과 인내, 선악과 권선징악 등을 아이들이 인식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을 느꼈는지 궁금해요. 소품 활용을 아주 사실적으로 잘 했어요. 극에 생동감이 있었어요. 근데 배우들이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 짧아서 그게 아쉬워요. 조금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마당극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공연을 자주 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런 공연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갔으면 하네요”라며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바람도 덧붙였다.

 한국의 신화나 설화에 일관되게 흐르는 윤리덕목은 나쁜 놈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종내 행복하게 산다는 권선징악이다. 이 얼마나 멋진 덕목인가.
한국의 신화나 설화에 일관되게 흐르는 윤리덕목은 나쁜 놈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종내 행복하게 산다는 권선징악이다. 이 얼마나 멋진 덕목인가.조우성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는 알아도 전래의 신화나 설화는 알지 못하고 커가는 자녀들에게 우리 민족의 풍부한 상상력과 정신세계가 녹아있는 재미있고 신기한 우리 신화 이야기를 가끔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우금치 #우리신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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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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