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에 이르는 길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다시 회복되는 과정도 오랜 시간 올바른 실천이 보장되어야 한다. 재무상담은 당장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돈 통제력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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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몇년 전부터 재무설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외국 사례도 연구해 왔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연금공단에서 고객들에게 제법 수준 높은 재무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연금공단은 재무상담을 포함한 노후복지 전반에 대한 지원을 목표로 담당직원들을 훈련해 왔다. 공단이 붙인 이름은 '공익적 재무설계'다.
지난해 30여 명을 뽑아 석달 동안 시범서비스를 시행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무려 500명을 뽑아 재무설계를 포함한 노후복지 상담서비스 교육을 진행했다. 강의를 하러 멀리 제천까지 갔다. 호숫가 멋진 곳이었지만, 이런 상담을 처음 하게 된 분들이라 다소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고객들이 공단에서 재무상담을 해준다고 하면 얼마나 믿을까요?"사업이 잘될까 걱정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재무상담사의 수익모델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상담료만 받는 집단, 상담료도 받고 상품수수료도 받는 집단, 상담료는 받지 않고 상품수수료만 받는 집단. 이렇게 세 집단이 있는데 고객들은 어떤 집단을 가장 믿을까? 당연히 상담료만 받는 집단이다. 이미 선진국에서 검증된 것이다.
재무상담 서비스 준비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그러나 한국에는 아직 상담료만 받고 재무상담을 하는 집단은 없다. 몇몇 회사들이 상담료를 정액으로 받는데 그것 때문에 상담을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공정하게 할 것으로 기대하는 고객들도 많다.
상품 수수료만 받는 집단은 뭔가 수익을 위해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팔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 점에서 공단은 상품을 팔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가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 점을 잘 활용해서 멋진 재무상담을 하자고 했다.
이렇게 공단이 국민을 대상으로 재무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참 바람직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재무상담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무상담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내가 속한 포도에셋은 상담료도 받고 때로는 상품 수수료 수익도 얻는다. 그러나 원칙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고객들에게 돈을 다루는 힘을 갖게 함으로써 고객의 낯빛이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사회구조가 건전해 질수록 개인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서도 돈 문제에 대한 주도성을 높여나가야 진정 행복해 질 수 있다. 재무상담은 그런 과정을 돕는다.
이런 일을 공단이 수익을 바라지 않고 해나가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다. 그래서 나는 교육에 참가한 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싶었다. 사명감을 갖고 하시라고.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고객들의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 내부의 나태함이라고 질책하면서.
올바른 상담만 해주면 된다, 나태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사기업에서 원칙을 지키면서 수익을 내려면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공단 직원들은 안정된 급여를 받으면서 오로지 고객들을 위해 올바른 상담만 열심히 해주면 되니 얼마나 복된 일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좋은 조건이다 보니 대충 하려는 나태함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자고 했다.
"국민연금을 담보로 신용불량자들이 대출을 상환하게 하자는 청와대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국민연금 정신과 재무설계의 핵심원리를 대비시켜 보려고 최근 논란거리로 질문을 해보았다.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반대한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공단에 근무하고 재무설계 정신을 이해한 사람들이 그 의견을 표현해야 하지 않느냐고 다그쳐 보았다.
"힘이 없어서요…."흔히 듣는 대답이다. 반론으로 얼마 전 어린이 유괴사건 담당경찰의 양심선언을 거론했다. 공단보다 윗사람 눈치를 더 봐야 하는 경찰관도 그런 의견을 내는데, 공단 직원이 못할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강의장이 조용해졌다.
어떤 차원에서건 자신의 신념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라고 주문하고 넘어갔다. 강의하러 온 거지 선동(?)하러 온 건 아니니까. 그러나 이 내용은 내가 하려는 재무설계의 본뜻을 이해하는 핵심이기에 강의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소재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수치로 보여주는 재무설계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