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 뿐이랴

등록 2008.04.08 08:30수정 2008.04.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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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제 막 활짝 피려는 목련 한 송이 ⓒ 김영남

▲ 목련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제 막 활짝 피려는 목련 한 송이 ⓒ 김영남

해마다 봄이 와 길가 어느 집 담장 너머로 훤칠한 나무에 하얀 목련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걸 보면 꼭 그 생각이 난다. 우이동 옛 6번 종점에서 도선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던 고향산천. 한때는 어느 유명 정치인의 요정인 적도 있었다고 하고, 또 요새는 무슨 기도원 같은 곳으로 바뀐 듯도 하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가든형 식당으로 운영되던 ‘고향산천’의 벚꽃과 목련, 그 그림뿐이다. 계곡 전체를 뒤덮은 새하얀 꽃들의 바다, 눈부신 바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

 

목련 하면 양희은의 이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꽃을 보고 대중가요부터 떠올렸다고 천박하다 생각하면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분위기 잡고 불러보면 꽤 우아하고 애절한 노래다.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

아픈 가슴 빈 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

 

연꽃이 물위가 아니라 나무에 피었다고 해서 목련이란다. 만해 선생이 총독부 보기 싫다고 북향집을 지었다던가. 이 꽃 역시 묘하게도 북쪽을 향해 핀다고 ‘북향화’라는 별명도 있단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양반들은 ‘임금이 남면하니 신하는 북쪽으로 고개를 숙인다’고도 하고,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자신의 슬픔을 목련에 투사하기도 한다.

 

나무도 높고 크게 자라지만 꽃이 워낙 크고 많아서 팝콘 같은 하얀 꽃잎이 만개하면 가지밖에 없는 나무를 다 뒤덮어 버린다. 푸른 이파리 한 장도 없는 메마른 나무에서 어떻게 저토록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수 있는 걸까.

 

이번에는 목소리를 조영남 스타일로 바꿔서 불러보자..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

 

하늘 높이 솟은 나무에 달린 연꽃 목련이 필 때는 좋아 보이지만 꽃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참으로 허망한 꽃 또한 목련이다. 벚꽃처럼 꽃잎이 한 잎 한 잎 날리면서 지면 좋을 텐데. 송이 통째로 뭉텅뭉텅 땅에 떨어져 밟히고 짓이겨진 모습은 참으로 애처롭다.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 빛 꽃잎이 되어

우리네 가슴 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픈 함성으로

한닢 한닢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

순결한 꽃인 것을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 피어

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

우리들 오월의 꽃이

아직도 애처러운 눈빛을 하는데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목련이 진들 / 박용주

 

1980년 오월 광주에서 아버지를 잃은 박용주 시인이 열여섯 살 때 쓴,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짜리 꼬마가 쓴 시란다. 그저 꽃 예쁜 줄만 알고 떨어진 꽃잎 안타까운 줄만 알았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이래저래 목련은 아름답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고 참 사연이 많은 꽃이다. 시인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었다지만 나는 이 봄 저 무성한 꽃그늘 아래에서 목련주나 한 잔 마셨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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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봉지 위로 수북한 팝콘을 연상시킨다. ⓒ 김영남

▲ 목련 봉지 위로 수북한 팝콘을 연상시킨다. ⓒ 김영남

 

2008.04.08 08:30 ⓒ 2008 OhmyNews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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