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에게 '대안교과서'의 품질을 묻다

세 가지 교과서 비교를 통해 본 제주 4·3 사건

등록 2008.04.08 10:04수정 2008.04.0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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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을 두고 이렇게 평가가 다를 줄이야! 제주 4·3 사건을 두고, 중학교 국사교과서, K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B출판사 교과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등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문장을 일일이 비교하며 차이점을 서로 말해보는 수업을 진행해보았습니다. 가운데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이렇게 평가가 다를 줄이야!제주 4·3 사건을 두고, 중학교 국사교과서, K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B출판사 교과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등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문장을 일일이 비교하며 차이점을 서로 말해보는 수업을 진행해보았습니다. 가운데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입니다.서부원
▲ 같은 사건을 두고 이렇게 평가가 다를 줄이야! 제주 4·3 사건을 두고, 중학교 국사교과서, K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B출판사 교과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등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문장을 일일이 비교하며 차이점을 서로 말해보는 수업을 진행해보았습니다. 가운데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입니다. ⓒ 서부원

 

간만에 역사 수업다운 수업을 제대로 한 번 해보았습니다. 최근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뉴라이트의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덕분(?)입니다.

 

영어나 수학과 같은 도구 과목이 아닌, 사회나 역사 등은 아이들의 가치관과 사고의 영역을 다루는 과목이므로 수업 방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아이들로 하여금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와 함께 기존의 여러 교과서들을 서로 비교해보도록 한 것입니다.

 

제주 4·3 사건 60주년이었던 지난 주, 수업시간을 빌어 우선 한 방송사에서 10년 전에 제작한 4·3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짧은 동영상 몇 편도 참고하도록 했고, 이어서 대안교과서를 비롯한 여러 교과서의 관련 페이지를 복사해 나눠주고 읽게 했습니다.

 

눈으로 본 영상물과 가장 부합하는 내용의 교과서는 어떤 것이며, 내용상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것은 또 어떤 교과서인지를 골라보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기실 아이들이 배우는 중학교 3학년 국사 교과서에는 제주 4·3 사건 관련 내용이 달랑 한 줄(교과서 304쪽)이어서 해방 직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주도에서 발생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지금 공부하고 있는 국사 교과서를 제외하고 B출판사의 것, K출판사의 것 그리고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이렇게 3종 중 하나를 고르도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어려워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가 본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간단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영상물에서 본 주민들의 인터뷰 내용과 내레이터의 해설을 기억해내면서, 교과서마다 비슷한 내용일지라도 용어 자체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걸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몇몇 친구들은 덧붙여진 도움글과 사진 자료 등에까지 관심을 보이며 교과서에서 본 내용과의 연관성을 따져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40명 중 31명의 아이들이 영상물의 내용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은 K출판사의 교과서이며, 선택된 용어와 설명 내용이 비교적 일치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B출판사의 경우는 K출판사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와는 달리, 민감한 사안을 피하려는 듯 두 세 문장으로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다며 지적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또, 비교한 교과서들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본 영상물과 관련 웹문서들도 내용이 대개 비슷한데,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만은 '유별나다'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혼란을 틈타 남로당이 제주도에 지하조직을 구축하고 인민해방군까지 조직했다는 등의 서술과 남진통일, 반란, 국토완정론과 같은 단어들을 무척 생소하게 여긴 듯합니다.

 

하긴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량 학살 당해야 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남로당 등 좌파 세력의 반란이라며 강조하는 서술은 영상물이든, 교과서든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별난' 주장입니다.

 

더구나 '여수, 순천 제14연대 반란'에 가담한 주민과 가담하지 않은 주민을 좌우로 구별하고 있다는 큼지막한 사진에서는 자칫 진압군에 의한 민간인 대량 학살조차 정당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운동장에 주민을 모아놓고 반란군 동조자를 가려낸다는 이유로 원한을 가진 이웃들을 지목해 죽음으로 내몬, 이른바 '손가락 총질'이 난무했다고 하는데, 외려 그 참혹한 현장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껏 제주 4·3  사건에 대해 배우기는커녕 한 번도 들어보지조차 않은 아이들에게 영상물을 보여주고, 교과서에 실린 관련 내용을 읽게 해 평가해보도록 한 두 시간은 짧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공부해보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고, TV에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관련 뉴스를 들은 적 있다며 이제야 그것이 왜 뉴스에 났는지 알겠다고 고개 끄덕이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또, 방과 후 집에 가서 부모님은 이 사건에 대해 아는지 여쭤봐야겠다고 말하는 아이는 나눠준 복사물을 주섬주섬 가방에 챙겼습니다.

 

낯선 사건을 다루다 보면, 교과서에 밑줄 치고 별표 붙여가며 목이 터져라 수업을 해봐야 시큰둥했을 아이들입니다. 별다른 수업지도안 하나 없이도 '무심한' 아이들의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둔 셈입니다.

 

교과서 진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또 기회가 된다면 제주 4·3  사건을 넘어 동학농민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이번처럼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 내용을 비교해 가면서 수업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역사에 대한 해석이 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가를, 자랑스러운 역사든, 가슴 아픈 역사든 늘 기억하고 성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시험에 종속돼 '대표적인 암기 과목'으로 전락한 역사 과목에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마침 한 아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K출판사의 교과서에 짤막하게 소개된 <순이 삼촌>이라는 소설을 읽어봐야겠습니다. 무미건조한 교과서 내용보다 제주 4·3 사건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나저나, (오늘 수업을 받아보니) 역사가 재미있어지려 해요."

 

'대안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은 비록 아이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지루하게만 느낀 역사 수업에 어쨌든 새로운 활력소가 돼 주었으니, 그런 뜻에서의 '대안' 교과서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대안교과서> 집필진들이 이글을 본다면,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좌파 서적'이야!"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2008.04.08 10:0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대안교과서> 집필진들이 이글을 본다면,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좌파 서적'이야!"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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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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