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재번호 아세요?" "투표확인증 받아가세요"

18대총선 관람기, 인천 남동을 선거구 어느 투표소에서

등록 2008.04.09 17:23수정 2008.04.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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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오늘 이렇게 날씨가 구질구질하단 말인가. 어제 와도 될 비가 왜 굳이 오늘 오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투표에 '영향을 미칠' 만한 '기상 이변'도 없었으련만.

 

실제 투표가 진행되기 전부터 이미 이번 총선이 역대 최저 투표율을 경신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던 터였다. 그런 우려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다. 어느 후보가 더 유리하고 어느 당이 더 유리하고를 떠나, 낮은 투표율 속에서 당선되는 것은 당선자나 유권자 모두에게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선자 본인이야 몰래 웃을 테지만.

 

집을 나서기 전부터 중얼중얼 푸념을 하면서 기자는 인천 남동을 선거구의 한 투표소를 찾았다. 인천 남동을 선거구 유권자이기도 한 기자는 불편한 마음을 유권자들을 위한 봉사로 바꾸기 위해 투표 전후로 이곳 상황을 지켜보며 짧게나마 취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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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총선 인천 남동을 인천 남동을 선거구에 속한 어느 투표소 입구 ⓒ 민종원

▲ 18대총선 인천 남동을 인천 남동을 선거구에 속한 어느 투표소 입구 ⓒ 민종원

 

투표장 입구, "등재 번호 아세요?" 

 

취재하는 기자이기 전에 유권자 중 한 사람으로서 궂은 날씨 속에서 투표장에 가는 마음은 내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안타깝고 화도 났다.

 

투표 장소 입구에 다다른 기자는 투표장 입구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 들어갔다.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당당히 한 표를 행사하고, 그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미래에 얼마나 고민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등재 번호 아세요?"

"네, (등재번호표) 갖고 왔어요."

"그러면, 곧바로 들어가세요."

 

투표장에 들어서자 투표안내원이라는 사람이 기자를 맞이했다. 투표 절차 중 첫 번째인 신분 확인 절차를 조금이라도 빨리 진행하기 위한 조치로, 투표 안내원이 투표장 입구에서 등재번호를 확인하고 있었다. 등재번호표를 가지고 오지 않았거나 모르는 경우 투표장 입구에서 확인하고 들어가서 곧바로 신분확인을 마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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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총선 인천 남동을 인천 남동을 선거구에 속한 어느 투표소. 투표장 입구 ⓒ 민종원

▲ 18대총선 인천 남동을 인천 남동을 선거구에 속한 어느 투표소. 투표장 입구 ⓒ 민종원

 

투표장 출구, "투표확인증 받아가세요."

 

신분 확인 후, 투표 과정은 큰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신분 확인 후, 투표용지 두 장을 받아 기표소에 들어갔고, 기표 후엔 투표 용지와 같은 색깔인 투표함에 각각 투표용지를 넣고 나왔다.

 

"투표확인증 받아가세요."

"네? 아, 네. 고맙습니다."

 

투표를 마치고 투표장을 나오니 또 다른 투표안내원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인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투표확인증이었다. 여러 수단을 통해 알려 온 투표확인증을 실제로 받는 순간이었다.

 

"투표확인증 받는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다들 알고 오는 것 같나요?"

"글쎄요. 모르시는 분들도 꽤 되죠."

 

실제로 그랬다. 투표하러 오는 유권자들은 한동안 지켜 본 기자는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투표확인증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집에 가려다가 다시 와서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그게 뭡니까?"고 묻는 분들도 있었다. 게 중엔 "이거 뭐 쓸 만한 데가 있겠어?"라며 아예 관심이 없는 분도 있었다.

 

막상 투표확인증을 보니 꼭 한 번 더 확인해두어야 할 내용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용기한이었다. 사용기한은 투표 당일인 오늘(4.9)부터 이달 말일(4.30)까지였다. 그래서 또 물어보았다.

 

"투표확인증 사용기한이 이달 말일까지네요?"

"네. 조금 더 늘려주면 좋았을 텐데."

 

기자가 그랬듯, 투표확인증을 나누어주던 그 투표안내원도 사용기한이 생각보다 짧다고 느꼈던 모양이었다. 대화 중 기자는, 이 투표확인증을 실제 이용해 본 사례를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사용 사례를 취재하는 게 얼마나 가능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히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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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총선-투표확인증 투표 후 받은 투표확인증 ⓒ 민종원

▲ 18대총선-투표확인증 투표 후 받은 투표확인증 ⓒ 민종원

 

투표소 주변, "1인 2표제는 알고 오셨나요?"

 

앞서 말했듯, 기자는 어느 투표사무원과 투표 당일 날씨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투표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도 몇 가지 했다. 주로 투표시 유의할 점에 대해서였다.

 

투표를 마친 후, 투표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던 그 투표사무원도 사실 날씨가 투표 의지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듯 투표상황에 대해 기자가 묻는 질문들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투표할 때 말이죠, 기표한 용지를 투표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위는 어떻게 되죠? 1인2표제를 다들 알고 오시는지도 궁금하구요."

"그야, 당연히 안 되는 일이고 또 선거법에 걸리는 일이죠. 그리고 1인2표제는 대개 알고 오시는 것 같아요. 나이 드신 분들이 좀 질문을 하시긴 하지만..."

 

당연한 질문에 당연한 답변이었지만, 그래도 기자는 굳이 물어보았다. 우연찮게 또는 실수로 그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황을 지켜보니, 1인2표제를 하는지 모르는 유권자들은 분명 있었다. 

 

"그러면요, 기표소에 들어가서 기표를 하다가 미리 생각해 놓은 것과 다르게 기표한 후에 '어, ○○○를 찍어야 하는데 ○○○를 찍었네'라고 혼잣말 하듯 말하면 어떻게 되죠? 그러니까, 투표장 안에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했을 경우에 말이죠."

"그야, 그것도 역시 안 되죠. 당연히 선거법에 걸리는 일이죠."

 

'당연히... 걸리는 일이죠.' 걸린다? 그렇다, 딱 걸릴 만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기자는 당연한 질문을 또 했고, 투표사무원 역시 당연한 답변을 또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기자는 당연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 질문을 굳이 두 개나 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면, 기자는 이렇게 말하겠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일은 무엇이나 선거법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그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하겠느냐고 묻지도 마십시오. 1인2표제인지도 모르고 오는 이들이 있고 실제 투표장에서는 의외로 긴장할 수 있는 터에 누구나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적다고 말씀하신다면 또 모르지만요."

 

'돌다리도 두드려 가라'는 말이 있듯이, 기자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놓고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어떤 선거든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꼭 생각해 볼 문제다 싶었다. 다른 많은 문제들이 또 있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고민할 만했다. 적어도 기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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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총선 인천 남동을 한 유권자가 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다. ⓒ 민종원

▲ 18대총선 인천 남동을 한 유권자가 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다. ⓒ 민종원

투표소를 나서며, 다음 선거에서 이런 건 이렇게...

 

투표장에서 기껏해야 두세 시간 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기자는 속으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는지 모른다. '이런 건 어쩌지?' '이런 것도 걸리나?' 등등 그야말로 속좁은 질문을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속좁은 사람이 어디 기자 한 사람뿐이겠는가. 물론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혼자 몇 가지 제안도 생각해봤다.

 

'1인2표제를 실시한다는 사실을 공지할 때 투표확인증 안내문과 같은 별도 안내문을 만들어 선거공보물에 넣어달라' '투표확인증 활용방법을 더 자세히 알려주고 사용기한도 늘려달라' '투표장 입구에 붙이는 각종 안내게시물 중에 1인2표제 실행에 관한 안내문을 보기 좋게 달아달라' '투표마감 시간을 앞두고 동네 한 바퀴 돌며 거리 홍보를 해달라' 등등.

 

모두 다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이런 제안을 생각하면서 또 걱정했던 건 선관위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있어서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볼썽 사나운 문구이다 보니 지레 짐작으로 그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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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총선 인천 남동을 한 유권자가 투표 후 투표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 민종원

▲ 18대총선 인천 남동을 한 유권자가 투표 후 투표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 민종원

 

제18대총선 투표과정을 지켜 본 기자는 처음엔 긴장했고 조금 후엔 궁금했고 그곳을 떠날 즘엔 조금 우울했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니 우울증 아니냐는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

 

누가 이 지역 당선자가 될지 모르지만 여러모로 걱정스런 맘을 안고 투표소를 나왔다.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많이 안 하는 것 같다는, 그래서 굳은 날씨가 더더욱 맘에 걸린다는 그 투표사무원 아저씨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반갑지 않은 사실은, 이번 선거가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 것 같다는 각종 보도들까지 눈과 귀며 머릿속까지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낮 12시 이후에는 젊은 유권자들이 좀 더 많이 오는 것 같다는 그 사무원 말에 조금이나마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며 투표소를 나섰다. 실제 젊은 유권자들이 얼마나 많이 투표했는지는 한참 뒤에나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기자가 투표소를 나설 즈음 때마침 볼을 스쳐 흘러내리는 그 무엇, 빗줄기였다. 이걸 어쩌나 싶으면서도 더이상 뭘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차라리, 비가 오면 20~30대 투표율이 오른다는 또 다른 얘기를 믿어볼 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유권자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맡길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18대 총선은 저물고 있었다.

 

때로는 지겹고도 또 지루할 만한 개표방송이 오늘따라 흥미롭게 느껴지고 또 기다려진다. 하지만, 개표방송이 꼭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일이어서만은 정말 아니다.

2008.04.09 17:23 ⓒ 2008 OhmyNews
#4.9총선 #18대총선 #국회의원 #인천 남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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