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것 보다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노인병동의 애환... 장인어른이 입원을 하셨습니다

등록 2008.04.09 17:24수정 2008.04.09 17: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종합 병원의 노인 요양병동 복도.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 노기홍


강철 같은 장인이 쓰러졌습니다


제 장인은 연세가 아흔(1918년생)임에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경로당과 시장에 나가서 소일 하실 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 20년 만에 처음으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 촬영 결과 다친 곳이 없고, 연세에 비해 건강하다며 돌아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장인은 밤새도록 온몸이 아프다며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몸을 조금도 못 움직였고, 다음날 119로 전화를 걸어 큰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병원에선 "전립선에 문제가 있어 방광에 염증이 심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날부터 고무호스를 꽂고 소변을 받아내며 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큰 차도가 없습니다.

의사의 설명인즉슨, 전립선 비대증은 나이가 들수록 거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겪게 되는 일이므로 수시로 검사를 받아 치료를 하지 않으면 이렇게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합니다.

장인은 병원생활이 답답하다며 퇴원시켜 줄 것을 일상처럼 요구합니다. 며칠 전에는 아내가 없는 사이 집에 가겠다며 고무호스와 링거 바늘을 빼내는 바람에 한차례 소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어제 새벽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여 이제는 아예 두 손을 묶어놓았습니다. 호스가 잘못 빠지면서 요도를 다칠 경우, 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요도에 관을 끼워 넣을 수가 없기 때문에 복부에 구멍을 내어 관을 꼽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는 부득이 양손을 묶었다고 설명합니다.


병원에 있는 것조차 갑갑해 하시던 분이 이제는 손까지 묶였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노서방 이 손 좀 풀어주게, 제발 손 좀 풀어주게"라며 저와 눈을 마주치는 모습이 절규에 가깝습니다.

"가자, 가자 집에 가자"

장인어른이 계신 병실에는 6명의 노인들이 함께 있습니다. 간병인이 24시간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고 재활훈련을 시킵니다.

전직 교장선생님인 한 노인은 중풍으로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된 상태입니다. 이분은 병원에 있는 걸 워낙 싫어하여, 3년간 집에서 부인과 자식이 수발을 들었는데,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키는 게 너무 힘이 들어 결국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 어르신은 아들한테 "가자, 가자, 집에 가자!"하며 줄기차게 집에 데려다 줄 것을 요청하며 한쪽 팔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매일 집에 가야 한다며 흰 운동화를 신고 주무시고, 침대위에서 식사를 하실 때도 늘 운동화를 신고 계십니다.

대체적으로 정신이 멀쩡한 것 같지만 말씀 하시는 걸 잘 들어보면, '몸뿐만 아니라 뇌에도 이상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기력이 좀 회복되면 "휠체어~ 휠체어~"하며 하루 내내 휠체어를 부르기도 하고, "내가 뭘 잘 못했기에 감옥에 가두냐"며 간호사한테 항의하기도 합니다.

하도 보기가 딱하여 내가 휠체어를 끌어다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 "우리 오매가 최고다, 우리오매"라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간호사들이 한쪽에서 얘기하는 걸 보면 "여선생들이 수업은 안 하고 왜 저기서 커피타임을 갖고 있느냐"며 꾸짖기도 하고, 부인이 오면 "우리 오마이 왔다. 우리 오매다"라고 좋아하기도 합니다.

궁금하여 제가 옆에 앉아계신 부인한테 물어봅니다. "교장선생님의 어머님은 살아 계신가요?" 그러자 부인은 "아니요, 벌써 10년 전에 돌아가셨는 걸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아들보고 동생이라고 하고, 며느리를 저로 착각하는 걸보니 중풍과 치매가 함께 온 것 같아요"라며 한숨을 내쉽니다.

무엇이 이 할아버지의 기억을 수십 년 전의 일상에 묶어둔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늙는다는 것이 몹시 가슴 아프고, 서글픈 일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거역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죽어도 집에서 죽어야지, 여기는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a

노인 요양병실에서 한 보호자가 환자에게 음식을 떠서 먹이고 있습니다. ⓒ 노기홍


창가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너무 오래 누워계셔서 그런지 몸에 욕창이 심합니다. 이 할아버지는 의식은 말짱하고 큰 병도 없으신데 몸이 허약하셔서 오래 집에 누워 계셨다고 합니다. 어젯밤 아들내외가 오랜만에 과자와 우유를 몇 봉지 사들고 왔습니다.

아들내외만 가끔 오는 걸보니 이 할아버지는 부인이 먼저 돌아가셨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아들 내외를 보더니 작심한 듯이 "얘들아, 나랑 얘기 좀 하자. 내가 여기는 도저히 못 있겠다. 어떻게 하면 좋겠노"라며 "죽어도 집에서 죽어야지, 여기는 도무지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라고 애원하듯이 말합니다. 그 말소리가 얼마나 절실하게 들리는지 나의 마음이 찢어질듯이 아픕니다.

그 말을 듣던 며느리가 "아버님, 여기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요. 집에서는 방법이 없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아들내외가 돌아간 뒤로 할아버지는 병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합니다. 의식은 말짱한데 몸이 안 따라주니 그게 더 괴롭게 보입니다.

그 외에 하루 내내 채소를 우물우물 씹고 뱉어내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음식을 삼키지 못하여 코에 관을 꼽아 음식을 공급받는 노인도 있습니다. 당뇨로 눈이 먼 할아버지는 몇 분 단위로 계속하여 "지금 몇 십니까?"라고 시간을 물으며 "우리 집에 전화하여 빨리 데려가 달라고 말해주세요"라고 제 아내 쪽을 향해 재촉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 병실에선 TV에서 흘러나오는 이소연씨 우주여행 소식이나, 국회의원 선거뉴스 등이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장인과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나오니 어느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병실에 남아있는 환자나 병원을 나서는 가족들이나 마음이 아프기는 매 한가집니다.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노인환자들이야말로,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는 '새장에 갇힌 새'라는 생각이 듭니다.

봄꽃향기가 코끝에 확 밀려옵니다. 평소 지루하게 여겨지던 세상살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바깥세상이 별천지처럼 느껴집니다. 두발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두발로 걷는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는 건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맞장구칩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해

a

미용사 협회 회원들이 나와서 노인환자들께 무료 이발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 노기홍


이런 저런 일로 피곤이 겹쳐 어젯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 나이 이미 일흔이 넘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가족들이 "요양병원으로 보내자"고 합니다.  나는 자유가 속박된다는 생각에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져 옴을 느낍니다. '아, 결국 나도 요양병원에 가서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절대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합니다. 놀라 깨어나니 꿈입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20년 후의 일을 앞당겨 걱정하다니, 휴~ 아직은 괜찮지!"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은 좀 놓이긴 합니다. 하지만 자유를 잃은 채 병실에서 투병하는 노인들을 생각하니 나의 미래, 아니 인간의 미래모습이 다 저런가하여 우울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왔다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병실에서 말년을 보내고 저세상으로 가야하는 게 정녕 인생이란 말인가?'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아침을 맞았습니다.

무병장수하며 살다가 저세상으로 잠자듯이 가면 얼마나 깨끗하고 좋을까요. 습관과 제2의 천성만이 이성을 지배하고, 전 생애를 통하여 쌓아올린 인격마저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치매, 중풍 등의 질병이 두렵기조차 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몸이 아파 침대에 눕는 순간부터 죽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게 보여, 그 과정이 두렵습니다.

잘 사는 것(Well being)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Well dying)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잘 산다는 건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대구에서는 당뇨병을 심하게 앓던 부인과 남편이 나란히 철길에서 동반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또 몇 해 전에는 암을 앓던 가장이 자식들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주기 싫다며 병원복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들은 졸지에 불효자라는 멍에를 쓰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묘안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늙음과 죽음이 나하고는 아직 무관하다는 방심 속에 오늘만 바라보며 허겁지겁 살아온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담한 노년을 맞지 않기 위해 저는 오늘부터 죽음에 관련된 책을 꾸준히 사보고, 죽음에 대한 강좌도 열심히 듣기로 했습니다.
#노인 요양병동 #노년설계 #전립선 #중풍 #치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요 보수 언론들이 사회의 여론을 왜곡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현실이 답답하던 차에 이들 수구 언론들과는 달리 정치, 사회,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국민들이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오마이뉴스의 편집방향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평소에 인권보호, 서민들의 복지정책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들 분야에 대한 저의 짧은 지식이나마 귀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군산 갯벌에서 '국외 반출 금지' 식물 발견... 탄성이 나왔다
  2. 2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3. 3 광주 찾는 합천 사람들 "전두환 공원, 국민이 거부권 행사해달라"
  4. 4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5. 5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