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은 천사들 만나러 가는 날"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알게 해준 천양원 아이들

등록 2008.04.12 09:50수정 2008.04.1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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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연주 감기 걸렸어요. 안 씻어서 그렇대요. 흐흐." 

"오늘 학교에서 시험 봤는데 수학 백점 받았어요."

 

문을 들어서자마자 나를 붙잡고 연신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다.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유일한 곳.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천양원에서 천사 같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받아쓰기, 수학문제 풀기, 영어 단어 외우기. 즐겁게 공부하며 장난치는 유쾌한 수업시간이 시작된다.

 

작년 봄. 무작정 봉사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30여 분을 걸어간다. 대전시 장대동에 위치한 아동보육시설 천양원을 방문한다. 고아 또는 가정해체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이 살고 있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사회에 나갈 때까지 지도하고 보살펴 주는 아동보육시설이다. 우리 동아리는 천양원과 연계되어 매주 금요일 아이들 교육지도를 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술 약속 마다하고 아이들 가르치러 간다

 

a  오늘따라 진지한 가영이. 열심히 공부하는 중

오늘따라 진지한 가영이. 열심히 공부하는 중 ⓒ 정록정

오늘따라 진지한 가영이. 열심히 공부하는 중 ⓒ 정록정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시간 반은 정말 시끌벅적하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연주, 가영이다. 수학시험을 보면 항상 100점을 받는 똑똑한 연주. 연주에게 '수학천재'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가영이는 1년간 나의 전속 담당 제자였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수업시간 내내 웃는다. 자기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수업시간에 다소 산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영어 단어 맞추기도 좋아하고 국어 받아쓰기도 곧잘 한다. 가영이의 취약점은 바로 수학이다. 가장 잘하는 과목도 수학이다. 양면의 모습을 가진 가영이의 수학실력…. 덧셈은 굉장히 잘하지만 뺄셈, 곱셈은 많이 서툴기 때문이다. 선생과 제자는 매일 수학 때문에 다투고 있다.

 

"가영아! 덧셈은 이제 너무 잘하네! 우리 뺄셈 공부할까?"
"싫어요. 덧셈 문제 내주세요."
"덧셈은 잘하니까 뺄셈도 공부해야지."
"덧셈해요! 뺄셈 싫어요."
"왜 싫은데? 매일 똑같은 거만 하면 어떡해."
 "…"
"뺄셈으로 문제 20개 내줄게."

 

벌써 가영이의 표정이 뽀로통해졌다. 매일 두 자리 덧셈만 고집하는 가영이.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두 자리 덧셈은 가영이의 주 종목이 되었다. 매번 100점만 받기 때문이다. 세 자리 덧셈, 뺄셈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안하다. 자신의 실력이 드러날까봐 두렵다.

 

잘하는 것만 보여주고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하지만 학년에 따라 배워야 할 단계가 있는 법.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타협의 시간이다.

 

"알겠어. 덧셈문제 내줄게."

 

가영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덧셈을 잘하므로 어려운 문제를 내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쉬운 문제만 골라서 10개만 문제를 만들어 준다. 식은 죽 먹기라는 듯이 쉽게 풀어버리는 가영이. 역시 오늘도 덧셈은 100점이다. 아직 어린아이답다. 100점만 보면 흐뭇해서 기운이 넘쳐난다. 꼭 빨간색 연필로 크게 100점을 적어 달라고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와! 역시 가영이 산수 잘 하네. 우리 뺄셈 조금만 해볼까?"
"선생님, 대신 쉽게 내주세요."

 

10분 전과는 다른 반응이 나온다. 100점 맞고 금세 기분이 좋아지더니 흔쾌히 받아들인다. 어려워하던 뺄셈도 곧잘 푼다. 이왕에 잘 된 거 연주와 같이 구구단을 외우기로 했다. 둘이서 신나게 9단까지 떠든다. 오늘 수업은 성공이다. 
 
"선생님 다음 주에 와요?"
"선생님 갈게. 일주일동안 잘 지내고 있어!"

 

시끌벅적한 수업시간이 끝났다. 헤어질 때 항상 하는 말이다. 금요일이 되면 술자리도 종종 생기는 데다가 일주일 간 피로에 힘들기도 하다. 가끔은 천양원에 가는 것이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지난 주 헤어질 때 아이들의 인사가 생각난다.

 

하다가 그만 두면 아니 한 만 못하니...

 

a  천양원 아이들과 공부하고 있는 모습

천양원 아이들과 공부하고 있는 모습 ⓒ 정록정

천양원 아이들과 공부하고 있는 모습 ⓒ 정록정
 봉사를 하는 첫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신뢰를 지키는 것도 소중하다. 봉사자들은 자발적으로 봉사지원을 한다. 그러나 중간에 힘들어 포기를 하거나 다른 일이 생기면 중단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봉사지원센터에서 지원을 거부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학습 지도를 하던 중 그만두게 돼 버리면 교육에 방해가 된다. 아이들의 신뢰도도 떨어지게 된다. 

 

봉사를 하기로 결심 했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봉사자의 의무이고 봉사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진정으로 즐기고 보람을 얻는 참된 봉사활동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얻는 즐거움과 보람은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벌써 이 아이들과 공부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이들은 3학년이 되었다. 두 자리, 세 자리 덧셈 뺄셈에서 이젠 곱셈도 거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 말 안 듣고 투정 부리는 아이를 보면 크게 화도 내고 싶다. 하지만 여리고 착한 아이들이라는 걸 알기에 다독거리고 격려를 많이 해주려 한다.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나와 함께한 수업시간을 즐겁게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사들을 만나러 천양원으로 향하는 마음이 봄처럼 따뜻하고 설렌다.

2008.04.12 09:50ⓒ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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