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을 왜 꺾어버리지?

'배의 고장' 나주에 가다

등록 2008.04.14 10:59수정 2008.04.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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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하얀 눈이 내렸다. 배 과수원에 배꽃이 활짝 핀 것이다. ⓒ 이슬비


아빠와 동생 예슬이랑 같이 일요일(13일) 오후 '배의 고장' 나주에 갔다. 배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처음에 멀리서 보고 눈인 줄 알았다. 점점 가까이 가서 보고는 눈꽃인 줄 알았다. 날씨는 금방 여름으로 가는 것 같은데 웬 눈?


배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진짜 예뻤다. 하얀 게 맛있는 솜사탕 같았다. 우리는 배꽃을 감상했다.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사진도 찍었다. 아빠가 가르쳐준대로 사진을 찍으니 구도가 더 멋졌다.

한쪽에서는 배 과수원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배꽃을 꺾고 있었다. 그리고 종이컵 하나를 들고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보였다. 궁금해서 옆으로 다가가 할머니한테 물어 보았더니 할머니는 하시던 일을 잠시 멈추고 '꽃가루'라고 말씀하셨다. 인공 꽃가루라고…. 솜으로 감싼 막대에 꽃가루를 묻혀서 나무에 달린 배꽃(암술)에다가 발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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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슬이가 인공수분 작업을 해보고 있다. ⓒ 이슬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선뜻 허락해 주셨다. 종이컵에 담긴 인공 꽃가루를 묻혀서 배꽃에 갖다 발랐다. 행여나 꽃이 다칠까 봐 조심히 했다. 예슬이도 해보았다.

나는 할머니한테 또 왜 배꽃을 따느냐고 물었더니 "배꽃이 너무 많이 달려 있으면 영양분이 골고루 퍼져서 맛있는 배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다. 동물도 새끼들이 많으면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하듯이, 과일나무도 꽃이 너무 많으면 튼튼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다.

예슬이는 할머니가 꺾은 배꽃을 하나씩 줍더니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물었다. "언니! 이것이 뭔 줄 알아?"라고. 나는 "배꽃 다발!"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예슬이는 뜻밖의 말을 했다. "땡! 바로 부케야! 내가 던질 테니까 잡아봐!"


점심때 예식장에서 본 부케를 떠올린 것이었다. 예슬이가 신부 흉내를 내면서 배꽃 다발을 뒤로 던졌다. 그런데 나한테 전달되지 못하고 배나무에 걸려 그냥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우리는 다섯 번 도전 끝에 한번 성공했다. 이런 걸 보고 '사전오기'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예슬이 덕분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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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슬이가 배꽃으로 부케를 만들어 던지려고 하고 있다.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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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기는 했는데...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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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가 행진을 하는 모습이다. 부케를 든 예슬이가 신부, 나는 신랑이 됐다. ⓒ 이슬비


난 배밭에서 잠시 생각했다. '내가 만약 배농사를 짓는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아마도 중간에 포기했을 것 같았다. 나는 인내와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배농사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겨울철에 거름을 내서 밭에 뿌려줘야지, 가지치기도 해줘야지, 또 꽃도 솎아주고 인공수분 작업도 해줘야지…. 농사일이 정말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군침이 돌았다. 이렇게 예쁜 꽃이 나중에 가을이 되면 맛있는 배, 시원한 배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랬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 맛있는 배 많이많이 열릴 수 있도록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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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과수원의 주인 할머니가 배꽃을 솎아내고 인공수분 작업을 하고 있다. 바닥에 꺾어버린 배꽃이 보인다.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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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이 활짝 핀 배 과수원은 정말 멋진 곳이다. ⓒ 이슬비


#배꽃 #배과수원 #나주배 #인공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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