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역사팩션 46] 3·1운동의 숨은 공로자, 선우혁

김갑수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 '상해의 영혼들'편

등록 2008.04.14 16:29수정 2008.04.1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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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은 파라강화회의 중국 대표로 임명된 왕정정과 육징상의 소개로 미국 대통령 특사 크레인을 직접 만났다.

"이 기회에 우리 한민족은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평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우리 민족의 참상과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해야 합니다. 귀하의 원조를 청하는 바입니다."


미국 대통령 특사가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만났다는 소식은 신한청년당의 결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신규식은 여운형에게 가급적이면 유능한 청년들을 많이 포섭하여 포함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여운형은 당세 확장 작업에 전면으로 나섰다. 그리하여 장덕수, 김철, 선우혁, 한진교 등이 가세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내에 있는 김구와 이광수도 포함되었다.

국내에서도 거족적인 운동을 벌이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신규식은 정부 수립의 기회가 온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중국 전역과 국내를 연결해서 운동 기운을 고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선 간도에 가 있는 박찬익에게 자금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해에서 사용할 자금은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그는 봉천에 있는 정원택에게 편지를 썼다.

최근 유럽 전란이 종식되고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을 제창하며, 파리에서 평화회의를 개최하니 약소민족이 궐기할 시기입니다. 상해에 거류하는 동지들이 미국의 동지와 국내에 있는 유지를 연결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파리에 대표를 파송하려 하고 있는데, 서간도와 북간도에 기밀을 연락치 못하였으니, 군이 길림에 빨리 가서 박찬익과 상의하고 각 방면으로 일을 도모하면서 대기응변하기를 바랍니다. 이 서류는 읽은 즉시 소각하고 향후 사정을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

신규식은 국내 유지 12명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밀서를 보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이승만에게도 파리회의에 신한청년당 명의의 대표가 파견됨을 알렸다.

3·1운동 직전 현장을 뛰며 단연 눈부신 활동을 한 청년은 선우혁이었다. 동제사 회원인 선우혁은 1919년 2월 초에 평북 선천에 가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인 양전백을 만나 운동 자금 조달과 거사 참여를 종용했다. 실제로 양전백은 기미독립선언에 기독교 대표로 서명하고 거사 후 일제에 체포되어 2년 형을 치르게 된다.


이어 선우혁은 평북 곽산에 있던 오산학교장 이승훈을 찾아간다. 마당에 눈이 쌓여 있고 바람이 문풍지를 흔들던 날 이승훈은 상해에서 온 청년 선우혁에게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며느리를 시켜 닭 두 마리를 잡아 선우혁을 대접한다. 이승훈은 사업에 밝은 재산가였다. 그는 적지 않은 자금을 선우혁에게 내놓았다. 이승훈도 기미독립선언에 민족대표로 서명하여 3년 형을 치르게 된다.

선우혁은 다시 평양으로 달려갔다. 그는 길선주를 찾아갔다. 길선주는 평양 장대현 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예배당의 남녀 구분 커튼을 제거하고 아악을 교회음악에 도입하는 등 매우 전통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목회자였다. 그도 기미독립선언에 참여하여 2년 옥고를 치른 뒤 부흥 활동에 전념하다가 설교 도중 순교한다.


평양의 목사들은 선우혁의 권유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대부분이 선우혁과 같이 신민회에 가입했던 인물들이었다. 윤원삼은 학교 교사 담당, 안세항은 학생 담당으로 나섰다. 그러던 차에 그들은 이승훈으로부터 연합으로 행동을 개시하자는 연락을 받게 된다.

여운형은 신한청년당 결성의 주체자일 뿐 아니라 3·1운동을 일으키는 데에 해외에서 기여한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신한청년당을 대표해서 간도와 노령, 그리고 연해주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아편 상인으로 위장하고 장춘의 심영구, 길림의 여준, 블라디보스토크의 이동녕, 이르쿠츠크의 이동휘 등을 만나 거사 방법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장덕수는 조선총독부 판임관 시험에 합격한 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정경학부를 졸업한 후 여운형을 따라 상해에 온 어린 청년이었다. 그는 민필호보다 세 살밖에 많지 않았지만 신한청년당의 핵심 인사 중 한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한청년당에서 동경에 공식적으로 파견한 사람은 장덕수였다. 3·1운동 후 그는 <동아일보> 초대 주필과 부사장을 역임하게 된다. 그는 일어와 영어에 능통했다. 그가 훗날 농도 짙은 친일, 친미파가 된 것은 그의 출중한 외국어 실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신규식은 거사에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동경을 꼽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민필호를 내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운형이 장덕수를 적극 천거하는 것이었다. 신규식은 장덕수가 미덥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장덕수는 식민지 시대 최대의 민족적 거사였던 3·1운동과 그 전야제에 속하는 동경 2·8선언의 총체적 지도자가 신규식임을 증명하는 사람이 된다.

장덕수는 1월 27일 상해를 떠나 2월 3일 동경에 도착했고, 2월 5일 시바 공원에서 조용은을 만났는데, 이상하게도 이미 거사 준비가 완료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불과 3일 후인 2월 8일로 독립선언 계획이 잡혀 있었고 이에 따른 준비와 후속 대처 방안까지도 끝내 놓은 상태였다고 그는 진술했다.

장덕수는 자신의 할 일이 없다고 보고 상해로 복귀하기 위해 오던 중 서울에 갔다가 인천에서 머물던 중에 체포되어 일본 헌병의 취조를 받게 되었다. 그는 헌병대 취조실에서 며칠을 버티다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비교적 정확하게 진술하게 된다.

"1919년 1월 6~7일경 나는 광동에 가 있는 신규식에게 호출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에게 다음 사항들을 지시했습니다."

첫째, 독립 운동이 터지면 일제 관헌이 보도를 통제할 것이므로 동경과 서울에 가서 운동 상황을 상해 <중화신보> 기자인 조동호에게 통신할 것.
둘째, 동경에 가면 이미 손을 써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와세다 대학 기숙사에서 조용은을 만날 것. 
셋째, 동경의 운동이 2월 초순, 서울의 운동이 3월 초순에 실행될 예정이니 그 정황을 통신할 것.

"신규식은 나에게 여비조로 은화를 주더니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신규식은 민제호로부터 병세가 호전되어 상해로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신규식은 백주원과 김태수와 민필호까지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아무래도 우리 민 동지 보신이 필요할 것 같소. 예전에 박찬익 동지가 정산(뎬산) 호수에 가면 쏘가리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신규식은 중국인 경호 청년 대조신도 모임에 합류시켰다. 평소 말이 없던 그도 벙글벙글 웃으며 따라왔다. 대조신은 한국말이 아직 서툴렀다. 그는 백주원을 볼 때마다 엄지를 들어보였다. 중국에 있는 여자 중에서 제일 예쁘다는 표시였다. 대조신이 또 엄지를 치켜들자 신규식은 흐뭇한 눈길로 백주원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김태수가 대조신에게 말했다.

"미, 투!"

추석이 지난 지 한 달인 늦가을이었다. 호수의 물은 검고 차가워 보였다. 정산호는 산이 호수 중앙에 있다고 하여 정산이었고 호수의 이름은 그것에서 딴 것이었다. 상해 교외에 있는 가장 큰 담수호인 정산호는 강소성과 곤산현과 청포현의 접경이기도 했다. 구석기의 유물이 이따금씩 출토된다는 정산호에는 쏘가리 말고도 잉어, 붕어, 뱀장어 등 한국인과 친숙한 어종이 서식한다고 했다.

그들은 쏘가리 매운탕과 배갈을 주문했다. 술을 못하는 대조신은 다시 엄지를 치켜들었다. 무지하게 독한 술이라는 것이었다.

백주원이 신규식에게 잔을 올리면서 말했다.

"예관 선생님, 상해에서 술이."

그녀는 대조신처럼 엄지를 치켜 올리더니, "~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라고 물었다.

모두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제호가 말했다.

"백 동지만 알고 있는 사실이오."
"민필호입니다. 경성에서 저는 놀랐습니다. 김인용 옹의 집에 갔던 날 밤에 참 많이 마셨어요."

덧붙이는 글 | 식민지시대를 매혹적으로 살다 간 인간들의 삶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시대를 매혹적으로 살다 간 인간들의 삶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선우혁 #장덕수 #정산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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