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에서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 등 간부들과 회견을 하고있다.
연합뉴스 박창기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복도에서부터 이 대통령을 영접했다. 이 대통령은 의회 방명록에 별다른 메시지 없이 "이명박(LEE M. BAK)" 이라고만 서명하고 간담회장으로 들어섰다.
펠로시 의장은 "한국 대통령의 국회의사당 방문을 환영하고 깊은 우의를 느낀다"며 "이번 만남이 두 나라 안보증진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방문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는 펠로시 의장이 일부러 '안보 증진'에 힘을 주며, 전면전을 피한 셈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작심한 듯 "한미 관계 증진을 위해 오늘 만남을 기다려 왔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FTA 반대 의사를 가진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넘겨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40여분간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시종일관 한·미FTA 비준 지지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FTA를 체결하고, 지역적·범세계적 차원의 협력 등 동맹관계의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한·미FTA가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양국 관계 전반을 강화시키는 전략적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미FTA는 한미 공동의 이익에 기여를 하고, 그것이 한미 관계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조속한 비준과 발효를 위한 하원 지도부의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FTA 비준동의안 통과는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한국에는 미국 자동차가 4000대 밖에 안 들어가는데, 미국에서는 (한국 자동차가) 50만대 이상 팔리는 것은 언발런스(불균형)하다"며 협상 내용의 구체적인 문제점까지 지적했다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와 관련 "전문가가 낸 검역 관련 회의가 있기 때문에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이 완료되길 기대한다"는 정도로 간단히 답했다. 대신 FTA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에 도움이 되니까 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특히 민주당 소속인 펠로시 의장은 간담회 내내 한·미FTA 비준안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와 관련 간담회에 참석했던 정부 고위관계자는 "민주당 의원들이 FTA에 대해 반대한다는 걸 다 알고 찾아갔다"면서 "(펠로시 의장의 침묵은) 손님을 맞는 입장에서 대통령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통령이 직접 미 의회 상하원 지도자를 만난 중요한 목적은 FTA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한 의지를 설명하고, 그것이 미 의회에서 비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간담회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