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사흘동안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사흘만 볼 수 있다면>(헬렌 켈러 /산해)

등록 2008.04.18 16:05수정 2008.04.1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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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산해 ⓒ 이명화

▲ 책표지 산해 ⓒ 이명화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부산에 갔다 오다가 전철 역사를 빠져 나오는데 젊고 키도 훤칠하게 큰 청년이 긴 막대기를 잡고 막대기 끝에서 전해 오는 느낌으로 출입구를 발견하고 밖으로 더듬더듬하면서 길을 찾아 나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역사를 빠져 나갈 때 그가 제대로 빠져 나갔는지, 혹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진 않았는지 괜히 걱정이 돼서 고개를 쭉 빼고 한참을 밖을 쳐다보았다.

 

언뜻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긴 막대기로 바닥을 짚어 길을 찾는 그 젊은 청년의 모습을 보며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때 새삼스럽게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그리고 사지육신이 멀쩡하다는 것,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숨쉬는 공기 등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사흘만 볼 수 없다면?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으면서 만약에 사흘만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일평생 깜깜한 흑암 가운데 살았던 헬렌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그녀가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을 유쾌하게 말하고 있는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그녀 나이 53세에 썼던 것으로, 세계적인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되기도 했다.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엔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과 23살에 쓴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헬렌 켈러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를 안고 있었지만, 그녀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열정적이고 또한 적극적이고 열심히 자기 생을 살았던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멀쩡한 사지육신을 가지고도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내게 없는 것을 찾고 불만족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한다.

 

그녀는 태어난 지 1년 7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었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암흑의 세계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그녀는 자라면서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다르게 의사표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헬렌 켈러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고 했던 것처럼, 멀쩡한 눈을 가진 우리가 만약에 사흘만 볼 수 없다면? 그리고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암흑의 세계를 사흘 동안 경험하고 난 뒤에,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대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가 있을까. 그땐 내가 보는 것이 전에 보던 그것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볼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총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빛으로 충만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은총인지, 그래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생의 마지막처럼 그렇게 분초마다 예전에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보고 느끼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는 사람은 귀머거리일 뿐입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채로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는 소경밖에 모릅니다. 특히 후천적인 이유로 청각이나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더욱 감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하지만 시각이나 청각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그 능력이 얼마나 축복 받은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도 못합니다.”

 

그녀는 이 빛으로 충만한 세계에서 시각이란 선물을 삶을 풍성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단지 편리한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헬렌 켈러가 53세에 썼던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은 당신이라면 역설적으로 내가 만약 '사흘만 볼 수 없다면'하고 생각해보라. 본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축복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해서 우리는 참으로 하루하루 내게 온 이 하루를 덤으로 받은 것, 선물이라 여기고 그 하루를 사랑하고 또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이다.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그녀는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을 보고싶다’고 그리고 가장 먼저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다‘고 한다. 둘째 날에는 영화나 온갖 영화를 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공부하고, 셋째 날에는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낼 것이라 한다. 사흘동안 밖에 볼 수 없기에 그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바쁠 것이라고 말한다.

 

헬렌 켈러는 우리가 만약 갑자기 장님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실제로 그런 운명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의 눈은 '이전에 결코 본적이 없는 것들을 보게 될 것이며, 다가올 기나긴 밤을 위해 그 기억들을 저장할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만큼 눈과 이 눈으로 보는 것들을 소중히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게 하며, 도전을 주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헬렌 켈러의 이 말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운명적인 만남

 

생후 열아홉 달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에게 큰 축복이 있었다면 설리번 선생과의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헬렌은 설리번 선생과의 만남을 일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날이 있다면 바로 앤 맨스필드 설리번 선생을 만난 날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설리번 선생과의 만남은 그녀에겐 축복이었다. 설리번 선생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 느끼는 법,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녀는 운명처럼 함께 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선생님 따로, 나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삶의 발자취는 고스란히 선생님의 발자취다. 내게 훌륭한 점이 있다면 그건 모두 선생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분의 사랑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내겐 재능도 영감도 없었을 것이다. 기쁨 또한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1981년 처음으로 장애인의 날 행사로 개최한 이후 해마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해 기념식과 축하 행사 등을 하며, 전국 각지에서 시, 도별로 각각 장애인 체육대회와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열기도 한다. 그리고 잊혀진다. 장애인의 날로 지정된 이 하루만 하나의 행사치레로 끝나기 십상인 것이다.

 

옛날에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숨기고 밖으로 내보내지 않아서 더 큰 장애를 얻거나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옛날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장애인 공동체를 이루고 세상 속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장애인의 날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누구나 다 예비 장애인이고 누구나 적어도 한가지씩은 장애를 갖고 있다고 본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정신적 장애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신의 장애를 가졌지만 건강한 사람이 있고, 육신은 멀쩡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좀더 달라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우리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우연히 장애인의 날을 며칠 앞두고 읽게 되었다. 견디기 힘들었을 삼중 장애를 안고도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인간승리의 삶, 헬렌 켈러는 오늘도 비장애인이나 장애인들에게 큰 도전과 감동을 주리라 본다.

 

오늘은 선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 오늘은 어제 죽어간 그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그 하루라고 생각한다면, 이 하루를 어떻게 헛되이 보낼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한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시간은 짧고, 또한 내게 주신 그 하루, 그 시간들이 귀하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시간, 오늘을 충만하게 살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헬렌 켈러의 말을 전하며 끝을 맺을까 한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다른 감각기관에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모두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십시오.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 보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덧붙이는 글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 자서전/산해/이창식. 박에스더 옮김

2008.04.18 16:0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 자서전/산해/이창식. 박에스더 옮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그리고 헬렌 켈러 이야기

헬렌 켈러 지음, 신여명 옮김,
두레, 2013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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