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의 젊은이는 흰머리가 되어 45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김동수
김 교수의 몸은 비록 삼만 리 타국에 있었지만,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을 벌이며 한국사의 한 켠에 서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말하고 싶다.
"내가 이 나이에 글을 써서 이름을 날릴 가능성이 있겠소? 다만 내가 믿는 바, 신앙과 실천 같은 걸 재밌는 글로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이지. 내가 투병하면서 느낀 거나 반독재와 통일 운동하면서 생긴 에피소드 이런 거, 특히 분단의 아픔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고 싶어요. 그러면 내가 풀지 못했던 걸 다른 사람들이 풀 수 있지 않을까."뒤늦게 글맛을 안 그는 밤마다 글을 쓴다. 늦은 밤 자신의 오랜 기억을 되새김질하듯 퍼올린다. 일기를 꾸준히 쓴 건 아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기억이며 이런 것들이 세세히 저장돼 있다.
김동수 교수 본인이 고백하듯, 그의 글은 화려한 미사여구도, 빠르게 읽히는 재미도 없다. 하지만 그가 온몸으로 겪어낸 살아 있는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솔직함과 지금까지의 경험이 그의 최대 무기다. 인터뷰하면서도 자신을 미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몇 줄만 써보라며 말하던 그다.
"예기치 않았지만, 말년에 도를 닦는 기분이에요. 수필은 내가 경험한 것을 솔직하게 풀어놔야 하니까. 나 자신이 정직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지요. 글을 쓰면서 수양이 되는 것 같습니다."지금 김동수 교수는 횃불트리아니신학대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병 때문에 일 년에 반만 활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학생들과 토론하고 공부하는 게 무척 재미있다고. '한국에서 가르치고 싶다'던 오래 전 꿈을 지금에서야 이룬 셈이다. 대학교에서 젊은이들과 섞여 지내니, 마음이 늙을 새가 없다. 지금도 새로운 것을 보면 한번 해봐야지 한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는 마음이 노년에도 수필가로 등단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우리집 다락방에서 오마이뉴스가 태어났죠"사실 김동수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인연이 있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북한 인권법에 대한 분석 기사를 몇 편 썼고, 2005년 세계시민기자 포럼에선 가장 연장자로 통역 자원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김동수 교수는 <오마이뉴스>가 자신의 집 다락방에서 탄생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오연호 대표와는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어요. 오 대표가 미국에 유학 왔을 때 우리 어머니 회고록을 같이 정리했지. 독립투사셨던 남편 때문에 고초가 여간하지 않았거든요. 95년인가, 두어 달 오 대표가 우리집에서 지냈지. 그 때 오 대표가 우리집 다락방에서 <오마이뉴스>를 구상했다고,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당시에 그걸 생각했다는 게 놀라운 일이지요. 누구나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거, 언론의 진정한 민주화는 그런 거 아니겠어요?"그때만 해도 이메일을 주고 받는 게 전부였는데 시민들이 기자가 돼 기사를 공급한다는 생각은 '대혁명'이었다며 김 교수는 흥분했다. 당시엔 기술이 받쳐줄지 확실치 않았는데, 지금 오마이뉴스가 자리잡은 걸 보면 뿌듯하다고. 자기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인생 문제를 상담해 주는 칼럼을 써보고 싶었다며 아쉬워했다.
팔팔한 젊은이로 한국을 떠나 백발성성해져서야 다시 한국에 돌아온 김동수 교수. 올해 일흔두 살임에도 스스로를 '간 큰 젊은이'라고 우기고 있다. 비록 머리는 다 희고 수염도 덥수룩하지만 백세주(白歲酒)를 마시며 나이를 따진다면 아직 스물 여덟 해가 모자라니 젊은이가 아니냐는 거다. 10년 전에 죽을 뻔했는데 새 생명을 받아 살아났으니 또 젊은이라는 소리다.
젊은 만큼 그에겐 할 일이 많다. 수필집도 한 권 내고, 그동안 써둔 시들을 다듬어 시선집도 내어보고 싶다. 무엇보다 학교를 통해 남북교류의 밑거름이 되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끊이지 않는 행보에 '도전'이란 말을 갖다 붙이는데, 정작 본인은 도전을 어떻게 생각할까?
"글쎄, 이제와 글 배워서 뭘 하겠느냐고 하는데 내 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나도 하면 되겠다'는 용기가 생기지요. 육체적으론 기운이 딸리고 제한이 있지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는 거. 그게 도전이지요."얼마 전 자신의 이력에 수필가를 새로이 추가한 노(老)교수. '간큰 젊은이'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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