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은 봄에 먹는 무공해 자연식품이다. 요즘은 삶은 죽순을 냉동보관하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전갑남
지금 아랫녘에서는 죽순이 한창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맘때쯤이면 빠끔히 고개를 내밀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봄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 대밭에 들어가면 반가운 죽순을 만날 수 있었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 대밭은 봄기운으로 넘쳐난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댓잎이 깔린 무게를 떨쳐내며 죽순의 솟구치는 힘을 느낀다.
나는 봄에 아버지를 따라 대밭에 가곤 했다.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리고 연한 죽순을 땄다. 적막할 것 같은 대밭은 바람에 서걱대는 댓잎소리로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푹신푹신하게 깔린 댓잎은 또 어떤가? 양탄자를 밟는 느낌으로 발걸음도 가벼웠다.
죽순은 자라는 속도가 놀랍다. 아침에 본 것을 오후 늦게 보면 몰라보게 자라있다. 대나무 자라는 것은 눈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루에 최고 15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죽순은 30~40cm 정도 자란 것을 꺾어야 가장 맛이 있다. 때를 놓쳐 꺾으면 쇠서 먹을 수 없게 된다. 통통한 것일수록 질감이 연하고 맛도 좋다.
아버지는 대밭에 들어가면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셨다. 눈에 띄는 여남은 개를 따면 그만이었다. 앞으로 자랄 대나무를 생각해 함부로 꺾지 않으셨다.
내 어릴 때만해도 지금처럼 죽순으로 다양하게 요리를 해먹었지 않았다. 죽순 따던 일이 생각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도 죽순을 불에 구워 먹어 봤어?""난 없는데, 오빠들은 구워먹었던 같아요. 맛이 어땠을까 궁금해요.""향과 씹히는 촉감이 독특했지.""아삭아삭하기도 했을 테고…."지금은 어지간해서 맛볼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먹을 게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의 색다른 경험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죽순이 이렇게 몸에 좋을 줄이야!어머니는 꺾어온 죽순을 바로 가마솥에 넣고 삶았다. 죽순을 삶을 때 가마솥 뚜껑 사이로 새어나온 김 냄새에서 단내가 났다. 껍질을 벗겨내면 보드라운 속살은 입맛을 다시게 하였다. 정갈한 솜씨로 죽순을 썰어놓으면 머리빗 모양의 살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