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번 갑문
김병기
운하 방문자센터에서 목격한 '미국운하의 현재' 우리 일행은 질척해진 신발을 이끌고 '운하 방문자 센터'(Canal Visitor Center)로 향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방문자센터 앞쪽에 위치한 39번 갑문. 폭 3m, 길이 30m 정도되는 나무 갑문의 안쪽은 꽁꽁 얼었다. 운하를 통행하는 배들은 이곳에서 1~2m 정도 수직상승하거나 하강한 뒤에 계속 제 갈길을 갔을 것이다.
나중에 센터 안쪽의 동영상을 보고 안 사실인데 이 갑문은 수동이다. 갑문을 열려면 핸들같은 것을 사람이 마구 돌려야 한다. 또 배가 갑문 안쪽으로 들어오면 갈고리같이 생긴 도구를 이용해 사람이 배를 끌고 갑문을 통과해야 한다.
방문자 센터는 흰색 2층 건물이다. 1층에 놓여있는 낡은 가죽 사진첩과 액자에는 1800년대의 '운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09마일의 거리를 80시간에 운행한다는 광고전단지도 눈에 띄었다. 오하이오-이리 운하가 40여개의 갑문을 거쳐 395피트의 고도차를 극복하는 모형도 만들어져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벽면 위쪽에 연도별로 운하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령 '1825년'이라고 적힌 글씨 위에는 운하에 정박한 배에 짐을 싣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1880년'에는 커다란 기차가 운하를 대체하고, '1900년'에는 텅빈 운하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한가롭게 다니고 있다. 이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4년'에는 자전거에 아이들을 싣고 운하 주변을 다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담겨있다. 미국운하의 과거와 현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연대기다.
이 운하 '역사 박물관'을 나오면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한반도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운하가 만들어지면 물류혁명을 통해 제2의 국운융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2100km에 달하는 남쪽운하 구간 곳곳에 내륙항이 생기면 지역 경제가 되살아나고, 각 지역의 효자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미국 오하이오-이리 운하는 100년전에 그 수명을 다해 사실상 폐기처분됐다. 반면 1세기가 지난 지금 '역사박물관'에 들어간 운하를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인 양 외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심하게 표현하면 노새를 끌고 선진국의 문턱을 넘자고 외치는 꼴이다.
'운하 찬성론자', 선진국의 운하를 보고 배워라미국은 폐기처분된 운하를 신주단지 모시듯 유물로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한강과 낙동강 등 4대강 유역에 산재한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을 수장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실용주의 경제일까?
"선진국의 운하를 봐라."운하 찬성론자들이 논리적 반론에 말문이 막히면 항상 해왔던 말이다. 하지만 정작 선진국의 운하를 봐야할 사람은 운하 찬성론자들이라는 것을 오하이오-이리 운하 역사박물관은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