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상에도 오르는 일년 치 고사리를 따느라 어떨 때는 해가 지는지도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 인적 드문 산에 계실 때는 저녁 늦게까지 연락이 두절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봄, 쿠하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재미삼아 따라갔는데 유난히 무덤가에 많이 난 고사리들을 끊으면서 평소 남의 무덤가에는 가본 적도 없는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으스스하다거나 그런 생각 전혀 안 들고 하나라도 더 따려는 본능만 작동하더군요) 고사리들을 땄습니다.
이 책은 제목은 <고사리야 어디 있냐?>지만, 산에서 나는 나물을 수십 가지 보여줍니다. 한 책에서 보여주기에 너무 많은 식물들이 등장해서 엄마인 저도 소화하기 버겁지만 10쪽과 11쪽을 펼치면 나타나는 고사리밭에 이르러서는 잘 모르는 엄마도 할 말이 많아집니다.
먹는 게 흔해진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지만, 예전에는 가난한 농가에서 새 며느리를 고를 때 나물 이름 서른 가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묻곤 했다고 합니다. 나물 이름을 많이 아는 처녀가 들어와야 춘궁기에 나물밥이며 반찬으로 식구들 배를 덜 곯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고요.
간신히 고사리나 쑥이랑 곰취 정도만 구분해내는 저같은 사람은 면접에서 탈락했을 그런 시절 이야기지만, 중국산 식재료가 문제가 되는 뉴스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봄내 채취해 얼려둔 산나물 반찬 거리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먹을 거리는 흔해졌지만,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은 귀해진 시절이니 이런 책이 더 반가울 따름입니다.
새봄이네가 새로 이사 온 동네에는 공터가 있습니다. 쓰다 버린 물건들이 쓰레기처럼 지저분하게 뒹굴고 있어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공간입니다. 그 공터에 지렁이가 산다는 것을 발견한 새봄이 엄마는 "기름진 흙이라 아무거나 잘 자랄텐데" 하고 아쉬워합니다.
일요일 아침, 아이들은 늦잠 자는 아빠를 졸라 공터에 꽃밭을 만들자고 합니다. 쓰레기를 치우고 공터에 씨앗을 심는 일은 귀찮고 힘들지만 아이들은 언제 싹이 나느냐며 들뜬 기분입니다.
이 책은 아직 쿠하 또래 아이에게는 조금 이른 책입니다만, 글밥을 다 읽어주지 않더라도 내용을 요약해서 두어 줄씩 읽고 넘어가면 그런대로 끝까지 듣는 책 중에 하나 입니다. 제 집이 아니면 무심히 넘기는 쓰레기장 같은 공터도 아이들 눈에는 숨어있는 꽃밭까지 보이는가 봅니다.
사실 쿠하 또래 유아들에게는 이 책이 제일 잘 맞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엄마 욕심으로 위의 책들을 억지로 읽어주지만, 쿠하가 제일 신나하며 읽는 책은 '우리 함께 길러요' 입니다. 왼쪽에는 그림으로 콩밭이나 벼가 자라는 논, 호박 넝쿨이 등장하고, 아래 문장이 반복됩니다.
"따스한 햇살
촉촉한 물
듬뿍 줄까?"
오른쪽에는 콩, 무, 호박, 옥수수, 오이 등 우리 밥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채소들이 사진으로 등장합니다. 쿠하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 나오는 먹을 거리들을 제 입에 한 번, 엄마 입에 한 번 넣어주며 좋아합니다.
봄이 가기 전에 산에서, 들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나비가 나오는 책들로 아이들 감성을 쑥쑥 키워주면 좋겠습니다.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세밀화 책 들고 한창인 애기똥풀이나 민들레, 제비꽃을 보여줘도 행복한 봄날이 되겠지요?
2008.04.30 09:2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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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날아간다
김용택 지음, 정순희 그림,
미세기,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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