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왜 상주가 될 수 없나요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르며

등록 2008.04.28 08:50수정 2008.04.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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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의례는 전통 4대의례(관례, 혼례, 상례, 제례) 중 절차와 격식이 가장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상주가 상여를 뒤따르고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조찬현


장인어른께서 병상에 계신 지 달포 만에 별세하셨습니다. 인생의 연수가 보통 70세요, 강건해야 80세라고 합니다. 장인께서는 만 90세까지 사셨으니 장수했다고 할 수 있으나 돌이켜보면 잠시 잠깐의 삶을 사시다 가신 것 같습니다.


눈을 감으시기 하루 전만 하더라도 시골집에 그토록 가고 싶어 하셨는데 막상 세상을 뜨시고 나니 그 소원을 못 들어준 게 큰 불효로 가슴에 남습니다. 영정사진을 들고 장인께서 평생 사시던 집과 마을을 한 바퀴 돌긴 했지만, 이 세상과의 연을 끊으신 후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처가에는 아들이 없으므로 장녀인 아내를 대신하여 제가 상주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혼 무렵 장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맏상제 역할을 한 번 했고, 이번이 두 번쨉니다.

'어이~ 어이~' 하며 곡을 했다는 이유로 호되게 꾸중 들어

16년 전 장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상례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필자는 조실부모했으므로 상례를 익힐 기회가 없었음)에서 처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상복과 두건을 착용하고 조장(弔章)을 두른 채 상주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문객이 문상을 오면 지팡이를 짚고 손아래동서와 함께 '어이~어이~' 하며 곡을 한 후에 문상객과 맞절을 하곤 했습니다. 격식을 차려가며 정신없이 상주노릇을 하던 둘째 날, 문상객이 찾아왔기에 여느 때처럼 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을터줏대감격인 처의 재종숙이 느닷없이 "이 놈~ '어이~어이'가 뭐꼬!"라며 저를 향해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보았으나 저를  꾸중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유인즉슨 맏사위인 저는 상주로서 '아이고~아이고~' 하며 곡(哭)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손아래 동서와 똑같이 '어이~어이~' 하며 곡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주로서 처가를 얕잡아 보고 '어이~어이~' 하며 곡을 했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았던 것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필자가 4대 의례(冠婚喪祭) 중 절차가 가장 까다롭다는 장례의식을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궁지에 몰려 어쩔 줄 몰라 하던 저를 본 아내가 "아제요. 제가 듣기에는 노 서방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바르게 합디다"라고 한 수 거들어 주는 바람에 저는 생경하고도 어리둥절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처가가 경상도 북부지방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래된 유교의 장례풍습이 그대로 전수되는 듯 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곡을 하는 외에도 이것저것 의례를 따지는 게 많다보니 고인에 대한 애도보다는 격식에 얽매여 고생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납니다.

체면 때문에 부의금대신 조화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장모님 장례 때 생긴 일이 그 후에도 문득문득 떠올라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서 상가에 갈 일이 생기면 상주들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생면부지의 처 재종숙한테 곡 때문에 꾸중을 들은 것도 따지고 보면 명색이 맏상제임에도 불구하고, 제 문상객이 너무 적고 조화도 너무 적게 들어온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인 상에는 나름대로 체면 구겨지지 않게 처신하기로 작정해오던 터였습니다.

아내와 처제들이 결혼을 하면서 모두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처가 쪽에서는 조문객이 많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조화도 특별히 들어올 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상집에 조화가 너무 없으면 상주의 체면도 서지 않고 분위기 또한 더욱 쓸쓸할 것 같아 부고를 알리면서 가급적 부의를 돈으로 하지 말고 조화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조화가 30개 넘게 들어오면서 장소가 비좁아 겹쳐놓기도 하고 화장실 앞까지 죽 늘어놓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조의금으로 받았으면 300만원이 넘었을 돈을 조화로 받아 모두 쓰레기로 버리게 되니 아깝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체면 때문에 조화를 보내라고 했던 게 결국 낭비를 부추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연중에 친구와 지인들한테 2중 부담(조화 값은 최소한 10만 원 이상임)을 준 건 아닌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돌아가신 장인께서 정말로 이 꽃을 보고 좋아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니 저의 알량한 허영과 체면이 몹시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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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인생길이 왜 이리도 쓸쓸해 보이는지요. ‘저승 가는 길에는 객점도 없다는데 오늘밤에는 뉘 집에서 묵으리오’ 라고 했던 성삼문의 수형시(受刑詩)가 생각납니다 ⓒ 오마이뉴스 조찬현



내 딸이 상주노릇 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막상 장례식을 치르고 나니 조문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도 하고 이것 저것 정리도 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럭저럭 결산을 해보니 조의금이 장례비용보다 더 많이 들어와 아내 보기에 체면이 좀 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조화가 단 한 개도 오지 않았고, 부의금도 생각보다 적게 들어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후 직장에 알아보니 빙부 상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관례상 조화를 보내지도 않고 문상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하기야 돌이켜보면 저 역시 직원들의 빙부·빙모 상에는 부의를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자주 참석하는 학교동창모임이 한 군데 있는데 그곳에서도 친구들이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창회에서는 제가 장인 상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경상도지방의 경우 처가 상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 문상 의무감으로 와 닿지 않은 까닭에 제 빙부 상을 널리 알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관행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섭섭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습니다. 필자야말로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직장에서 부의금을 받을 기회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처가 상(妻家喪)을 홀대하는 풍습 때문에 부의를 적게 받다보니 왠지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이런 섭섭한 마음 또한 제 자신이 부의(賻儀)의 뜻을 왜곡되게 해석한 데서 온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원래 부의야말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기부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각박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주고받는(give and take) 돈이나 물품 정도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앞으로 상제에 관한한 본가와 처가를 따지지 않되, 가난한 집안에 초상이 나면 부의를 좀 많이 하고, 형편이 넉넉한 집안에 초상이 나면 부의를 좀 적게 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어차피 부의의 참뜻이 상제를 조건 없이 도우는 것에 있을 바에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처가에서는 상주인 필자가 처가를 무시하는 투의 곡을 했다며 나무라는 장례문화의 이면에, 사회(직장과 동창회 등)의 인식은 여전히 처가 상에 대하여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장모상을 당했을 때 처재종숙이 그렇게 저를 나무랐던 것도 따지고 보면, 처가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못마땅하게 여긴 데서 비롯된 서운함의 발로였을 겁니다.

저 역시 두 딸만 키우는 아버지로서 이 다음에 사위와 딸한테 이같은 부담을 지우지 않고 눈을 감고 싶습니다. 앞으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어 처가에 대한 홀대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더 나아가 제가 세상을 떠날 때는 가능한 한 사위가 아닌 제 딸이 상주가 되어 떳떳이 저의 장례를 치러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장례문화 #상주 #처가상 #부의 #빙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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