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샤, 우구, 한 달 만에 돌아온 반가운 샘이 함께 했다(브렌단은 가족회의가 있어 오지 못했다). 우리가 생각한 만큼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즐거웠다. 성천이와 나는 사실 진정 많은 음식을 계획했었다.
밥, 된장찌개, 떡볶이, 호박전, 부침개. 일단 호박이 없어 성천이는 당근을 썰어 전을 했다. 신선한 당근이 아삭아삭하게 씹혔다. 나의 된장찌개는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어째 좀 신 맛이 났다. 또한 나의 떡볶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이 오래 묵었는지 어쩐지 좀 칙칙했다. 있는 야채 갈아 한 성천이의 부침개는 그 모양과 질감이 흡사 핫케이크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멋모르고 잘 먹었다.
성천이는 비료더미 옆에 있던 목재로 윷을 만들었고, 놀이판도 안 쓰는 상자를 재활용해 뚝딱 만들어 윷놀이판을 벌였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 윷놀이법을 잘 몰랐다가 이 날에야 배웠다(나는 그냥 내 차례 오면 던지면 사람들이 다 알아서 말 이동해줬다). 다들 처음엔 뭐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점차 룰을 알아차리더니 나중에는 "도우!" "개이!" "유트! 유트! 유트!" 외치며 엄청 몰입, 흥분과 열정의 윷놀이를 이루다.
나는 한국 역사에 대한 작은 강좌를 준비했다. 단군신화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강좌. 우구와 샘이 질문하고 얘기하고 하다보니 더 커졌다. 우구가, 남한은 일본과 문화가 비슷하고 북한은 중국과 비슷하다고 봐도 되냐 해서 난 폴짝 뛰며 아니라고 하고 한국전쟁과 남북한에 대해 가르쳐줬다. 잘 가르쳐줬겠지? 사실 한글에 관한 강좌도 준비했는데 이거 끝나고 보니 밤 11시가 다 되어 눈물을 머금고 사람들을 보냈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드디어 돌아온 샘,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샘! 최강 닭팀의 또 한 명의 일원인 샘, 처음 2주 같이 있다가 친구 장례식과 아버지의 병환으로 한 달이나 자리를 비웠던 샘, 고작 2주 같이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한 달 내내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가 드디어 4월 26일 도착했다.
1965년생으로 우리팀의 왕고참이며 유일한 현지민, 호주인인 샘. 샘은 지금껏 여러 가지 일을 해봤는데 그 중 농장일이 가장 좋단다. 사무실에 들어앉아 하는 일은 싫고, 동물과 식물을 좋아하는데다가 농장일은 매일마다 조금씩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고. 돈은 많이 못 벌지만 행복하게 웃을 수 있으니 괜찮단다. 이 코스에 오기 전에 샘은 아버지의 농장을 기본으로 두고, 다른 9개의 농장을 농장주로부터 맡아 관리해주고 있었단다. 동시에 경매장에서 판매자로도 일하고. 엄청 바빴겠다.
사실 샘은 10년도 더 전부터 크리스탈워터스와 인연을 맺어왔다. 유기농법과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다가 맥스의 코스를 들었던 것. 이번에도 이 코스가, 배우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또 분주한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호흡을 조절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여기로 왔다.
샘의 꿈은 자신의 농장을 가지는 거다. 유기농법을 써 가꿀 그 농장을 교육센터로 활용하고도 싶단다. 어린이들도 와서 보고 가고, 관심 있는 사람도 와서 배우고 갈 수 있는 교육장을 마련하고 싶단다. 세계적으로, 신선한 먹을거리가 점점 귀해지고 있는 상황에 먹을 것을 직접 가꾸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샘은 따뜻하다. 부지런하다. 언제나 정규 수업 외 잡일에는 샘이 나섰었다. 아이같이 웃는다. 샘이 40대라는 걸 난 인터뷰를 하면서야 알았다. 한 달 만에 돌아온 샘을 우리는 매우 반겼지만 샘은 금요일에 다시 돌아가서 편찮으신 아버지를 보살펴 드려야 한다. 지금은 가족을 돌볼 시기라고 생각한단다. 샘이 이번에 다시 가면 이번에는 정말로 언제 돌아올지, 혹은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도 확신할 수 없다. 고작 일주일 머물고 떠날 거라니. 샘은 이번에 사실 내 인터뷰 받기 위해 돌아온 거라고 나랑 농담 따먹기했다.
샘의 아버지, 수술 잘 받으시고 잘 회복하시길 모든 게 순조롭길. 그리고 샘이 코스에 다시 돌아와서 우리의 든든한 왕고참이 되어주길.
사실 우리는 저번 주에 1박 2일로 피서를 갔다. 크리스탈워터스에서는 차 타고 버스 타고 갈아타고 세 시간 쯤 가는 누사라는 해변 지역. 저번 주 주말은 어쩐지 더 추워지기 전에 피서를 갈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다. 성천이는 다른 스케줄이 있어 못 간다 하고 알리샤와 브렌단, 우구와 내가 인터넷으로 찾아본 누사는 하얗게 깔린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지역. 우리는 한껏 들떠 백팩커를 예약하고 버스편을 찾아봤다. 우리가 예약한 백팩커에서는 뭔진 모르겠지만 서프보드도 무료로 빌려준단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피서를 떠나기 위해 금요일 밤에 기사까지 다 써놨다. 그리고 이것저것 먹을 것 챙겨 토요일 아침 출발, 앗싸 신난다! 했는데 비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