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니들 재밌게 놀라고 그냥 걸은겨"

한반도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 참가기

등록 2008.04.29 10:49수정 2008.04.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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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길게 펼쳐진 금강 줄기를 바라보며 걷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단

길게 펼쳐진 금강 줄기를 바라보며 걷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단 ⓒ 송성영

길게 펼쳐진 금강 줄기를 바라보며 걷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단 ⓒ 송성영

"아빠, 오늘 덥겄다."

"왜?"

"안개가 끼었잖어."

 

어제(4월 27일) 오전 9시. 공주시 검상동에서 백제 큰길을 따라 금강을 옆에 끼고 한반도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단과 함께 걷다가 우리집 작은아이 인상이 녀석이 희끄무래 안개낀 금강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공주에 사는 아이들 중에는 이웃사촌인 정한섭씨네 승규와 지원이도 함께 걸었습니다. 인상이는 초등학교 6학년, 승규는 4학년, 지원이는 2학년입니다. 

 

걸음을 옮겨갈 수록 안개가 걷혀나갔습니다. 도보순례단이 대운하 계획을 지워나가듯이 말입니다.  

 

안개 걷힌 강줄기를 보다가 그냥 앞만 보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비좁게 흐르는 금강 줄기를 보다가  앞에 걷던 인상이 녀석의 안쪽이 다 닳은 신발을 보았습니다. 신발이 다 떨어졌건 말건 학교에 잘 다니는 인상이였지만 애비된 자로서 가슴이 쓰렸습니다. 

 

"다리 안 아퍼?"

"아니…."

"신발이 다 닳았으믄 말했어야지 임마."

 

걷던 중간에 어느 무덤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한 시간을 걸었는지 두 시간을 걸었는지 시계가 없어서 알 수 없었습니다.

 

작은 스피커를 타고 흐른 목사님의 목소리

 

묵언으로 걷던 도보 순례단의 김민해 목사님이 앙증맞게 생긴 아주 작은 스피커가 달린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했습니다. 대중가요였는데 어떤 노래였는지 기억에 나지 않지만  노랫소리가 좋았습니다. 듣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이어서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를 함께 불렀습니다.

 

"무덤 주인이 기분 좋겠네요, 우는 소리만 듣다가 노래는 처음 들었을 겁니다."

 

목사님 말대로 그럴 것 같았습니다. 10여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걸었습니다. 강줄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길을 언제 또 걸어볼 수 있을까?

 

도보 순례단에게 감사하고 또한 대운하를 파겠다는 저들에게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대운하 계획이 없었다면 도보 순례단도 없었을 것이었고 순례단 따라 아들과 함께 금강을 끼고 걸을 수 없었을 것이었으니까요.

 

저들의 파괴적인 욕망이 깊어질수록 '생명의 강'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더 맑아지고 깊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금강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금강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 송성영

금강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 송성영

 

어디쯤인가에서 금강 줄기를 타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내가 처음 만난 금강은 낚시와 함께였습니다. 70년대 초, '국민학교' 6학년 무렵이었습니다. 낚시광이었던 큰 형님을 따라 처음 금강에 왔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우리 고향은 대전천 상류지역인 대전시 옥계동입니다. 동네 이름 그대로 구슬처럼 맑은 물이 흘렀습니다. 물은 맑았지만 폭이 좁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좀 더 넓고 깊은 곳으로 가보고 싶었습니다. 금강으로의 낚시를 따라나서기 위해 한 달 넘게 큰형에게 지렁이를 상납해야 했습니다.

 

당시 대전에서 공주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완행버스는 고불고불한 비포장 산길을 터덜거리며 달렸습니다. 길이 비좁아 반대편에서 자동차라도 만나면 폭 너른 도로까지 한참을 뒤로 후진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달려온 금강. 냇가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금강은 컸습니다. 넓었습니다. 깊었습니다. 어지럼증이 났습니다. 그 금강물을 떠서 밥을 지어먹고 물을 끊여 식수로 사용했습니다.

 

조립식 대나무 낚시대를 펼쳐놓고 칸데라 불을 밝혀가며 하룻 밤 사이에 붕어·잉어는 물론이고 메기며 빠가사리라 불리는 동자개를 대바구니 가득 잡았습니다. 70년대 초, 당시만 해도 금강은 물 반 고기 반이었습니다.

 

a  백제 큰길 옆으로 펼쳐진 금강을 걷는 도보순례단

백제 큰길 옆으로 펼쳐진 금강을 걷는 도보순례단 ⓒ 송성영

백제 큰길 옆으로 펼쳐진 금강을 걷는 도보순례단 ⓒ 송성영

 

그리고 30여년이 흐른 어느날, 과거 어린 나만한 우리집 아이들을 데리고 낚시를 간 적이 있습니다. 낚시가 잘 되는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해서 그런지 예전에 잡았던 어종들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최근 금강에서 그 귀한 쏘가리가 심심찮게 잡혀 나온다고는 하나 우리 낚시대에서는 쏘가리는 물론이고 메기며 동자개 또한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낚시대에 잡혀 올라오는 물고기들은 어쩌다 붕어 한두 마리에 눈치·강준치·피라미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보도순례단과 함께 걷다가 백제 큰길 다리 아래 금강줄기에서 큼직한 물고기 떼를 만났습니다. 어종에 일가견이 있는 이웃사촌 정한섭씨 말로는 '눈이 붉은 강고기'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눈불개'라고 합니다.  40㎝급 이상은 족히 돼 보였습니다. 금강과 만경강에서 주로 서식하는 숭어과에 속하는 이 눈불개를 공주지역에서는 '동서'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욕망의 강을 정화시킨 '눈물'

 

보도 순례단은 두 번째 휴식을 취하고 중간 목적지인 곰나루를 향해 걸었습니다.  강과 도로 사이를 걷어 오면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운전자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줍니다. 모두가 반갑습니다. 운전자들 중에는 더러 한반도 대운하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곰나루에 도착하자 정토회 사람들이 길게 양옆으로 서서 박수로 반겼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두 손 모아 답례를 했지만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보였습니다. 76일째. 2천리를 걸어 오면서 숱한 고통을 감내 해온 종교인에게 향한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또한 종교인들이 선사한 값진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눈물은 '생명을 죽이는 강', '욕망의 강'을 정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a  금강을 옆에 끼고 백제 큰 길을 따라 곰나루까지 씩씩하게 걸어온 송인상. 정승규. 정지원

금강을 옆에 끼고 백제 큰 길을 따라 곰나루까지 씩씩하게 걸어온 송인상. 정승규. 정지원 ⓒ 송성영

금강을 옆에 끼고 백제 큰 길을 따라 곰나루까지 씩씩하게 걸어온 송인상. 정승규. 정지원 ⓒ 송성영

 

곰나루 솔밭에 앉아 각자 싸온 점심을 맛있게 먹은 뒤 정토회에서 마련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1180명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거기에 여러 단체들까지 합치면 1500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곰나루에 모였습니다. 

 

둘이 모이면 세 사람의 힘이 생깁니다. 개울이 모여 냇물이 되고 냇물이 모여 강물이 됩니다. '생명의 강'으로 힘차게 흐를 수 있습니다. 생명의 강을 지키는 사람들이야 말로 '생명의 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보순례 종교인들의 '한반대 대운하 반대'는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저들이 역사의 죄를 짓지 않도록 구업하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운하를 강행하려는 사람들마저 껴안자는 것입니다. 생명의 강은 모두를 껴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욕심으로 죽임을 당한 뭇생명들을 위한 천도제가 열리고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노래하고 박수치고 한층 들뜬 공연 무대가 이어졌지만 아이들은 저만치에서 내내 모래장난에 빠져있었습니다. 명상의 시간. 어른들이 입을 닫고 눈을 닫고 명상에 잠겨 있을 때 바람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a  행사와는 상관없이 모래 장난을 하고 있는 아이들

행사와는 상관없이 모래 장난을 하고 있는 아이들 ⓒ 송성영

행사와는 상관없이 모래 장난을 하고 있는 아이들 ⓒ 송성영

 

a  정토회 행사장에서 모래를 가지고 노는 어린 자매

정토회 행사장에서 모래를 가지고 노는 어린 자매 ⓒ 송성영

정토회 행사장에서 모래를 가지고 노는 어린 자매 ⓒ 송성영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또한 자연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세상은 시끄러워 집니다. 어른들의 목소리 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세상은 명상의 시간처럼 분명 평화로울 것입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생명의 강을 닮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생명의 강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미래, 아이들을 지키는 입니다. 욕망의 강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말입니다.

 

곰나루에 모인 사람들은 다시 공주 둔치 공원을 향해 강물처럼 힘있게 걸었습니다. 도보순례단은 내겐 강물이었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의 강물을 타고 흘러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립습니다, 그 맑은 물이

 

a  금강 둔치 공원에 도착한 대운하 반대 도보 순례단

금강 둔치 공원에 도착한 대운하 반대 도보 순례단 ⓒ 송성영

금강 둔치 공원에 도착한 대운하 반대 도보 순례단 ⓒ 송성영

 

목적지인 공주 둔치 공원에 도착해 둥그렇게 둘러 앉았습니다. 도보 순례단들은 대운하 계획을 매일 15㎞씩 2천리를 지워나왔다고 합니다. 한반도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 76일째. 그렇게 그들의 고통과 땀으로 어리석고 어리석은 대운하 계획을 지워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생명의 물줄기를 흘려 보내며.     

 

집으로도 돌아오는 길. 툭하면 '몰라'로 일관하는 엉뚱하기 이를데 없는 우리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이 참으로 난감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빠 우리 왜 걸은겨?"

"왜 걸은지도 모르고 걸었어? 재미는 있었지?"

"응"

 

탐욕스런 대운하와  생명의 강에 대해 줄줄이 설명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아이들은 생명의 강 그 자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생명의 강을 설명한다는 것은 거창한 구호에 불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저 강을 바라보며 함께 걸었던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었습니다.

 

진리가 단순하듯 아이들의 생각은 단순합니다. 이유없이 흘러가는 강을 닮았습니다. 내버려 둘수록 잘 흘러 가는 '생명의 강'을 닮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 또한 뚜렸하게 왜 걸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내가 걸으며 생각했던 생명은 그저 머리 속의 관념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너 아까 모래사장에서 애들하구 놀았지? 어뗐어?"

"재밌었어."

"아빠 어렸을 때도 여름이 되면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조약돌 가지고 놀고 모래 성 쌓고 놀고, 그런겨, 그런 모래사장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재밌게 놀기 위해 그냥 걸은겨, 그런 은빛 모래사장과 조약돌을 니들 하고 놀고 또 니들 한티 물려주려구 걸은겨."

 

나는 그리워 합니다. 어린 시절의 맑은 물, 은빛 모래 사장, 조약돌의 아름다움을. 이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또다른 생명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음걸이에는 욕망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내 욕망의 무게에 따라 '생명의 강'은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거나 아름답게 살아 남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보도 순례단의 '생명의 강'은 단순히 운하를 반대하고 강을 살리자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순간 순간 욕망의 무게를 덜어내며 걸어야 할 우리 모두의 길임을 일깨워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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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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