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31) 풀코스

[우리 말에 마음쓰기 294] ‘인터넷 나들이’와 ‘웹서핑’

등록 2008.04.30 10:10수정 2008.04.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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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서핑(surfing)

.. 줄곧 서울 교보문고에 가서 이 책 저 책을 찾아 읽거나 야후코리아를 통해 우연히 접한 아나키즘 사이트들을 재미삼아 서핑하는 것이 일이 되었다고 했다 ..  <너, 행복하니?>(김종휘, 샨티, 2004) 65쪽


“야후코리아를 통(通)해”는 “야후코리아에 들어가”로, “우연히 접(接)한”은 “우연히 알게 된”이나 “우연히 본”으로 다듬어 줍니다.

 ┌ 서핑(surfing)
 │  (1) = 파도타기
 │  (2) 1963년 여름부터 미국 하와이에서 유행한 새로운 리듬의 재즈
 │
 ├ 사이트들을 서핑하는 것이
 │→ 사이트 돌아다니기가
 │→ 사이트 구경이
 │→ 사이트 떠돌기가
 │→ 사이트 보기가
 │→ 사이트 나들이가
 └ …

바다에 이는 물결을 ‘파도(波濤)’라 합니다만, 우리 말은 낱말 그대로 ‘물결’입니다. ‘큰물결-작은물결-거센물결-잔물결’ 들처럼 적어야 알맞습니다. 하얀머리 백기완 할아버지는 당신이 어릴 적 익히 듣던 말 ‘몰개’를 이야기합니다.

‘몰개’라는 낱말이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을 터이나, 우리한테는 ‘물결’이 있고 ‘몰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다에서 널빤을 타고 시원하게 누비는 일을 가리킬 때에는 ‘물결타기’나 ‘몰개타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파도타기’만을 이야기합니다.

 ┌ 인터넷 찾기 / 인터넷 뒤지기 / 인터넷 나들이
 │
 └ 인터넷 검색 / 웹서핑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검색(檢索)’은 ‘찾아본다’나 ‘살펴본다’를 한자로 옮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터넷 검색’이란 ‘인터넷 찾기’나 ‘인터넷 살피기’, 또는 “인터넷으로 찾아본다”거나 “인터넷으로 살펴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예 영어로만 ‘웹서핑’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영어 쓰는 사람들로서는 ‘웹 + 서핑’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말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들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두루 돌아다니는 일’을 어떤 낱말로 담아내거나 가리킬 때가 알맞을까요.


인터넷 떠돌기? 인터넷 즐기기? 인터넷 하기? 인터넷 보기? 인터넷 살피기? 인터넷 나들이? 인터넷 놀이?

ㄴ. 풀코스(full course)

.. 참가자 모두 오리 풀코스로 제 맛을 충분히 감상하였다 ..  <백성백작>(후루노 다카오/홍순명 옮김, 그물코, 2006) 112쪽

‘참가자(參加者)’는 ‘함께한’이나 ‘모인’으로 고쳐 줍니다. “제 맛을 충분(充分)히 감상(鑑賞)하였다”는 “제 맛을 넉넉히 즐겼다”나 “흐뭇하게 제 맛을 보았다”로 다듬습니다.

 ┌ 풀코스(full course)
 │  (1) 일정한 순서로 짜여진 식단. 서양 요리에서는 전채, 수프, 생선 요리,
 │      고기 요리, 샐러드, 디저트, 과일, 커피의 차례가 표준이다
 │   - 오늘은 양식 풀코스로 대접하겠습니다 / 그는 중국식 풀코스를 좋아한다
 │  (2) 마라톤에서 42.195km 전체의 거리
 │   - 선두 주자가 이제 풀코스의 절반쯤 달려와 반환점을 돌았다
 │
 ├ 오리 풀코스로
 │→ 온갖 오리 요리로
 │→ 푸짐한 오리 요리로
 └ …

국어사전에 실린 ‘풀코스’ 풀이말을 보면 “서양 요리에서는 … 차례가 표준이다”라고 나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왜 한국말 담는 국어사전에서 ‘서양 요리’ 풀코스 이야기를 할까요. “한국 요리에서는 … 차례가 표준이다”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뭐, ‘풀코스’란 낱말이 미국말이니 서양밥 이야기를 한다고도 할 터이나, 한국사람이 빚어서 한국사람한테 읽힐 이 나라 국어사전이라면 ‘한국밥 풀코스’를 말해야 어울리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풀코스’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은 뜻으로 두루 쓰입니다. “풀코스로 준비했어”라든지 “풀코스로 놀아야지”라든지 “풀코스로 술을 마신다”라든지 “풀코스로 봉사한다”처럼.

이런 자리에 쓰인 ‘풀코스’를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나 “모든 것을(모두를/모두 다)”이나 “하나부터 열까지”나 “차례차례”나 “끝장 볼 때까지”나 “마지막까지” 들로 쓰였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굳이 ‘풀코스’를 따지기보다는 그때그때 알맞춤하게 걸러내는 편이 한결 낫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영어 #우리말 #우리 말 #미국말 #웹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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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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