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를 준비하는 모든 중학생들에게

모든 외고는 좋다는 환상 버리세요

등록 2008.04.30 20:13수정 2008.07.0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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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화여자외국어 고등학교 3학년 김소라 입니다. 제 고등학교 생활은 조금 특별합니다. 1년 반은 일반고에서, 1년 반은 외고에서. 남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외고에 있다가 일반고로 간 것도 아니고, 광주에서 한 일반고를 다니다가 외고에 편입했습니다.

일반고를 다니다가 중간에 외고로 가는 것에 대해 주변에선 조금 '무모하다'는 반응이 대세였습니다. 그때 전 '외고에 가면 외고와 일반고를 비교해서 언젠가 꼭 글을 써야지. 내 경험이 헛되지 않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교육정책에 대해 한 마디 던지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제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일반고와 특목고를 모두 다녀 본 제 경험을 살려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외고는 절대 대학에 유리하지 않습니다. 물론 대체적으로 면학 분위기가 잘 갖추어져 있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기에 비교과 면에서 조금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표상으로 따지면 일반고가 수능에 훨씬 유리합니다.

예를 들어 외고의 경우(문과) 외국어 수업시수가 월등히 많아 사회탐구 과목을 2학년 때 모두 이수하지 못합니다. 또 국어 교과나 수학 교과의 수업 시간도 일반고에 비해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일반고는 2학년 때 사탐 4과목을 모두 이수하고, 3학년 때는 완전히 수능과목만 공부할 수 있는 시간표로 짜여 고2때 수능과목을 모두 마무리하고 고3때 복습하는 식입니다.

저도 일반고에서 입시과목만 공부하다가 외고로 오면서 영어, 중국어에 독일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열 시간도 넘는 외국어 시간들... 처음엔 제가 좋아하는 외국어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좋았지만, 수능 디데이가 자꾸 떨어져 갈수록 배우는 재미보다는 입시 걱정이 앞서 '아 일반고 애들 지금 수능과목만 하고 있을 텐데' 란 생각이 맴돌아 조금 고생했습니다.

주변 친구들 역시 일반고 가서 '대접' 받고 사는 애들을 보며 조금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외고에 오고자 하는 목표가 오로지 '점수 잘 받아서 대학 잘 가기'라면 일반고에 가는 것을 더 권하고 싶습니다.

둘째, 외고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학교는 아닙니다. 차라리 일반고를 가는 것이 더 나을 법한 외고도 있습니다. 전 원래 이과 지망이었고 외고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누구나 외고에 환상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외고'하면 '일반고보다 좋은 학교'이고 전국의 모든 외고는 다 같은 수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례로, 제 고향 광주는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공부를 굉장히 많이 시키며, 선생님들도 열성적이시고 학생들도 매우 열심히 공부합니다. 하지만 외고 편입을 알아보며 알게 된 경기도에 있는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S외고는 수도권에 위치하고 특목고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에 위치한 광주의 웬만한 일반 고등학교보다 교육 환경(학교 시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이나 학생들의 학구열도 더 좋지 않고, 학력도 조금 떨어지기까지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학교의 B 선생님께서는 '공립외고는 학비 싼 거 빼고 좋은 것 하나 없다'라는 말씀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저 밑에 광주과학고나 제주과학고 같이 실력 없는 애들이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방 학생들이 수도권 학생보다 실력이 낮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저도 그 학교보다는 제가 광주에서 다녔던 고등학교가 훨씬 좋고 실력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다 알고 있듯 특목고 학생들의 영원한 고질병, 특목고에 오면 내신이 정말 어렵습니다. 외고는 아예 1, 2등급이 없는 과목도 있고, 학생들 수준이 비슷비슷하니까 조금만 하면 조금 오르고, 조금만 안하면 급추락합니다. 물론 저 역시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은 잘못이 가장 크지만, 막상 고3이 되자 '그냥 좋게 일반고 다녔으면 더 대학 쉽게 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학교 탓도 조금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반고에 계속 있었다면 여러 경험을 통해 제 인생에 진정 하고 싶었던,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제가 지금까지 굉장히 건방지고 게으르게 공부해 왔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점수'와 '등수'로 나타나는 숫자는 약간 더 높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와 학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무조건 서울대를 가야 학교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라는 맘가짐으로 공부하며 인생이 빡빡해지고, 설사 대학에 잘 갔더라도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많이 놓쳤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제가 선택한 길이기에, 이 길 위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히 자기 자신은 별 뜻이 없는데 부모님이나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떠밀려서 입학했다간 후회와 절망감에 가득 찬 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것입니다.

자신의 미래와 꿈은 자신이 그려야 합니다. 남이 그려준 그림은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지우고 다시 그리게 되어있습니다. 제 짧은 경험을 녹인 이 글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교과서 안의 내용을 통해서만 세상을 백번 듣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보며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더 훌륭한 교육이 아닐까요? 파릇파릇한 십대의 한 자락을 교과서와 문제집의 빼곡한 활자와 학교와 학원이라는 분주한 굴레 속에 갇혀 보내는 학생들이 좀 더 넓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알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바라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소라 기자는 이화외고 3학년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소라 기자는 이화외고 3학년입니다.
#특목고 #외고 #외고 내신 #이화외고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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