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파르나스 국철역 역무원.유레일패스 개시일을 등록해 주고 있다.
노시경
나는 역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서둘러 역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나는 몽파르나스 역 창구에서 오늘부터 이용하게 될 유레일패스의 개시일을 신고했다. 나는 금발의 머리와 수염까지 멋지게 기른 역무원 아저씨에게 유레일패스와 우리 가족의 여권을 건네주었고, 그는 왼손을 능숙하게 움직이면서 유레일패스 개시일과 가족의 이름을 유레일패스에 직접 기재해 주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유레일패스에 기재된 사항을 다시 확인하였다. 급히 보는데 순간 무언가 잘못 적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레일패스를 이용하는 내 이름 옆에 딸의 여권번호가 적혀 있는 것이었다. 내 이름 '노시경'과 딸 이름 '노신영'의 영문 이름이 너무 비슷해서 역무원이 여권 번호와 이름을 서로 바꾸어 기재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역 창구로 돌아왔지만 그 역무원 앞의 줄은 한참 길어져 있었다. 마침 내가 유레일패스 등록을 할 때 서너 줄 뒤쪽에 서서 기다리던 한국인 부부가 다음 차례였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지만 외모를 보니 분명 한국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국적도 묻지 않고 한국말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역무원과 이야기할 시간을 잠시만 달라고 하였다. 다행히 그들은 프랑스에 사는 친절한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 역무원은 내 유레일패스를 다시 확인하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기차를 이용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는 강인하고 힘 좋아 보이는 인상의 백인 아저씨가 선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하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괜히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재차 확인을 하러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오늘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가는 열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몽파르나스 역의 국제선 열차 예약 창구를 찾아갔다. 남부로 통하는 철도의 기점인 몽파르나스 역에서 프랑스의 남부로 향하는 기차표와 그 외의 도시로 향하는 기차표는 별도의 창구에서 살 수 있도록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나에게 와서 가르쳐주지 않기에 나는 물어물어 스위스 행 기차표를 예약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아갔다.
창구 앞에 선 줄은 빨리 줄지 않았다. 기차표가 우리나라처럼 순식간에 발매되지 않는 이유는 파리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워낙 많고 각 나라와 도시에 철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특이하게도 자신들이 기르는 애완견을 데리고 와 기차표를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줄이 빨리 줄어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호텔에서 일찍 길을 나섰지만 아까운 시간들이 역에서 낭비되면서 점점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선 줄은 일처리가 너무나 더딘 신참 역무원이 맡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줄을 잘못 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