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라이프>의 지아장커 감독
위드시네마
최근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국내 감독과 국내․외 평론가 92명을 대상으로 1995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베스트영화 톱 10을 뽑았다. 그 결과 중국 제6세대의 기수인 지아장커(賈樟柯)의 <스틸 라이프>가 1위로 선정됐다. 중국 동시대인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리며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지아장커가 국내외 평론가 그룹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것이다.
중국에는 지아장커와 같은 6세대 영화들 외에도 위에서 예를 든 주선율 영화와 <영웅> <무극>과 같은 다피엔(大作, 대작) 영화를 포함, 연말연시를 겨냥한 흥행작인 하세편(賀歲片) 영화들이 존재한다. 장이머우와 첸 카이거 감독 등 5세대 감독들이 '변절'이란 비판을 감수하며 주류 중국 영화를 접수했다면, 6세대 감독들은 여전히 해외 영화제와 정식 개봉 보다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 6세대 감독들의 특징 |
저자들은 6세대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들어 "6세대라는 명명 자체가 타당한가"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외연 확대가 진행 중인 6세대 감독들의 특징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 소도시 주변인들의 주인공으로 '현실로서의 삶'을 내세우며 ▲전통 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지 않지만 '진실이 아름다운 것(以眞爲美)'을 천명하고 ▲ 직선적 시간관이 지닌 억압성을 거부하며 클라이맥스도, 결말도 존재하지 않고 ▲ 5세대와 달리 감동적 드라마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으며 ▲ 롱테이크를 활용한 다큐멘터리 기법 등 이른바 '낯설게 하기' 장치를 즐기며 ▲ 아버지의 '권위'와 '중심'에 대한 해체를 주장하고 ▲ 정치적 선언이나 주장, 계몽적 기능 등 거대담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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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6세대 감독들이란 누구인가. 저자들은 "1960년대 생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활동을 시작한 젊은 영화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1989년 천안문 운동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 상업주의 문화, 탈이념화, 탈정치화 조류 속에서 개인의 생존 체험과 불안정한 심리 상황에 관심을 갖는다"고 정의한다.
문화대혁명으로 폐쇄 당했다 다시 개교한 베이징영화학교에서 공부한 첫 세대들인 이들에게 천안문 운동은 더 없이 중요하다. "복잡한 문화현실과 불만스러운 5세대에 대한 전복으로서 등장한" 6세대 감독들은 자본주의 상업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개성적인 영화관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선율 영화와 같은 주류 상업 영화를 거부한다.
이들의 선두주자인 장위엔(張元) 감독이 <북경 녀석들>을 세상에 내놓았던 1993년까지 6세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장위엔의 <광장> <동궁서궁> 등으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고 지아장커가 1997년 <소무>를 발표한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제6세대는 중국은 물론 서방세계에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지하전영(地下電影), 독립 영화의 젊은 기수들이 중국 영화의 한 축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들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을 빌려와 6세대 감독들이 "'아버지의 법'에 강력히 맞섬으로써 어떤 환상이나 광기의 드러남으로 표현되는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요약한다. 탈중심적인 목소리가 결국 중국 사회를 뛰어넘어 동아시아인들의 실존적 삶에 긍정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소개한 작품들 중 동시대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6세대 감독들의 영화들을 먼저 살펴보자.
한반도 대운하의 결과를 예언하는 <스틸 라이프>우선 2006년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한 <스틸 라이프>의 배경은 지난 2006년 완공된 샨샤(三峽)댐에 묻혀버린 펑지에 지방. 영화 속 공무원이 "물론 문제는 있죠. 2천 년 된 도시가 단 2년 만에 헐렸으니까요. 문제가 있으면 천천히 해결합시다"라고 말하는 곳이다. 주인공은 광부 한산밍과 간호사 션홍. 두 사람은 16년 전 돈을 주고 사와 자신의 딸까지 낳았지만 곧바로 헤어져야 했던 전처와 바람을 핀 남편을 만나러 각기 이 지역을 찾는다.
중국식 개발의 극단을 보여주는 샨샤댐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잃게 했다. 담배, 술, 차, 설탕 등 중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네 가지 필수품으로 챕터를 나눈 이 작품은 한산밍과 션홍의 여정 사이로 파괴와 개발이라는 중국 전체의 변화상을 은유한다.
데뷔작 <소무>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해 시골출신 소매치기가 소도시에서 맞는 격변기의 일상과 개방 속의 중국 관료주의를 비루하게 그렸던 지아장커는 <스틸라이프>에서 고단한 일상과 이를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 그러나도 또한 벗어날 수 없는 모순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또한 전처를 찾고자 공사 현장을 전전하는 한산밍과 주도적으로 이혼을 선택한 션홍의 엇갈리는 행보를 통해 "포기와 결정"의 문제를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