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미워하던 울 엄마, 오해해서 미안해요

장애아이 키우며, 날 키웠을 친정엄마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등록 2008.05.07 22:15수정 2008.05.0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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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자라면, 자신을 낳은 또다른 여자, 즉 친정엄마와 복잡한 감정에 얽혀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 '과년한 딸은 엄마와 같이 살면 좋던 사이도 나빠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딸에게 엄마는 '영원한 엄마'로, 언제나 한없이 기대고 싶고 또 그래도 되는 존재요, 엄마에게 딸은 이제는 다 커버려서 더 이상 뒷바라지는 안 해줘도 될 사람인지라 서로 기대하고 미루다 보면 남는 것은 애증뿐인 지경에 이른 '과년한 친구'를 여럿 보아왔다.

그러나 일단 결혼하여 집에서 내보낸 딸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가끔 만나면 서로 너무나 그립고 정다운 것이 모녀지간이다. 나와 친정엄마의 사이는 유별나게 애틋하여 친구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다.

특히 울 엄마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에 대해 항상 마음으로 지원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분으로, 커리어우먼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딸의 모습에 대해 항상 자랑스런 마음을 갖고 계셨다.

유별나게 애틋했던 모녀 사이, 한순간에 어긋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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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기를 잡고 서는 모습이 제법 탄탄해 보인다. 그러나 다리를 이용해 보행기를 움직인 적이 없으니, 아직 멀었다. ⓒ 이은희


더 이상 애틋할 수도 없는 우리 모녀지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출산하고 난 후부터다.


태어나자마자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엄마에게 산후조리의 기회도 주지않은 아이는,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내고 퇴원한 후에도 여러가지 병증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뇌수막염 후유증인지 다른 원인인지 알 수 없지만 다리를 비롯한 하반신에 힘을 주지 못하면서 급기야 돌 무렵 장애진단을 받고야 말았다.

장애진단을 받기까지 원인을 찾기 위해 쫓아다닌 병원과 치료비는 차치하고라도 아이는 제 몸이 불편해서인지 모든 면에서 잠시도 엄마를 편안하게 두지 않았다.

한 번 감기에 걸리면 결국에는 중이염·폐렴을 모두 거쳐 입원을 해야 했고, 같은 월령의 아이들이 분유 800cc, 1000cc를 먹을 때 300cc도 먹지 않아 몹시 애를 먹였다. 잠자는 습관도 기가 막혀 자기 전 울고 보채기를 서너 시간, 자다 깨서 우는 것도 한두 시간. 결국 아이도 엄마도 만성적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힘들 때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 대부분은 남편이 그 상대가 되어 주었지만 때론 남편에게도 못할 얘기가 있는 법, 그럴 때 친정엄마는 나의 전적인 지원군이어야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엄마는 나의 얘기에 다소 부정적이고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때론 아이가 밉다는 얘기까지 서슴지 않고 꺼내셨다. 점점 엄마에게 전화걸기가 겁나 통화 빈도 수가 아이 출산 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손자는 손자고, 넌 엄마의 자식이잖아"

이제 친정엄마는 속상할 때마다 속풀이 상대가 되어주던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나도 전화를 할 때마다 나를 이해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들볶고 속상해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가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아픈 아이를 키우고 사는 당사자인 나도 이렇게 멀쩡한데, 아니 멀쩡하려고 이 악물고 애쓰며 사는데, 엄마는 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화할 때마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아픈 아이와의 육아전쟁에서 벗어나보고자 어렵게 고향 순천행을 결정했을 때, 그 갈등이 극에 달했다. 그러던 중 친구와의 통화 중에 엄마와의 그러저러한 문제들을 털어놓게 되었고, 친구는 매우 명료한 한 마디 말로 나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야… 엄마는 니 엄마고, 너는 엄마의 자식이잖아."

그래, 그랬던 거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엄마 속으로 낳은 자식인 거다. 그러니 내가 '낑낑' 대며 힘들게 지내는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워 당신 스스로도 뜻하지 않게 나를 타박할 수밖에 없으셨던 거다.

게다가 딸이 사회인으로 살아갈 기회조차 손자녀석이 박탈하고, 서울에서 멋지게 살아가던 딸을 고향 땅에 주저앉혔으니 엄마로서는 분노해 마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녀석이 밉다 생각하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거다.

미워도 내 자식, 내 손자... 고맙습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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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 열심히 치료해서, 불효의 굴레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 최은경



고향에 내려와 자리잡은 지 이제 두 달. 아이와 친정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와 외손자는 독특한 애증관계로 발전하였다. 서로 박치기하며 정든 사이라고나 할까.

미워할 수 없는, 그러나 '딸년' 생각을 하면 조금은 밉기도 한 손자에게 "으이구" 하며 애교섞인 박치기를 하다보니 아이도 외할머니를 만나면 인사가 박치기라고 으레 생각하는 것 같다.

내려오기 전까진 절대로 엄마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안기지도 않던 아이가 이제는 엄마없이 외할머니랑 한두 시간씩 지내기도 한다.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내 부모가 어떤 심정으로 나를 키웠겠는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렇게 보면 아픈 아이를 키우며 사는 죄, 이만한 불효도 없는 것 같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자신들의 당면한 삶이니 수렁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살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지만, 그들의 부모는 그런 자식이 안쓰러워 한순간도 자식 걱정을 손에서 놓지 못하니 말이다.

원치 않았던 불효자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내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열심히 치료하고 도와주는 길밖에 없다. 또 아무리 힘들어도 버겁다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 관리도 열심히 해야 할 듯 하다.
#불효 #장애아이 육아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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