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비판하면 좌파, 광우병 걱정하면 반미?

[주장] 누가 젊은 세대의 순수에 테러를 가하는가

등록 2008.05.07 10:33수정 2008.05.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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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6일 저녁 서울 여의도 공원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가 뼈째로 수입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것이 낫겠다." - 탤런트 김민선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 글을 "어느 탤런트의 미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이 발언은 선동성도 강할뿐더러 합리적이지도 않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죽을 확률은 아주 희박한 데 반해, 청산가리를 먹고 죽을 가능성은 거의 100%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 목은 잘릴지언정 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

이 구호는 구한말 친일 어용 권력인 김홍집 내각의 단발령에 저항하기 위한 우리 선조의 신념이었다. 목숨보다 머리카락이 더 소중하다는 이 말은 또 얼마나 선동적이고 비합리적인가? 하지만 이 선동성과 비합리성에는 목숨을 걸고라도 불의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기가 담겨 있다.

만약 그 시절 <조선일보>가 있었더라면 '어느 유생의 미친 발언' 쯤으로 매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민선의 '청산가리' 발언에는 사대 굴욕 외교의 산물인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저항의 의기가 담겨 있다고 평가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말 바꾼 조중동과 숫자 장난

"더 나쁜 쪽은 선동하는 어른들이다. 판단력이 덜 형성된 청소년들을 반미와 광우병 공포로 세뇌시키기에 인터넷은 제격인지도 모른다. 검증되지 않은 지식과 선동이 판치는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 5월 5일자 <동아일보> '횡설수설'


"미국산 쇠고기의 96%를 3억 미국인과 200만 재미동포가 먹고 있다. 한국이 들여오는 쇠고기와 똑같다. 수의학적·병리적 사실을 재차 열거하지 않아도 이것만 보면 '광우병 불안'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은 글로벌 경제의 시대다. 바늘귀 같은 작은 불안으로 시장을 닫으면 코끼리 같은 커다란 시장을 놓칠 수 있다." -  5월 5일자 <중앙일보> 사설

조중동은 몇 해 전만 해도 광우병의 위험성을 극렬하게 지적하며 "광우병 쇠고기는 협상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하던 신문들이다. 그러던 신문들이 정권이 바뀌자 돌연 광우병의 위험을 알리는 사람들을 일제히 역공격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제오늘 그들의 지면에는 '좌파'와 '반미'를 넘어 '친북'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대관절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가 어떻게 친북으로까지 비약할 수 있는 것인지, 하도 가당찮아서 도저히 기사를 끝까지 읽을 수가 없는 정도였다. 게다가 그들은 숫자를 이용한 장난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소 1억 마리를 키우는 미국에서 그동안 광우병에 걸린 소는 3마리 발견됐다… 사육 소 100만 마리 가운데 30여 마리가 발견된 일본의 광우병 발생 비율이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 - 5월 2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미국 소의 광우병 발생 비율이 일본보다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맥대로라면 분명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MBC <PD수첩>의 조능희 프로듀서에 의하면, 이런 기사야말로 조중동의 장기인 '나쁜 기사'의 전형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우 2000마리 당 1마리씩 검사하지만 일본은 모든 소를 전수조사하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쇠고기 전도사 심재철 의원의 확률론

광우병 논란의 와중에 이명박 정권은 3번째 전도사를 탄생시켰다. 운하 전도사 이재오와 영어 전도사 이경숙에 이어 이번에는 쇠고기 전도사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심 의원은 "광우병 괴담은 마치 '비 오는 날 벼락 맞을 수 있으니까 외출하지 마십시오'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와 똑같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능희 프로듀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벼락으로 치자. 1년 내 벼락이 없던 나라에 벼락을 들여왔다면 그걸 수입해 온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벼락이 치면 어찌어찌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 문답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누구의 말이 사려 깊은지를 금세 알 수있다.

그들은 걸핏하면 확률론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질병의 위험성을 지적하는데 있어 확률론처럼 무의미한 것이 없다. 질병에 대한 방역이나 예방은 사전 조치가 원칙이다.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발병 숫자에만 집착해 확률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군다나 잘 알려지지 않은 신종 질병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식하고 분열하면서 위험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에이즈는 발생 첫해 4명의 사망자밖에 내지 않았지만 발병 30년이 채 안 된 지금은 해마다 3천만명의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에이즈는 자연계의 종간 경계를 인간이 파괴해서 자초한 질병인데 광우병 역시 종간 파괴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게다가 광우병의 원인 물질인 프리온은 지금껏 인류가 알고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미지의 별종 병원체이다.

따라서 단 한 사람의 광우병 발병이라도 그것이 파급하는 공포와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일례로 광우병이 발생했던 영국은 수만 마리의 소를 도축하면서 축산업의 붕괴를 감수해야만 했다. 또한, 미래의 광우병은 소를 도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린 순수에 대한 어른들의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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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한 여중생이 촛불을 들고 있다. ⓒ 권우성


"광우병 쇠고기 논란은 인터넷 괴담 탓이다."
"놀이 문화가 없어서 촛불문화제에 많이 참석했다."
"정치집단의 음모와 선동에 청소년들이 휘둘린 것이다."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폄훼하는 기성세대의 논리다. 부끄럽지 않은가? 청계광장에 나간 10대들은 모두 우리의 자녀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그들을 0교시 수업이다, 우월반 편성이다, 일제고사다 해서 무차별적인 경쟁으로 내몬 당사자가 누구인가? 오죽했으면 그들 입에서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똥 좀 싸자"는 자학적인 절규가 나왔겠는가?

그들이 어린 탓으로 세상을 잘 모른다고 치자. (그들이 세상을 잘 모른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어린 그들의 순수성을 요따위로 짓밟아도 되는 것인가? 그것은 순수에 대한 테러나 진배없는 짓이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박남수의 <새>에서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반미 #프리온 #종간파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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