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끄는 '지리산 숲길'과 '제주올레'의 트레일 실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 자원 보유국 한국, '길' 보존 대책 서둘러 마련해야

등록 2008.05.07 15:21수정 2008.05.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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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는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하나는 지리산생명연대 부설법인인 사단법인 '숲길'(이사장 도법스님)이 준비하고 있는 지리산 트레일이며, 다른 하나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가 운영하는 '아름다운 걷는 길-일명, 제주올레코스- 만들기' 프로젝트다.

지리산트레일은 지리산에 800리에 달하는 장거리 도보여행길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을 잇는 20.78㎞ 구간을 개통했으며 2011년까지 지리산 일대에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 트레일 300㎞ 구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시범구간은 마을과 다랑논 사이를 걸어가는 '다랭이길'과 지리산 빨치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숲길을 걷는 '산사람 길'로 구성되어 있다. 지리산 트레일은 지리산 인근 전남·전북·경남도 3개 도내 구례군, 남원시,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5개 시·군, 16개 읍면, 100개 마을을 이어준다.

2007년 4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복권기금으로 조성된 산림청 녹색자금의 지원을 받아 추진되는 것으로 친환경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 <내일신문>. '지리산에 800리 도보여행길', 2008.05.01

a  지리산길 열림 행사의 한 장면

지리산길 열림 행사의 한 장면 ⓒ 사단법인 숲길


'제주의 옛길, 아름다운 길, 사라진 길을 다시 살릴 수는 없을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걷는 길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바로 ㈔제주올레다….

제주올레는 ‘빠른 관광’이 판치는 이때, 자동차가 따라잡을 수 없는 원시적인 옛길, 자연스런 흙길, 사라져버린 길을 복원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발굴하고 국내외 도보 여행자로 하여금 느리게 걸으면서 진정한 제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위해 출범했다.
-<제주의 소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걷는 길 만들고파' 2007.09.04


비슷한 시기, 지리산과 한라산(한라산이 곧 제주도다)에서 동시에 시작되고 있는 이 '우리길 찾기 운동'(이런 명칭을 붙여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서)이 반드시 성공하길 바란다.

a  지난해 9월 8일 제주 올래코스 참가자들이 제주도 성산읍 시흥리에서 행사 첫 발을 뗐다.

지난해 9월 8일 제주 올래코스 참가자들이 제주도 성산읍 시흥리에서 행사 첫 발을 뗐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우리길 찾기 운동' 꼭 성공하길


그런데 '트레일(Trail)'이란 무엇일까? 보통 '산책로' 등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이러한 설명이 뜬다.

Trail : <미·캐나다> (황야 등의)밟아 다져진 길, (산속의) 작은 길, 오솔길, 산길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산책로'로 해석하기도 하고, 공원과 관련해서는 '생태 탐방로'로, 산이 있는 지역에서는 '등산로'나 '산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근데 미국에서는 이 트레일이 해안가에도 있고, 자연지역은 물론 역사 유적지에도 있어 '산길'이라고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냥 '트레일'이라고 썼다.

미국에는 -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볼 것이지만 - 8만 km가 넘는 트레일이 있으며 관리 또한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 일본, 호주 등도 이 트레일의 조성과 관리에 적극적이다. 

a  영국의 요크셔 월드 웨이 네셔널 트레일(Yorkshire Wolds Way National Trail).

영국의 요크셔 월드 웨이 네셔널 트레일(Yorkshire Wolds Way National Trail). ⓒ nationaltrail.co.uk


국립공원의 원조가 미국이라면 트레일의 원조는 영국이다.

영국은 지난 1965년 국립트레일(National Trails)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 20세기 초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을 걷는 것이 국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등 생태탐방로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종 개발사업으로부터 자연을 보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생태탐방로 조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 15개, 총 4천여㎞의 생태탐방로가 있다. 기존에 지역별로 흩어져 있던 길을 서로 잇고, 명맥이 끊어진 길은 새로 만드는 등 40여년간 개·보수 작업이 이어졌다. 현재 연간 1천200만명이 생태탐방로를 이용하고 있고, 전체 이용객의 84%는 도보로 생태탐방로를 다녀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각 생태탐방로에 대한 현황, 교통수단, 편의시설, 숙박시설, 이용방법 등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국민들의 여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장거리 자연보도'를 조성해 운영 중이다. 일본 환경성은 전국에 8개, 총 2만1천여㎞의 생태탐방로를 설치했다.

환경성은 장거리 자연 보도의 개념과 기본 원칙만 제시하고 지자체에서 실제 노선을 선정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지역 민간단체와 기업 등은 장거리 자연보도와 관련한 홍보 전단, 가이드북, 체험프로그램, 지역 이벤트, 자원봉사 등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연간 6천만 명 이상이 장거리 자연보도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뉴질랜드는 국토의 북쪽에서 남쪽을 잇는 도보용 도로를 만들었다. 약 1천200㎞의 이 도로는 코스의 길이와 난이도에 따라 단거리 도보, 장거리 도보, 여행(하이킹), 최장거리 코스 등 4가지로 분류된다.

호주는 'Walking Tracks'를 만들어 자국민 및 외국인 관광객들이 호주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뉴질랜드와 비슷하게 코스 길이 및 난이도에 따라 5가지 유형으로 탐방로를 조성해 관광객들이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도보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배려했다.
- <부산일보> '외국의 생태탐방로 - 英, 40여 년간 지역별 연계 15곳 4천여㎞ 단장', 2007. 11. 28

아름다운 트레일 사라져 가는 한국

반면 우리나라는 거꾸로 이러한 트레일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대신 사람의 접근을 오히려 막는, 황량한 자동차 도로가 점령해 가고 있다. 또한 이러한 트레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의 외국 사례처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되고 있지도 않다.

그냥 '길'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는, 아니 우리나라만큼 아름답고도 긴 트레일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옛길'은 그 자체가 트레일이었으니 이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지리산길과 제주올레길의 복원은 의미가 깊지 않을 수 없다.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17마일 드라이브코스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1번 도로 주변 해안가에는 반드시 해안을 산책할 수 있는 트레일들이 조성, 관리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해안도로 건설에는 열심이면서도 정작 사람들의 걷는 길 조성과 관리에는 무관심한 도로관리청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있는 트레일마저 파괴하기 일쑤다. 그러면 미국은 이 트레일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미국에는 법으로 보호되는 국립 트레일(National Trail)이 있다. 국립트레일시스템법에 의해 승인된, 선형(線形)의 공원용지-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을 따라 휘어진 긴 거리의 산책로-에 주어진 이름이다.

국립트레일시스템(The National Trails System)은 1968년 10월 2일(당시 내무장관 스튜어트 우달) 미국 연방의회가 통과시킨 연방법인 국립트레일시스템법(National Trails System Act)에 의해 만들어졌다. 야외지역과 국가의 역사적 자원을 보존함과 동시에 공중의 접근을 제고하고, 탐방을 통한 공공의 즐거움과 복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제정 당시 이 법은 트레일의 3개의 유형을 인가했다. 국립명승트레일(National Scenic Trails), 국립레크리에이션트레일(National Recreation Trails)과 측면·연결트레일(side and connecting trails)이 그것이다.

국립트레일시스템법 하에서 설립된 최초의 2개 트레일은 그 유명한 애팔래치안(Appalachian) 트레일과 퍼시픽 크레스트(Pacific Crest) 트레일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나라의 뛰어난 아름다운 자연 지역을 따라 굽이져 있다.

1978년에 역사협회(historic associations)의 연구결과에 의해 트레일의 4번째 유형이 추가되었다. 국립역사트레일(National Historic Trails)이 그것이다(우리도 트레일을 만든다면 이러한 유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a  미국의 켐톤 내무부 장관은 2001년 9월 11일 22개 주에 40개소의 새로운 국립레크리에이션트레일(NRT)을 지정했다. 사진은 오렌지 헤리티지 트레일(Orange Heritage Trail) 인증식 장면.

미국의 켐톤 내무부 장관은 2001년 9월 11일 22개 주에 40개소의 새로운 국립레크리에이션트레일(NRT)을 지정했다. 사진은 오렌지 헤리티지 트레일(Orange Heritage Trail) 인증식 장면. ⓒ www.nps.gov/nrt


미국, 법 제정해 트레일 보존

많은 이들이 1968년 이래 40개 이상의 트레일을 이 시스템에 포함하기 위해 연구했다. 이 연구결과  21개소가 이 시스템 내부로 편입된다. 2006년 현재 국립트레일시스템은 8개의 국립명승트레일(national scenic trails)과 16개의 국립역사트레일(national historic trails), 그리고 거의 1000개에 달하는 국립레크리에이션트레일(national recreation trails)로 확대되었다. 이 모든 트레일의 길이를 합하면 50,000마일(80,000km)이 넘는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트레일들은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BLM)이나 산림청(USDA Forest Service),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과 같은 연방기관이 관리한다. 어떤 트레일은 두 기관이 공동으로 협력해 관리하기도 한다.

a  NRT 로고

NRT 로고 ⓒ www.nps.gov/nrt

이들은 트레일을 관리함에 있어 중요한 위치, 자원 및 조망권(viewshed)을 보호하기 위하여 때때로 땅을 취득하기도 한다. 또한 이 기관들은, 대중들이 이 트레일에 접근 가능하도록,  또한 이 트레일에 인접해 있는 토지와 구조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시로 주정부나 정부의 현지 기관, 토지 신탁 및 개인토지 소유자와 협력관계를 맺고 일한다.

한국에서는 현재 민간단체가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산림청뿐만 아니라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의 정부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이 트레일의 조성과 관리를 위해 대안을 모색할 때가 됐다. 필요하다면 국회의원들과 함께 법률 제정도 고려할 만하다.

꿈을 꾼다! 우리 국토를 나선형으로 돌아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을….  제대로만 조성하고 관리한다면, 우리나라의 트레일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미 스탠포드대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미 스탠포드대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트레일 #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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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부탄과 코스타리카를 다녀 온 후 행복(국민총행복)과 행복한 나라 공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행복연구가. 현재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설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장(전 상임이사)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 시민행복위원회 공동위원장,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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