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이명박 대통령, 부끄럽지 않은가

등록 2008.05.13 16:09수정 2008.05.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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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인수위 시절, 한때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다. 인수위 측에서 정부 각 부처에 기존 정책을 소위 이명박 코드에 맞출 것을 요구하면서 공무원들 사이에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인수위의 서슬 퍼런 요구에 종전의 입장을 스스로 뒤집어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런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또 있었다. 이번 이명박 정부의 대미 쇠고기 협상을 지켜보며 절실히 드는 생각이다. 

 

참여정부 때도 미국산 쇠고기의 개방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미FTA 비준문제도 있고, 그와 연계시켜 우리나라 쇠고기 시장의 문을 열려는 미국의 통상압력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방을 하되 "30개월 미만 연령제한 유지 및 모든 연령에서 광우병 위험물질(SRM) 7개 모두 제거, 내장은 전체 수입금지, 살코기 제거상태에서의 뼈 수입 금지, 그리고 햄 소시지 등 가공품 수입금지, 수출검역증명서상 소 연령표시, 그리고 동물성 사료 사용금지조치 강화" 등을 수입위생 조건으로 내세움으로써 우리 국민의 건강안전 위협소지를 철저히 없앨 수 있도록 꼼꼼하게 협상원칙과 기준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허물어졌다. 아마 이 정부에 팽배한 '노무현적인 것은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ABR(Anything But Rho) 정신의 발로였을 것이다. 게다가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1박에 대한 부담감이 이명박 대통령을 압박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들어 허물어진 대미 쇠고기협상의 원칙과 기준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와의 정상회담이 잡혀 있는 마당에 시작된 협상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회담 하루 전에 협상이 타결되었고, 이 소식은 국내에서 공식발표가 되기도 전에 그 시각 미국에 있던 이 대통령의 입으로 처음 알려졌다.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CEO와의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조금 전 이곳으로 오는 차 안에서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고, 일부 인사가 박수를 유도함으로써 우리 측 수행원들과 참석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가벼운 대통령이다. 

 

쇠고기 협상타결을 발표하여 미국인들의 박수를 받은 대통령이 걱정되었는지, 파장을 우려한 이동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대통령의 쇠고기 관련 발언을 없었던 걸로 해 달라"며 비보도를 요청해 물의를 일으켰다. 거기에 모인 미국의 CEO들이 박수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참으로 경박한 이명박 대통령

 

그런데 미국과 합의된 쇠고기 협상내용을 보면 실무대표단이 과연 우리나라 공무원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선 캐나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올 수 있도록 연령제한을 해제했다. 거의 모든 광우병이 월령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런 소들이 무제한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가 수입이나 검역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검역주권'의 포기라고 불릴 만한 중대한 사안이다. 미국은 자체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우리 정부에 통보만 하면 된다. 원칙적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의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변경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광우병이 걸린 쇠고기가 계속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말이 되나. 

 

거기에 소의 월령이 30개월 미만인지 이상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마당에 30개월 미만의 소의 경우 SRM 2개만 제거해도 되도록 풀어줌으로써, 마땅히 SRM 7개 모두를 제거하고 들여와야 할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SRM 유입을 막을 길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위험하기 짝없는 일이다.

 

그리고 광우병의 발병 요인으로 지목되어 온 동물성 사료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그간 미국의 강화된 동물성 사료조치를 '시행'하는 시점까지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제한을 고수했으나 '공포'하는 시점으로 물러섰다. 즉, 이미 입법예고된 동물성사료 조치 강화안을 언제부터 시행하겠다고 관보에 싣기만 하면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도 수입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공포'와 '시행' 사이에 그 사이에 얼마가 걸리든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다. 

 

참으로 답답하다. 이렇게 양보해서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렇게 실려 있다 한다. "미국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차원의 사료금지조치를 약속받은 것이 가장 크다"니 실소가 나온다.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굴욕 협상을 해놓고 얻은 게 고작 사료금지조치를 약속받은 것이라니. 실상이 이 정도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양보만 하고 다 내준 협상이다. 무지하고 무모해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렇지, 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달린 사안에 대한 정책을 이렇듯 쉽사리 뒤집어도 되는 것인가? 이러니 '영혼 없는 공무원'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합의에 서명하면서도 국민에게, 아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도 않았나?

 

굴욕적 합의 내용,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다. 시작 1주일이 넘도록 양국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던 협상이 미국 순방 중이던 이 대통령이 현지 시각 17일 자정 무렵(한국시각 18일 오후 1시경) 소집한 긴급회의 이후 약 5시간 만에 타결되었다. 우리 정부가 협상 타결을 발표한 것이 18일 오후 6시다. 그러니 긴급회의 결과에 따라 협상을 마무리 지으라는 지시(정부훈령)가 한국으로 갔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공무원들이 그렇게 급히 몇 시간 만에 입장을 바꿔 굴욕적인 합의에 서명을 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그 훈령은 어디서 나왔는가. 바로 긴급회의를 소집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공무원도 문제긴 문제지만, 부시 별장으로 가기 몇 시간 전에 타결시킴으로써 그들을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만든 것은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이다. 

 

'영혼없는 공무원' 만드는 이명박 대통령

 

이쯤되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무엇이고, 국가관이 무언지 모르겠다. 그저 '실용'이란 슬로건 아래 굴욕도 삼키나? 국민의 안전과 자존심, 국가의 품격과 주권, 이런 것들은 '실용' 앞에 아무 것도 아닌가. 백보를 양보해서, 그러면 그렇게 해서 얻은 '실용'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그런 '영혼 없음'으로 인해 지금 이 나라가 이토록 혼란에 빠지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무개념, 무영혼이 그로 하여금 그런 결정이 어떤 파장을 초래할지도 모르고 지시를 내리게 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오로지 캠프 데이비드로 가져갈 선물만 눈에 아른거렸던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국가 지도자만이 묵을 수 있는, 그러나 간 쓸개와 함께 큼직한 보따리를 함께 내줘야 묵을 수 있는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1박의 꿈에 취해, 그가 내린 결정이 우리 국민을 얼마나 불안하고 허탈하고 분노하게 만들지에까지는 미처 생각이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가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라는 것이 세계에 한없이 '쪽팔리는'(더 적확한 표현을 찾지 못해 노 대통령이 썼다는 표현을 필부인 나도 한번 써 본다) 일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그의 무지와 경박함이 빚어낸 결과다. 이대통령은 즉시 국민 앞에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여야 한다. 그것이 분노한 민심을 잠재우고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첫걸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업자득, 국민앞에 사과해야

 

그리고 촛불 앞에 모인 국민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그들은 그나마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 관료가 영혼을 잃어갈 때 이 나라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이다. 혹여라도 공권력을 동원해 집회참석자들을 탄압하고 언론을 동원해 대국민 기만공작을 계속 하려 한다면 지금의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들이 누구 사주받고 나온다는 영혼 없는 소리 그만하고, 더 이상 이 나라를 영혼 없는 나라로 만들지 마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보냈습니다. 여인철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을 지냈습니다.

2008.05.13 16:0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보냈습니다. 여인철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을 지냈습니다.
#광우병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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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철 기자는 카이스트의 감사와 연구교수를 지냈습니다. 친일청산에 관심이 많아 오래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을 지내고,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장준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장준하부활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코칭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와 '에듀코칭'을 통한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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