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한국의 대외원조 정책

[칼럼] 이명박 정부의 대외원조 전략과 원조기관의 책임성

등록 2008.05.14 17:31수정 2008.05.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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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 항상 그렇지만 설익은 정책과 구호들이 요란하게 등장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국가 과제 중 하나인 대외원조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지속가능한 발전, 빈곤 퇴치라는 국제사회의 기본적 원조 규범은 사라지고 '자원외교', '기여외교', '실용'과 '국익'을 중시하는 대외원조 정책과 전략이 전면에 등장했다.

 

드디어 공관장회의에 참석한 중동지역의 대사들은 모든 부처가 자원외교를 떠들어대니 오히려 단가만 올라가고 자원 확보도 더 어렵게 되었다는 현실을 토로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따라 춤을 추듯 쏟아져 나오는 비외교적인 외교정책과 반 국제협력적인 대외원조 정책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일부 민족주의적이고 국익 최우선의 보수 정치인들이 국가의 외교 정책과 대외원조 정책을 자원 확보와 국익우선으로 몰아가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이를 세련되게 포장하여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정부가 나서서 거친 정책을 내놓는 것은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꼴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특히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상호 견제하고 평가하는 외교와 원조 정책에 대해서는 보다 성숙하고 세련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이제 20년을 넘어선 우리나라의 대외원조는 규모는 작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찬사와 주목을 받아왔다. 식민지 피지배 경험과 강대국들의 개입, 전쟁의 참화와 극한적 빈곤으로부터 일어서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한 우리나라의 개발경험은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에게 교훈이고 희망이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기여한 바는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국익에도 별반 기여하지 못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외원조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대외원조 정책은 개발도상국 파트너들에게 중장기적 안목과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이 빈곤과 분쟁에서 벗어나 개발을 이룰 수 있도록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외원조 정책은 섣부른 정책들로 춤을 추었고 바이 코리아 정책, 세계화 추진 정책,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전수, 자원 확보와 국익우선 정책이라는 상호 모순되고 일관성을 상실한 정책들이 오히려 한국의 대외원조 정책을 오염시켰고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성도 추락시켰다.

 

관련 부처의 장관들과 원조기관장은 국제규범에 입각하여 포괄적이고 범정부적인 대외원조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 실천하는 노력을 경주하지 못했고 부처 간 이해관계가 우선하는 단기적인 시혜성 원조사업들만을 추진함으로써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익을 창출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대외원조기본법이나 정책문서 하나도 만들지 못한 정부가 일관성 있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선진원조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럽의 공여국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통합적이고 일관성 있는 전략적인 원조를 수행해야 하는데 원조기관의 통합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 대외원조 정책의 모델이 된 일본조차도 이미 '독립행정법인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를 중심으로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차관원조 사업을 통합하였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스웨덴과 같은 원조의 모범국은 2003년에 이미 국회와 정부가 합심하여 전 지구적 개발정책(Policy for Global Development)을 만들고 이에 입각하여 모든 대외원조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다른 선진 공여국들도 법과 정책문서로 전 지구적 문제 해결과 국익을 조화시켜 일관성 있는 원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원조기관의 책임성과 전문성, 투명성 부족, 관료적인 조직 문화도 문제다. 20년이 지났어도 원조기관들은 아직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지도도 매우 낮다. 고도의 지식산업인 대외원조를 수행할 만한 ODA 정책관리자도, 지역전문가도, 컨설턴트도 키워내지 못했다.

 

선진국의 원조기관들이 국제개발교육과 세계시민교육에 앞장서고 언론과 노동조합, 대학, 연구소, 시민사회와 민간기업이 연대하여 전 지구적 아젠다를 해결하는데 공동으로 나서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원조기관은 폐쇄적인 섬 조직과 같다.

 

연간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면서 사회적 책임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다. 수년 내 ODA 예산은 수 조원이 될 것인데 이를 수행할 원조기관의 문제들은 전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제개발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전략은 안이하고 타성에 젖어 있다. 작금의 일들을 보자. 아이티에서부터 필리핀까지 30여 개발도상국에서 식량위기가 폭동 사태로 치닫고 있으며 식량과 자원의 무기화가 가속화되고 있는데도 정부와 원조기관은 아무런 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엄청난 재난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환경과 인간안보의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나서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긴급원조와 다양한 처방들을 내놓고 있지만 우리 정부와 원조기관들은 어떠한 전략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서방 국가뿐 아니라 일본, 중국과 인도까지도 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를 선점하기 위한 포괄적인 대외원조 정책과 전략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우리는 말만 앞선다. 원조 효과성에 관한 파리선언의 이행 평가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원조 효과성은 거의 모든 지표에서 최하위인 것으로 판명되었음에도 아무런 개선대책이 마련되고 있지 못하다.

 

대외원조의 효율성도 높이고 국민에게 실리를 베풀 수 있는 좋은 정책들이 많은데도 적극 나서서 국민과 함께하는 원조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ODA 재원으로 각 부처의 퇴직 공무원들을 개발도상국에 보내 명예롭게 공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고, 민간기업과 함께 아프리카의 빈곤퇴치와 교육지원, 사회 인프라 지원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진정한 '기여외교'를 실천하고 국익도 확보할 수 있는데 그러한 노력들이 보이질 않는다.

 

이러한 한국 대외원조의 제반 문제를 깊이 있게 인식하고 선진 한국의 국제개발 아젠다를 세련되게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일본의 오가타 사다코 JICA 총재와 같이 대외원조 시스템을 효율화하고 분산된 원조조직을 통합하여 원조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원조기관장이 필요한 때이다. 국가의 소프트 파워를 높이고 선진 일류 한국을 앞당기는데 기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대외원조 정책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이태주 경실련 국제위원장,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작성하였습니다.
* 경실련 홈페이지에 실렸습니다.

2008.05.14 17:3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태주 경실련 국제위원장,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작성하였습니다.
* 경실련 홈페이지에 실렸습니다.
#공적개발원조 #대외원조 #외교정책 #국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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