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화이부동 비빔밥'으로 만들자"

[지역언론 별곡 229] 강준만 교수, 시민·제자·지역 언론인들과 함께 책 펴내

등록 2008.05.15 21:04수정 2008.05.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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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시대, 다른 삶의 문법이 필요하십니까?"

"화이부동(和而不同), 그 아름다운 조화와 융합을 시도해 보세요."

 

"웬 화이부동이냐구요?"

"천년고도 전주의 문화유산에는 동서융합을 시도한 것이 많은데, 그 중 대표음식인 비빔밥에 화이부동이 가장 잘 버무려 있지요."

 

다작의 논객답게 학기 중에도 벌써 3권의 책을 뚝딱 출간했다. 두 달 전 출간한 <각개약진 공화국>(인물과 사상)에선 수많은 사회·문화적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각개약진' 패턴에 통렬한 비판과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젠 '지역주의자'란 어떤 비판도 감수하기로 작정한 것일까.

 

미시적인 지역의 일상적 삶과 실제경험의 세계로 돌아왔다. 성역이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수많은 배신과 공약파기, 속고 속는 세월 속에 한국적 삶의 기본 패턴이 되어버린 징글징글한 '각개약진' 때문일 것일까. 지친 듯한 쓴소리 대신 지역과 화이부동을 주창하고 나섰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쓴 <재미있는 전주이야기: 천년고도 전주의 화이부동>(인물과 사상)이란 책의 제목에서 묻어난다. 그러나 좀 더 촘촘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책 내면에선 여전히 '서울공화국'과 '지역학'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다분히 배어있다. 겉으론 전주와 비빔밥을 단순히 소개하는 책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강준만 교수, 시민과 학생 등 20여 명 공동으로 책 출간

 

'지역학 입문서' 정도로 생각했다간 금세 편견임을 느끼게 하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독특한 글쓰기가 묘하게도 점점 시선을 더 끈다.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화두를 던져보는 이 책은 최근 그가 쓴 <각개약진 공화국>, <선샤인 지식노트>와는 풍기는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시민과 대학생, 지역언론 종사자, 같은 학과 제자 등 무려 20여 명과 함께 썼다는 점은 더욱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화이부동에 더욱 몰입케 한다. 전북대 신방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성재민 학생(<선샤인뉴스> 편집인)이 정성 들여 자료를 수집해 쓴 유별난 이 책은 어울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지역사람들의 모습과 생활풍경, 역사적 유적과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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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가 시민, 학생들과 함께 펴낸 책 재미있는 전주이야기-천년고도 전주의 화이부동- ⓒ 인물과 사상

▲ 강준만 교수가 시민, 학생들과 함께 펴낸 책 재미있는 전주이야기-천년고도 전주의 화이부동- ⓒ 인물과 사상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를 넘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어울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녹아있다. 제1장 '전주와 역사와 문화재', 제2장 '소리와 종이의 예술', 제3장 '생활속의 전주 문화', 제4장 '전주의 음식문화', 제5장 '전주를 빛내는 전주 사람들', 제6장 '전통과 영상의 화이부동', 제7장 '화이부동 전주를 논한다' 등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방에는 음식과 문화재만 있는 게 아니라 화이부동의 정신이 늘 꿈틀거리고 있음을 역설한다.

 

평범한 지역문화와 생활상만을 소개한 것 같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서울공화국 대한민국'의 실상을 리얼하게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전주사람들의 모습과 생활풍경, 그리고 비빔밥이 주된 소재이긴 하지만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를 넘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어울리는 사회, 모두와 함께 하는 화이부동의 정신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강 교수는 책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미리 고백해 둔다.

 

"내가 전북에 산 지 올해로 20년이다. 외지인으로서 처음으로 전주문화가 영 마땅치 않게 여겨졌는데, 요즘엔 '전주는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까지 떠들고 다닐 정도로 전주문화와 전주사람들의 기질을 사랑하게 되었다."

 

덧붙여 그는 "1966년 265만명이었던 전북의 인구가 그간의 인구증가율을 따지면 오늘날 417만명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그 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178만명으로 쪼그라들었는데도 전주시민들에겐 분노가 없다"면서 "처음엔 어리석다고 보았지만 이젠 화이부동으로 보게 됐다"고 밝혔다.

 

"전주비빔밥엔 화이부동 정신이 가득하다"

 

그가 전주에서 '화이부동'의 정신을 찾기로 한 내막을 알 것 같다. 때문에 책 곳곳에선 화이부동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잦다. 강 교수는 전주의 대표적 음식인 비빔밥에 화이부동의 정신이 가득하다고 줄곧 강조한다. 조화와 화합의 정신은 비빔밥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걸 그는 끊임없는 화두로 던졌다. 심지어 그는 "비빔밥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모두 이면과 이익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고 했다.

 

'화이부동'은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포용력을 말한다. 다양한 소재들이 모여 조화와 화합을 이루고야 마는 비빔밥을 그는 화이부동의 제격으로 본 것이다. 현실정치를 외면할 그가 아니다. 비빔밥과 화이부동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그는 이명박 정권의 화이부동 부족현상을 책 서두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명박정권 사람들부터 사나움을 자제하고 겸허해지면 좋겠다. 그 반대편 사람들도 이명박정권과 겸허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독설을 날리는 방식으론 양쪽 모두의 악감정만 증폭시켜 극단적 대결만을 불러올 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더욱 무거운 화두를 던졌다. "지역민이 자기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없으면서 기존 서울공화국 체제를 아무리 비판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며 "이 책은 지역학의 대중화를 시도한 전주학"이라고 솔직한 커밍아웃을 한다. 전국의 모든 시·군이 시도를 한다면 총합적 효과는 지역균형발전을 앞당기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제1장 '전주의 역사와 문화재'는 조선 왕조의 숨은 그림 찾기와 전주의 자존심, '왕의 초상', '사신이 살아 숨 쉬는 천년의 전주' 등이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풍길 정도로 희화적이고도 현학적으로 묘사했다. 제2장 '소리와 종이의 예술'에선 '전주대사습놀이'와 '판소리 명당 학인당', '합죽선, 선자장 이야기', '전주한지 어제와 오늘', '장인을 떠나는 여행' 등을 담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합성의 오류' 덫에 갇혀 있다"

 

눈앞의 '한 끼 밥'에 비교할 수 없는 열정과 오기가 담겨 있는 진정한 장인 정신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짜릿한 감동을 주는 내용들이다. 화이부동 정신과 맥을 함께한다는 암묵적 메시지가 담겼다. 화이부동의 정신이 가장 역설적으로 묻어난 제4장 '전주의 음식문화' 편은 눈여겨 볼 만하다. 비빔밥의 기원과 전주의 대표적 음식인 비빔밥 전문점 등이 자세히 소개됐다. 전주비빔밥의 특징을 이 책은 이렇게 소개했다.

 

"전주비빔밥의 재료는 30여 가지나 된다. 주재료는 밥, 콩나물, 황포묵, 쇠고기 육회, 육회볶음, 고추장, 참기름, 달걀 등이며 부재료는 깨소금, 마늘, 후추, 무생채, 애호박 볶음, 오이채, 당근채, 쑥갓, 상치, 부추, 호부, 은행, 밤채, 잣, 김 등이다. 그중 콩나물은 원래 임실산 서태목(쥐눈이 콩)을 사용하는데 잔뿌리 없이 키운 5~6일째 되는 것을 사용해야 가장 맛이 좋다."

 

침이 꿀꺽 넘어간다. 밥에다 전국 각지에서 나는 갖가지 찬을 섞어 한 곳에서 비빈다는 의미에서 화의부동과 일맥상통하다. 또한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해온 콩나물국밥과 전주막걸리가 매콤하고도 얼큰하게 잘 소개됐다. 특히 전주막걸리를 마시면 막걸리에 흥에 취하고, 안주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싼 값에 취하고 사람의 정에 취한다는 내용은 한층 흥미를 돋운다.

 

이밖에 5장과 6장에서는 '사랑냄새 나는 시인 안도현', '영사기사 경력 50년 장한필 할아버지' 등 다양한 지역인물 탐구를 통한 지역사를 미시적으로 담아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시민과 학생, 지역 언론인들이 채웠지만, 마지막장인 7장 '화이부동 전주를 논한다'는 강 교수가 마무리를 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재임 중 '지식 판박이'들의 동종교배를 비판하며 '서울대를 비빔밥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 것처럼, 대한민국을 비빔밥으로 만드는 작업도 필요할 듯싶다"는 김회평 <문화일보> 논설위원 칼럼을 인용한 그의 글에서는 화이부동과 비빔밥을 등치시키려는 노력이 역력해 보인다.

 

"전주는 전국차원에서 보자면 화합과 조화 능력이 비교적 뛰어난 지역"이라고 주장한 강 교수는 "동전의 양면 중 하나가 '사람들의 악착같은 면이 없다'라면 그 반대편이 뛰어난 화합과 조화 능력인 셈이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른바 '합성의 오류'의 덫에 갇혀 있기 때문에 전주의 그런 특성이 보석처럼 빛난다"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 타파하고자 하는 '작지만 직접적인 시도' 돋보여 

 

강 교수는 다시 책 말미에서 전주의 비빔밥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비빔밥을 먹을 때 무심코 먹지 말고 섞임의 미학과 철학을 음미하면서 먹자. 그리고 실천하자"고 했다. 말미에서 그는 더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전달했다.

 

"전주와 전북이 화이부동의 총본산으로 한국사회의 화합과 조화를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어 한국인 모두가 착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서울공화국' 대한민국. 지역은 늘 소외되고 외면당해왔다. 지역민조차도 자신의 지역보다는 서울과 중앙에 몰입되어 있는 현실 속에 '지역학'은 학문의 분야일 뿐 아무런 힘도,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들의 입을 통해 듣는 지역에 관한 살아 있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일상적 삶'과 '실제 경험'을 통해 전주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과 가능성, 그리고 잠재된 힘에 주목했다. '전주학'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대중화된 '지역학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작지만 직접적인 시도가 돋보인다.

 

이 시도를 위해 강 교수와 현업에서 활동하는 지역 언론인, 그리고 수많은 전주시민, 대학생들이 힘을 합쳤다. '어울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전주사람들의 모습과 생활풍경, 그리고 역사적 유적과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를 넘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어울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

#화의부동 #전주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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