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경찰 앞에 학생을 '대령'하다

국민 보호하지 않는 정부, 학생 지켜주지 않는 학교

등록 2008.05.16 08:42수정 2008.05.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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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4일 저녁 서울시청앞에서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14일 저녁 서울시청앞에서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14일 저녁 서울시청앞에서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광우병 촛불시위 집회 신고를 낸 한 고3 학생을 경찰이 수업중에 불러내 조사했다고 한다. 해당 학교는 경찰의 요청에 수업중인 학생을 데리고 나와 경찰 앞에 '대령'했다고 한다. 지난 6일 전북 전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스승의 날인 15일 한 언론의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격노했다. 해당 경찰서와 학교의 홈페이지가 한때 내려앉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스승의 날 접한 이 소식은 참담했다. 먼저 전주 ㅇ고교 3학년 김아무개 학생에게 사과의 말부터 건네야겠다.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학교까지 찾아간 경찰의 무례함을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우리 경찰에게서 예의나 인권을 찾는다는 것은 아직 기대할 수 없기에 여기에서 시비를 따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경찰의 요청에 기꺼이 수업 중인 학생을 경찰 앞에 '대령'한 학교(교사)측의 행동은 뭇사람들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학교 측이 경찰 앞에서 보여 준 '굴종'과는 반대로 김 아무개 학생에게는 너무도 강압적이었고 폭력적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경찰 앞에 학생을 대령한 것도 모자라서 조사 받는 동안 교사가 옆에서 굳건히 지키고 서 있었다고 한다. 조사가 끝나자 '사고 친 학생' 이라거나 '블랙리스트' '나쁜 학생' 운운하는 말들이 교사들 사이에서 먼저 나왔다는 것은 소스라칠 일이다.

 

더욱이 경찰이 학생을 소환한 때가 수업시간이 아니었다고 학교는 거짓말을 강요했다. 학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존중은 없고 오직 힐난과 강압의 폭력만 있는 그곳은 이미 학교라 할 수 없다. 그곳은 학생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수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가시철조망일 뿐이다.

 

학생이 전대미문의 엽기 범죄를 저지른 중죄인도 아닌데(중죄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 몸을 강제로 속박해 끌고 간 것은 반인권적 패륜의 모습이다. 강자(정부 혹은 경찰)에겐 약하고 약자(학생)에겐 강한 몹쓸 인간의 전형적인 비겁한 모습을 학교는 보여주고 말았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려하지않)지 않고, 학교는 학생을 지켜주지 않는 현실이 이토록 속상하고 눈물겨울 수가 없다. 학교들은 왜 한결같이 학생들의 하소연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일까. 당한 자의 눈물이 모이고 모여서 거리마다 촛불을 켜게 하고 있음을 정말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문제의 학교 현관에는 '사랑으로 가르치고 공경으로 보답하자'는 글이 적힌 간판이 붙어 있다. 학생들에게 이것을 강요하기 전에 학교가 먼저 '사랑'과 '공경'의 의미를 제대로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다. 사랑과 공경이 한 줄짜리 표어로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다. 경찰 앞에 학생을 끌고 가는 굴종의 모습이 아니라 학생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자세부터 배우는 것이 사랑과 공경으로 가는 첫걸음임은 두말 할 것도 없겠다.

2008.05.16 08:42ⓒ 2008 OhmyNews
#광우병 촛불시위 #인권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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