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이야기 보따리가 책으로 나왔네?

[신간 서평]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120가지 이야기 책 '이야기꽃'

등록 2008.05.16 16:24수정 2008.05.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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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나눔의 실천은 새와 하늘과 땅에서 배운다. ⓒ 강기희


떠도는 말은 많은데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5월에 어울리는 책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로 이어지는 5월은 관계 맺기의 달입니다. 그간 소원했던 일이 있어도 5월이 되면 씻은 듯 녹아내리게 됩니다. 미안한 일이 있다면 손 잡아 주며 풀고, 고마웠던 일을 그냥 지나쳤다면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에 서운한 마음 또한 쉽게 접을 수 있는 것이 5월이 지닌 마음입니다.


사랑과 감사의 시간인 5월.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모깃불을 놓고 낡은 부채 팔랑이며 본인의 무릎을 내어 주시던 할머니도 이젠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진 할머니의 이야기꽃은 그저 옛날이야기일 뿐입니다.

할머니가 살아오신 삶을 한 편씩 꺼내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밤이면 할머니도 즐거웠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손주들도 행복했습니다. 때론 그 이야기가 무서워서 할머니의 품을 파고 들기도 했고, 어느 때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밤새 조르기도 했던 그 시절. 아이들은 꿈결에서 어린왕자가 되어 우주를 떠다녔습니다.

얼마 전 생각하는 동화나 지혜의 동화쯤으로 해석되어야 할 내용들이 빼곡하게 들어있는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 주는 120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이야기꽃>(살림터 펴냄)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야기꽃입니다. 자극적이거나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말은 많지만 삶의 철학이 녹아든 이야기가 없는 요즘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혼탁한 세상을 맑게 정화시켜 줄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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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미완성인 부분은 꼭 남겨 두도록 하여라 ⓒ 강기희


선생님들에게도 듣지 못하는 이야기꽃, 하나씩 펼치면 향기가 그윽해


120가지나 되는 이야기 하나 하나의 내용은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지 않은 이야기에는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묘미가 숨어 있습니다. 명문장일수록 글이 짧은 이유입니다.

인간들의 기도를 모으려고 두 천사가 이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한 천사는 바구니에 사람들의 '소원' 기도를 채우려 했습니다.
다른 천사는 바구니에 인간들의 '감사' 기도를 모으려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뒤 그들이 하느님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한 천사는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인간들의 수많은 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사를 담아 오겠다는 천사의 바구니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 책 '이야기꽃' 중에서

책은 술술 잘 읽히지만 가끔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우리네를 부끄럽게도 만듭니다. 잊고 살았던 관계나 부모님이나 스승에 대한 감사함에 대한 무관심을 은근히 질타하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 나른한 오후 시간이 되면 선생님께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거나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라고 조른 적이 많았습니다. 그럼 선생님은 마지 못해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고,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직도 생각나는 말씀 하나는 "친구를 사귐에 있어 차별을 두지 마라"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은 다 잊었지만 선생님들께 들었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네 삶에 필요한 영양소 같은 것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요즘은 학교 교실에서 그런 풍경을 접하기 쉽지 않습니다. 경쟁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죽을 맛입니다. 어쩌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요. 아이들은 동심을 잃어가고 선생님들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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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 주는 120가지 이야기꽃 ⓒ 살림터

제자가 앉아서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 그 곁에서 계속하여 방바닥에다 벽돌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제자는 스승이 자기 집중력을 시험하려고 그러는 줄 알고 꾹 참았습니다.

그러나 스승이 벽돌 문지르기를 그치지 않자, 제자는 도저히 그 소리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대체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제가 지금 묵상 중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스승이 말했습니다.
"이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제자는 이 말에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도셨군요! 어떻게 벽돌로 거울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자네보다야 덜 돌았지. 자네는 어떻게 앉아서 자기를 찾겠다는 건가?"
- 책 '이야기꽃' 중에서

스승의 날이 언제부터인가 쉬는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승의 한없는 가르침에 감사해야 하는 날인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회적 시선을 서로 피해야 하는 관계가 오늘날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할머니와 선생님들께 듣지 못하는 이야기가 이 책에 다 있네?

그런 관계를 만든 것은 스승도 아니고 제자도 아닙니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관료들과 학부모들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공범인 셈이지요.

책 <이야기꽃>에는 민담과 설화, 성서와 불경, 탈무드와 이솝 우화, 그리스 로마 신화 등에서 우리네 삶에서 꼭 필요한 지혜와 철학을 담은 글들만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 책은 어른들에게는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학생들에게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만들어 줍니다. 책 <이야기꽃>을 엮은 박용성씨는 논술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 바 있는 이야기꾼입니다. 하나의 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고를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을 잘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책에 들어 있는 내용 중에서 하루 한 편씩만 읽어도 삶이 달라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장실 책꽂이에 꽂혀도 좋겠고, 다탁(茶卓) 위나 식탁 위에 놓인다 해도 괜찮을 책입니다.

학교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가방에 몰래 넣어 두면 더 좋을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가야하지? 라고 고민하는 시간, 답답한 순간 산소 같은 글을 찾고 싶을 때 펼쳐도 좋은 책입니다. 서재에 꽂힌 채 먼지만 앉히기엔 너무도 아까운 책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책을 잠들기 전 읽기 위해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간밤 머리맡에서 이야기꽃의 향기가 은은하게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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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종교조차 물신의 노예가 되어버린 요즘 이 책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은? ⓒ 강기희

이야기 꽃

박용성 지음,
살림터, 2008


#이야기꽃 #스승의날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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