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MP3가 친구를 대신할 수 있을까?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16] 풍도분교 ② 2005년 '나홀로 입학생' 김은서

등록 2008.05.19 09:09수정 2008.07.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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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다음 날인 지난 16일,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 전교생이 학교 앞에 모두 모였다. 아침 조회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새벽 6시, 4학년 김은서, 3학년 최소영 그리고 올해 '나홀로 입학생' 임다예, 이들은 매일 새벽마다 선생님들과의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고 한다.

먼저 김수 선생님(남·38·분교장)이 학생들에게 '오늘의 코스'를 물어봤다.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속으로 빌었다. 제발 바다로 가자고. 허나 바다가 한 표, 산이 두 표다. 게다가 매일 똘똘 뭉쳐 다녀서일까. 금방 '바다 어린이' 또한 산행으로 갈아탄다. 선생님 두 분 그리고 세 아이들의 뒤를 바삐 쫓을 수밖에.

"선생님, 미워! 은서 언니 손만 잡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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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분교의 '아침운동' ⓒ 이정환

다예가 선두다. 산 중턱에 나타난 염소 목장, "염소야! 염소야"를 부르며 씩씩하게 잘도 올라간다.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지 도저히 못 따라잡겠다. 숨이 턱까지 와 닿는다. 역시 앞서 올라가던 소영이도 지쳤나보다. 대뜸 여환선 선생님에게 한 마디. "선생님, 미워! 은서 언니 손만 잡아주고!"라며 금방 토라지려 한다.

"시내에서 가끔 남학생들이 놀러오면 너무들 좋아해요. 그럼 쉽게 넘어가지 말라고 그러죠(웃음). 매일 어른들과 생활하니까 친구가 그리운 겁니다. 질투 같은 것도 심할 때가 있어요. 선생님은 나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나봐요."

김수 선생님 해석이다. 비로소 "선생님 혼자 있으면 출장 가기도 어려울 것"이란 그의 말이 실감이 났다. 전교생 세 명, 친구가 그립지 않을 리 없다. 아무리 씩씩해 보여도 어린이는 어린이. 바로 전날, 소원을 써보라고 했을 때도 은서와 소영이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나타냈었다.

"우리 집에 컴퓨터 한 대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유는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하고, 소영이가 부러워진다. ㅎㅎ 그리고 오빠가 군대를 가게 된다면, 우리 풍도로 왔으면 좋겠다. 오빠랑 헤어져서, 오빠가 보고 싶다. 또 좋은 친구나 언니 또는 오빠나 동생이 2, 3명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엠피쓰리를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왕경호 배에서 혼자서 있으니까 정말 심심하고 어지러워서 나가면 춥고 그래서 정말 가지고 싶다. 그리고 엄마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또 바닷가에 모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자갈 땜에 발에 상처가 나고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학년 김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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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도 분교 아침 운동 '오르막' ⓒ 이정환


"풍도에 중학교랑 고등학교랑 대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학교가 생기면 내가 다닐 수 있고 고등학교가 생기면 은영이 언니가 다니고 또 대학교는 우리 민영이 언니가 다니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풍도 섬이 너무 작아서 다 못 만들 것 같다.

그리고 바다에 모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굴뻥이 생기면 어른들에겐 좋겠지만, 우리에겐 불편하다. 왜냐하면 수영을 할 때 굴뻥 때문에 피가 나서 정말 아프다. 그리고 우리 섬에 백화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반찬거리도 살수 있고 학용품도 살 수 있고 좋을 것 같다." (3학년 최소영)

아이들 소원을 듣고 '가정방문'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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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싫어하는 '굴뻥' ⓒ 이정환

다예 소원은 언니들의 그것과는 약간 달랐다.  '피아노 학원'만 얘기했다. "풍도에 작은 피아노학원이 생기면 좋겠다"고,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고, "난 피아노를 꼭 치고 싶다"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물론 "친구들이랑 피아노를 치면 희망이 이뤄질 것 같다"는 말로 '친구'를 빼놓지는 않았지만.

언니들은 '여기'에서 태어났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없는 풍도에서 자라났다. 다예는 경찰 아빠를 따라 재작년 11월에 풍도로 왔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다녀봤다. 아빠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섬을 떠날 다예다. 언니들의 '외로움'과는 약간 다를지 모른다.

'가정방문'에 나섰다. '소원'을 전해들은 어른들 표정 역시 쓸쓸했다. 다예 아빠 임유정(37·풍도파출소 분소장)씨는 "피아노 한 대 없는 섬에서 부모가 딱히 커버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 저기서 하도 사교육 해대는 세상"이다. 소영이 어머니 김수연(43)씨는 "지금 학교(풍도 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모두 여학생 아니냐. 특히 예능 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면서 "피아노를 사준다고 해도 엄마라도 알아야 가르치죠"란 말로 답답함을 토로했다.

당장 '김수 선생님이나 여환선 선생님'이 떠오르지만, 아마 부모 입장에서는 어려운 부탁일 게다. 그들이 이 섬에서 어떻게 아이들과 지내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 같은 '새벽 운동'은 도시 지역에서 접하기 힘든 모습이다. "친구 없이 지내다 사교성이 떨어질 것 같아" 노심초사하는 소영이 어머니에게 선생님들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게 잘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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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예에게 '선크림'을 받은 김수 선생님 ⓒ 이정환

제자들의 소원을 전해들은 김수 분교장의 얼굴 역시 어두워졌다. 그는 "혜택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소원도 다양할 텐데, 다른 상황을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이라서…"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다만 '컴퓨터 소원'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어른 친구'다운 해법을 제시했다.

김 분교장은 "아이들이 컴퓨터를 통해서만 또래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보니까, 컴퓨터만 붙잡고 살게 되고 오히려 활동량이 줄어들 수 있다"면서 "또 워낙 이곳이 겨울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춥다 보니까, 방학 기간에 아이들이 하루종일 방 안에만 박혀 있는 것도 같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 분교장은 오히려 컴퓨터보다는 마을 체육관이 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그는 "강당을 겸해서 겨울에 아이들이 따로 운동을 할 만한 시설이 갖춰지면 좋을 것 같다"면서 "그렇게 되면 별다른 문화 시설이 없어 약주를 많이 즐기시는 어른들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를 잃은 은서...MP3 플레이어는 '자랑거리' 아닌 '현실'

고마운 분들임에 틀림없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역시 현실이다. 부모님들은 이미 체념한 듯했다. 아이들의 '소원'을 들려주자, 4학년 은서 어머니 황희숙(51)씨의 첫 마디는 "그런 게 되나요?"였다. "학생들을 어떻게 늘릴 수 있겠느냐"고 했고, "굴뻥 말고 모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에도 역시 "그게 될까요?"란 반문이었다.

다만 은서가 남들에게 기죽지 않고 커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황씨는 "아무래도 아빠가 없으니까, 좀 더 외로움을 타지 않겠냐"면서도 "그동안 남한테 기 죽지만은 않게 하려고 애썼다"고 힘줘 말했다. 3형제 중 늦둥이로 태어난 은서 나이 다섯 살, 그때 아빠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은서의 '소원'이 보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마 컴퓨터나 MP3 플레이어는 은서에게 단순한 '자랑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또 다른 친구들'에 가깝다.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하고", 풍도와 인천을 왕복하는 유일한 교통수단, "왕경호 배에 혼자 있을 때는 정말 심심한" 것이 현실이니까.

아마도 은서는 '친구 늘리기'가 이미 꿈같은 이야기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컴퓨터나 MP3 플레이어 같은 '차선'을 적어냈고, 막내 다예를 "안 무겁다면서 매일 업어 주는 것"이 은서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은서가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소영이와 다예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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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임다예 어린이가 혼자 하교하는 모습 ⓒ 이정환


먼 훗날, 이곳에서 '꿈'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은서에게는 "정말 심심하고, 어지럽고, (선실 바깥에 나가면) 춥다"는 왕경호였지만, 나는 왕경호를 타고 풍도에 오면서 "기대감이 대폭 상승했다"고 적었다. "배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목적지는 사람 '손'을 덜 탄 곳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행자의 생각이었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 '손'을 더 많이 탔으면 '좋겠다'. 나홀로 입학생마저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중에 김은서씨, 최소영씨 그리고 임다예씨가 언제라도 이곳 풍도에서 '나의 꿈'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커서 꼭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싶고, 그리고 나중에 그림을 잘 그리고 싶고, 나중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아주 아주 나중에 내가 늙어서 내가 이렇게 그렸구나 하는 그런 추억을 기억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나만의 그림을 모아서 아주 큰 전시회를 열고 싶습니다. 그래서 꿈이 있는 분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나의 꿈 : 미술선생님, 이름 : 4학년 김은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제 노래를 통해서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나의 꿈 : 가수, 이름 : 3학년 최소영)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나의 꿈 : 선생님, 이름 : 1학년 임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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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4학년 김은서, 3학년 최소영, 1학년 임다예 어린이 ⓒ 이정환


"이렇게 나가면 폐교는 물론 섬까지 없어질라"

경기도 안산시 중도동에 속한 풍도는 '야생화의 보고'로 잘 알려진 섬이다. 이 때문에 특히 각종 야생화가 만발하는 매년 봄에는 섬을 찾는 사진작가들이 많다고 한다. 다만 아이들이 얘기한 것처럼, 모래사장이 없고 '굴뻥'이 많기 때문에 섬을 찾는 피서객은 그리 많지 않다.

배편도 하루 1번 밖에 없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동안 풍도가 경기도 소재지면서도 '사람 손을 별로 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풍도에는 현재 115명이 살고 있다. 60여 세대, 80% 정도가 노인층이다. 30대에서 환갑까지 '장년층'이 "열댓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들 숫자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다. 1983년 풍도에 개척교회를 세운 김정순(54·여) 목사는 "처음 섬에 왔을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 21명이었고, 미취학 아동까지 합하면 30명 가까이 됐다"면서 "그 아이들만 데리고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정도로 큰 힘이 됐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 목사는 "무엇보다 폐교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라도 있어야 동네에 아이들이 보이고 그래야 사는 맛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갈수록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마을에 활기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풍도파출소 분소장인 다예 아빠 임유정씨도 "인근 유인도에서는 그나마 유일하게 학교가 있는 섬인데, 정말 큰 일"이라며 걱정했다. 그는 "근무기간이 끝나 우리 가족이 섬을 나가는 순간에 폐교가 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섬 '중심'이 죽는다는 이야기고, 젊은 사람들은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 풍도분교장도 "풍도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폐교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었다"면서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학교가 없어지고 나아가 섬들까지 없어지게 될 것(무인도화)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위 슬라이드 쇼는 blog.ohmynews.com/bangzza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위 슬라이드 쇼는 blog.ohmynews.com/bangzza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나홀로 #입학생 #풍도 #분교 #김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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