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도서출판 혜안
며칠 전, 이 책을 구입했다. 사야 할 책은 많고 해서 뒤로 자꾸 미루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마침 이 책을 통째로 웹상에서 내려받아 꼭 사야 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어 구입하게 된 것이다.
<조선불교통사> 근대편은 2책 중 상편의 끝 부분(13~72쪽)과 하편을 번역한 것이다. 상편의 끝 부분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일제가 제정한 조선사찰령 및 사찰령 시행규칙에 의해 전국의 사찰을 사법-사승-종지-등규-주직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사법이란 절의 인가 여부를 말하고 사승은 절의 역사, 종지는 절이 소속한 종단과 절 이름, 등규는 법의 계통과 그에 따른 주지 자격, 주지는 절의 주지를 소개하는 형식이다.
[사법] 해인사 본말사법, 明治 45년 7월 2일 인가.[사승]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3년 계미(803)년, 순응・이정 두 대덕스님이 창건하였고, 고려 고종왕 때에 대장경판을 새겨서 후대에 이르러 본사에 보관하였다. ※애장왕 3년은 계미년이 아니고 임오[802]년에 해당함.[종지] 선교양종 법찰대본산 해인사로 칭호함.[등규] 해인사 본말사는 청허휴정선사의 법손이 주지가 된다.[주직] 해인사 제 1임 주지 이회광은 明治 44년 12월 7일에 직책 취임이 인가되었고 제 2기에 재임되었다. - 47쪽 하편은 승니의 성립-승니의 입신-승니 시험의 제(制)- 법계 승진의 규제-법계의 명칭 순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백장청규나 탁발 따위 불교에 직접·간접적으로 관련된 역사·학술풍속·제도 등 200여 항목을 간추려 적었다.
불교뿐 아니라 한국 고대의 고유 신앙과 유교·그리스도교에 관한 자료도 함께 수록하였다. 또한 신라의 원광 법사에서 근세의 경허 스님에 이르기까지 고승을 소개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심지어 유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 관한 자료도 함께 수록하였다.
아라비아 이슬람교의 교조인 무하마드는 나이 스물다섯에 메카 성의 부잣집 과부인 하디자(加地亞)라는 이에게 장가를 갔는데, 이름이 아이사(掃達)이라고 하는 과부에게 두 번째 장가를 들고, 또 아언학(阿言謔)이라고 하는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장가를 가 죽을 때까지 모두 열 한명의 부인을 얻었다. - 158쪽 책의 맨 끝에는 조선사찰령 및 사찰령시행규칙 전문을 수록하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저술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정성을 들인 책이라 그런지 책 속엔 아주 방대한 지료가 수록돼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사강목>, <고려사> 등 한국의 대표적인 사서뿐만 아니라 불교 서적과 일반 자료는 물론 중국의 역사서와 고승전, 일본 고대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나 <본조고승전> 등에서도 백제, 신라관계 불교자료를 발췌했으며 그가 살았던 당시에 간행된 국내외서적들까지 인용하고 있을 정도다.
'참고' 또는 '비고' 난을 두어 금석문이나 비문, 기문(記文), 종명(鐘銘)과 관련한 자료를 첨부하여 참고하는 등 사료 수집가로서의 면모와 철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 책을 구태여 순 한문체로 쓴 이유조차 역사 자료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 보존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 불교사를 다룬 아주 뛰어난 책인 건 틀림없지만 결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든다면 인도·중국·한국에서 형성된 여러 종파와 고승에 대한 사항은 대충 기술하면서 임제 법맥의 고승들만 부각시킨다든가 하는 점이다. 또한, 근대 선맥을 다시 일으켰다고 하는 경허 스님에 대한 비판적 태도 역시 균형 감각을 지닌 것은 아니다.
또 전통적인 역사 연구방법을 따라 자료 수집과 정리에 집중했지만 민족사에 대한 역사 의식이 철저하지 못했던 부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기야 그렇게 역사 의식이 뚜렷했다면 그가 어찌 친일행위를 했겠는가마는….
이 책에는 번잡하고 복잡다기한 여러 가지 지식이 합쳐져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독자의 사정을 헤아렸음인지 '찾아보기' 항목을 두었다. 가끔 절이나 불교에 관한 기사를 쓰는 나 같은 독자에겐 매우 고마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번역한 이병두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고조선>, <정무론(正誣論)>(이상 역주)과 한사군 설치의 역사적 배경>(논문) 등을 저술했다.
제대로 된 번역서가 나오길 기대하며 이능화가 10년이라는 세월을 바쳐 <조선불교통사>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1917년 7월 14일치 <매일신보>를 통해 이능화의 말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답답한 유가의 성리학보다 광대원통한 불교의 심성설을 매우 좋아했으나 불경, 선서(禪書)를 볼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 …) 기쁘게도 원동의 무차대회와 동대문 밖 원흥사의 불법연구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조선불교의 연혁에 대하여 물은 즉 확실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신라, 고려시대에는 국교였는데 지금은 어째서 스님들까지도 아는 이가 없단 말인가? 1500년 역사가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나는 이에 『조선불교통사』를 저술하여 불충분하지만 세상에 내어 불교에 뜻을 둔 이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하였노라.이 책은 이능화가 자비로 간행한 책이라고 한다. 집을 팔아서 출판비를 충당했으나 책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저곳을 끌고 다니다가 비를 맞기도 하는 바람에 많은 책을 버리게 되어 지금은 원본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90년. 그러나 아직 이 책을 능가할 만한 불교사에 대한 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건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건 차치하고라도 아직 이 책의 완역본마저 없다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선불교통사> 근대편의 역자인 이병두 씨도 '역주자 서문'에서 "아직까지도 저자의 <조선불교통사>를 능가하는 불교사 연구서가 나오지 못하고, 이 책의 온전한 번역작업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우리 불교학계의 현실이 바로 '밑바탕이 충실하지 못한 한국 불교게의 역사의식 빈곤'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질타하고 있다.
다행히 얼마 전에 동대 불교문화연구원에서 올해부터 점차적으로 완역 간행할 예정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늦었으니만큼 더욱 문맥이 매끄럽게 연결되고 읽기에 편한 완벽한 번역서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조선불교 통사> 근대편/ 이능화 저/ 이병구 역/ 혜안/ 값 18,000원
역주 조선불교통사 전집 - 전8권
이능화 지음,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공유하기
이 책을 빼놓고 한국불교의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