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판 콩쥐팥쥐 '땀과 깜', 들어보실래요?

11회 동화구연대회 특상 받은 결혼이주여성 도금영씨

등록 2008.05.30 11:44수정 2008.05.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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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금요일, '제11회 어른이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동화구연대회'가 색동회 주최로 '자이갤러리'에서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여하는 이번 대회는 여느 때보다 경쟁이 심했다. 1차 예선을 거친 동화구연가 78명이 기량을 겨룬 본선 대회. 참가자들은 제한시간 5분 이내에 모든 것을 보여주느라 진땀을 뺐다.

참가번호 14번 도금영. 이름이 호명되자 푸른색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에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회장에 퍼지는 목소리 크기를 확인하더니 이내 베트남 전래동화 속으로 청중을 밀고나간다. '땀과 깜'. 각색한 동화의 제목도, 참가자의 의상도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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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예선과 본선을 뚫고 수상한 동화구연가들. ⓒ 동화가 있는 집


베트남 북부의 항구도시 하이퐁에서 태어난 도금영씨는 스물두 살에 한국에 왔다. 열일곱 살 차이 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앳된 아오자이 아가씨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 한 여성으로 한국 땅에 부지런히 실뿌리를 뻗어내리는 중이다.

쌍둥이보다 키우기 어렵다는 여섯 살, 다섯 살 연년생 남매를 기르는 베트남 어머니 도금영씨가 동화 구연을 배우게 된 것은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다. 대다수 한국인 엄마들과 외모도, 말투도 다른 엄마를 아이들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 그를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와~!"하는 관객 반응에 자신감 얻어

1차 예선에서 한국인 참가자들의 반응이 고마웠다는 도금영씨. 무대에 오르고, 베트남 사람이라고 소개되자 일순간 객석에서 "와~!"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동화구연 대회 최초로 외국인이 출전했다는 색동회 관계자의 설명이 무색하게, 그는 익숙한 한국어로 그 반응에 힘이 났단다.


"예선에서는 처음 무대에 서 봐서 그런지 너무 많이 떨렸는데, 본선에서는 앞에 내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덜 떨렸어요"라며 여유를 부리는 도금영씨. 옆에 있던 '동화가 있는 집'의 서수옥 연구원과 김경란 연구원은 "정작 무대에 선 도금영씨보다 우리들이 더 떨렸다"고 말해 도씨의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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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준비기간 내내 발음과 연습을 도와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 동화가 있는 집


동화구연대회 참가 전에는 한 번도 사람들이 많은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이렇게 큰 대회인 줄 몰랐어요"라며 단 5분의 공연을 위해 지난 한 달 간 노력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부천의 도금영씨 집으로 찾아와 발음 교정과 연기 지도를 해 준 '동화가 있는 집' 이송은(부천대학 겸임교수) 소장은 "다문화가정의 엄마들에게 도금영씨가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면서 "특히 아이들에게 엄마가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가는 데 이번 대회 수상이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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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에 소개된 '땀과 깜'을 비롯해 번역을 기다리고 있는 베트남 동화들. ⓒ 동화가 있는 집


부천노동복지관에서 다문화 가정 어머니들에게 동화구연을 가르쳐 온 이송은 교수는 "동화구연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유능함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기회일 뿐 아니라, 어려운 문법으로 접근하지 않아서 한국과 한국어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지도하며 베트남어를 맛보게 된 이 교수는 불어보다 베트남어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서 "베트남어에 'ㄹ'발음이 없어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땀이라는 소녀'라는 대목을 '땀이 나는 소녀'로 발음하게 되니까요. 정말 대회를 위해 무수히 연습했어요"라며 도씨의 노력을 칭찬했다.

대회를 앞두고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던 도금영씨. 그는 1주일 만에 각본 내용을 모두 암기하는 성의를 보여 자원활동가들의 더 큰 지지를 끌어냈다. 이송은 교수와 함께 도금영씨의 동화구연 연습을 도운 한국인 자원봉사자 김경란씨는 "보들보들, 까끌까끌 같은 느낌을 설명해 주기 어려웠다"며 의성어와 의태어를 잘 살려야 하는 부분에 특히 더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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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래동화 '땀과 깜'으로 특상을 받은 도금영씨. ⓒ 동화가 있는 집


우리나라 언론에 비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모습에 대해 정작 베트남 출신 다문화 가정 어머니는 어떻게 느낄까? KBS에서 방영하는 <러브人 아시아>를 제외하면 뉴스에 소개되는 피해 입은 여성의 불행한 모습만 비친다. 도금영씨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사는 사람들의 선례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결혼 이주 여성이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남편들의 태도와 한국인들의 태도가 함께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당당히 특상을 받은 도금영씨는 한껏 고무돼 있다. 그는 후배 결혼 이주 여성들도 동화구연을 통해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엄마 나라의 동화와 문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변화이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에 이송은 교수는 "더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동화를 매개로 아이들과 교감하고 자신감을 회복해 당당한 엄마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땀과 깜'은 우리나라 '콩쥐 팥쥐'와 비슷한 내용의 베트남 전래동화. '동화가 있는 집'에서는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들에게 동화구연을 가르치고, 어머니 나라의 동화를 한글로 번역 및 각색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땀과 깜'은 우리나라 '콩쥐 팥쥐'와 비슷한 내용의 베트남 전래동화. '동화가 있는 집'에서는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들에게 동화구연을 가르치고, 어머니 나라의 동화를 한글로 번역 및 각색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다.
#동화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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