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꺼풀을 만들어 봅니다

이젠 야한책도 마음껏 볼 수 있을까요?

등록 2008.05.27 20:14수정 2008.05.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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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학년이 바뀌면서 새 책을 한 무더기 받아들었을 때 그 느낌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조금도 구겨지지 않은 새 책을 마치 보물인 듯 받아와서는,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일 말입니다.

 

집에 동화책이 많이 없었던 저는 그때 마치 무슨 선물이라도 받은 듯 줄거리가 있는 국어책과 도덕책을 미리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보다 2학년이나 높은 언니 책도 물론이고요. 물론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넘겨야 했지요.

 

그렇게 새 책을 받은 기쁨을 얼마간 누리고 나면, 손재주가 정말 좋았던 막내 고모가 새하얗고 반질반질한 새 달력을 가지고 와서 책꺼풀을 입혀주었습니다. 아직 가위질이 서투른 저는 같이 하지는 못하고 고모가 한 권 한 권 싸 줄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하얀색이 주는 그 왠지 모를 뿌듯함, 마치 하얀 종이에 무언가를 채워가듯, 이 책으로 새로운 곱셈도 배우고, 나눗셈도 배우고 할 생각에 정말 좋아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가위질도 하고 풀질도 하게 되면서, 책꺼풀은 이제 각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고모가 해준다고 해도, 아마 하얀 달력을 자르고 접고 하는 일이 참 기분 좋은 일이라서 아마도 제가 하겠다고 우겼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하얀 달력으로 책꺼풀을 입히지 않았습니다. 팬시점이라고 하는 여학생들이 열광하는 문구점에 가면, 색깔도 예쁘고 디자인도 예쁜 책꺼풀들이 이미 만들어져 팔리고 있었으니깐요. 이미 비닐까지 덥혀있어서 종이가 해질 일도 없었고, 그냥 책 겉장을 그 비닐에 끼우기만 하면 됐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하얀 달력으로 책을 싸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하얀 달력으로도, 팬시점에서 파는 책꺼풀로도 책을 싸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입히지 않은 책을 그냥 들고 다닙니다. 교과서 겉장에 낙서도 합니다.

 

동생이 책꺼풀을 사고 싶어 합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책을 읽는지 보는 게 싫다고 합니다. 저도 사실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제목이 조금 야할 때는 책꺼풀을 입혀서 다니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동생은 책 꺼풀을 사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데 마땅한 게 없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만들어 줍니다. 아주 오랜만에 달력도 아닌, 천으로 책꺼풀을 만들어 봅니다.

 

 안감 자르기
안감 자르기이지아
안감 자르기 ⓒ 이지아
1. 먼저 책꺼풀을 조금 도톰하게 해주기 위해 안감을 준비합니다. 책 크기가 워낙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만들려고 하는 책 크기보다 조금 크게 자릅니다.
 
 겉감 자르기
겉감 자르기이지아
겉감 자르기 ⓒ 이지아
2. 겉감을 준비해서 안감보다 조금 크게 자릅니다. 겉감으로 감싸서 시접처리를 하려고 합니다.
 
 시침핀 꽂기
시침핀 꽂기이지아
시침핀 꽂기 ⓒ 이지아
3. 겉감으로 안감을 감싸준 뒤 시침핀으로 꽂아줍니다.
 
 재봉틀로 박기
재봉틀로 박기이지아
재봉틀로 박기 ⓒ 이지아
4. 사방 돌아가면서 박아줍니다.
 
 완성
완성이지아
완성 ⓒ 이지아
5. 사방으로 박아 준 다음, 왼쪽과 오른쪽을 조금 접어서 다시 박아줍니다.
 
 책 넣은 모습
책 넣은 모습이지아
책 넣은 모습 ⓒ 이지아
6. 완성 되었습니다. 책 겉표지를 넣어 봅니다.
 
 책 넣은 모습
책 넣은 모습이지아
책 넣은 모습 ⓒ 이지아
7. 책이 두께만 다른 게 아니라 길이도 다르기 때문에,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두 개 만들어 봅니다.
 
동생은 "이제는 지하철에서 야한 책도 읽을 수 있겠네"라고 한마디 하면서 무척 좋아합니다. 책을 아끼는 마음에서 만든 책꺼풀은 아니지만, 옷 입고 다니는 책들도 기분 좋겠지요?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에 올립니다. 
#책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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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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