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권우성
자동차의 경우를 보자. 한미FTA 협상 막바지인 작년 3월 민주당 측은 자동차 관련 '초당적 의회제안'을 미 무역대표부에 보내면서 이들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후 미 협상단은 우리 측에 7개의 요구를 추가로 제기하고 나섰다.
그 내용을 보자면 ① 한국 내 미국차 비중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뒤에 한국차에 대한 미국 내 수입관세(2.5%) 철폐 ② 자동차 관련 신속분쟁해결절차도입과 한국 측의 위반 시 관세철폐 취소 (스냅백 조항) ③ 환경, 기술관련 각종 표준현안을 해결 ④ 특소세, 자동차세, 지하철공채 등 세제 개편 ⑤ 지하철공채 회수(refund) 관련 확인서한 ⑥ 국내외 자동차 보험회사간 보험료 비차별 확인서한 ⑦ 자동차관련 표준의 무역제한요소 금지 명시 등.
매우 일방적이고 불평등하며 심지어 조세주권 침해적이기도 한 각종 요구는 결과적으로 협상 막바지에 ①번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수용되었다. '의회제안'의 핵심이기도 한 ①번 요구는 당시 미 무역대표부 협상대표의 말처럼 한국자동차의 미국 내 현지생산비율이 곧 70%에 달하게 된다고 할 때, 우리로서는 사실 큰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미국 측으로서도 별 손해 볼 일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관세 조기철폐가 대국민 홍보의 주력이라는 '정치적' 이유에서 당시 노무현 정부는 여기에 사실상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협상 이후 다른 모든 것을 다 내주다시피한 정부 측이 한미FTA가 잘된 협정이라고 우기는 바로 그 핵심 이유도 실익도 없는 자동차관세 2.5% 철폐에 있었다. 아무튼 미 의회가 말하는 자동차 재협상은 한국시장에서 미 자동차의 판매대수를 사실상 보장하라는 요구라고 보면 되겠다.
자동차 관세철폐와 더불어 당시 노무현 정부는 쌀과 관련해 '쌀은 지킨다'는 식의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한 바 있다. 2002년 미국 등과의 WTO DDA협상을 통해 2013년부터 쌀은 완전개방(관세화)하기로 되어 있는 조건에서 이를 '지켰다'고 말하는 것이다.
FTA 협상 개시 바로 몇 년 전 협상을 끝낸 쌀 문제를 한미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처음부터 배제하지 못한 협상 전략의 실패가 차라리 문제였다. 만약 민주당의 요구처럼 쌀 문제가 다시 거론될 경우 그 개방 시기를 앞당기거나 관세(개방 시 400%) 철폐 내지 축소가 거론될 것이고, 이 경우 한국농업이 어찌 되리라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현재 올 대선과 연방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이 나오고,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더욱 확고하게 장악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한 표에 목을 매는 선거전을 앞두고 한미FTA가 미 민주당의 득표 전략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한미FTA에 대한 노조의 반대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측이 먼저 비준동의를 하더라도 이로 인해 미 민주당 의회가 서둘러 승인절차를 개시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한미 양국 비준동의와 예상되는 4가지 시나리오한미 양국의 비준동의와 관련, 향후 예상되는 4가지 시나리오는 이렇다.
1) 공화당 대통령, 공화당 의회이다. 아마 이명박 정부로서는 가장 '행복한' 경우이겠지만 가능성은 아주 낮다. 2) 공화당 대통령, 민주당 의회이다. 현재 공화당 멕케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다. 지금 상황과 다를 바가 없는 경우로, 통상 문제를 놓고 공화당, 민주당 간의 헤게모니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3) 민주당 대통령, 공화당 의회이다. 개연성이 높아 보이지 않지만 이 경우 한미FTA와 관련 어떤 타협이 시도될 것이다. 4) 민주당 대통령, 민주당 의회 시나리오이다. 한미FTA로서는 최악이 아닐까 싶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를 완전히 내주고, 우리 측이 선 비준 동의하면 미 의회가 움직일 것이라는 아주 나이브한 시나리오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민주당의 요구는 단순히 쇠고기뿐만 아니라 자동차, 나아가 심지어 쌀까지 요구하고 있고, 한미FTA는 '이미' 미 국내 정치적 쟁점이 되어 버렸다.
17대 회기 내 국회비준동의를 서두르는 이유도, 한미FTA의 경우 신속처리 곧 90일 내 처리규정 적용을 받기 때문에 미 의회의 금번 회기가 9월 말까지이고 물리적으로 남은 시간은 6월, 7월, 9월(8월은 휴회)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미 의회의 신속처리규정이 법률이 아니라 의회 내 규칙(rule)에 불과해 전체 표결로 한미FTA에 대한 신속처리규정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 한미FTA는 미-콜롬비아 FTA 신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 경우 잘못된 정책판단으로 인해, 우리는 쇠고기, 스크린 쿼터 등 핵심 국익을 무상으로 내준 치명적인 외교실책을 자초한 것이 된다.
그나마 쇠고기 고시 및 국회비준동의를 미 대선 후로 연기할 경우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한미FTA의 운명은 바뀐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우리가 쇠고기 고시, 선 국회비준동의를 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위 1)번 시나리오를 제외하고 2), 3), 4) 경우 모두 특히 현재 가장 유력시 되는 4)번 곧 민주당 대통령, 민주당 의회의 경우 자동차, 쌀 모두 재협상 리스트에 올라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한미FTA는 10개 중 9개를 이미 협상 과정에서 내주고 남은 1개마저 내주어야 미 의회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이거라도 챙기려면 수입위생조건 고시 및 국회비준동의를 미 대선 후로 연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명박 정부는 당면한 국내 정치적 위기를 회피하고 불확실한 미국 내 상황에 대처할 대응력을 얻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해영 기자는 현재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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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만 퍼주면 미국이 만족? 순진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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