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의 빛, 희망인가 함정인가?

[역사소설 소현세자 53] 임금이 직접 입조하라

등록 2008.05.28 15:39수정 2008.05.2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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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관. 세자관으로 알려진 중국 심양의 아동도서관. ⓒ 이정근


수문장의 보고를 받은 박노가 뛰어나갔다.

"피파박시댁에서 왔습니다."


시종의 대답과 동시에 가마에 타고 있던 여인이 내렸다.

"세자저하를 뵙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청의를 걸쳤으나 낭랑한 목소리는 조선말이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박노의 안내를 받은 여인은 세자 집무실에서 소현과 마주 앉았다.


"저하께서 마음 고생이 심하다 하여 위로의 말씀을 드리려고 찾아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제가 조선국 왕족임을 아시고 자주 찾아뵙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데 그동안 찾아뵙지 못함을 용서해주십시오."
"고마울 따름입니다."


답례는 했으나 소현은 아찔했다.

'청나라 관복을 입은 조선 여자도 놀라웠는데 왕족이라니? 그렇다면 사적으로 종친이 되고 공적으로 신하가 되는데 도대체 이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였다. 시종하던 신득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회은군 따님이 아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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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 청나라 군대는 갑곶에 상륙하여 강화도를 함락시켰다. ⓒ 이정근



여인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랬다. 강빈을 비롯한 왕실 피난 대열에 끼어 강화도에 들어간 회은군 이덕인과 그의 딸은 포로가 되어 삼전도에 압송됐다. 황제 채홍사의 눈에 띄어 황제의 여자가 된 이씨는 홍타이지와 함께 심양에 들어와 제6황후가 되었다가 피파박사에게 하사됐다. 신득연은 이씨 외가 친척으로 예전에 몇 번 만났던 사람이다.

"세자 저하를 저희 집으로 초대하라는 피파의 분부가 계셨습니다."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관사 바로 옆으로 옮겼으니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피파의 집은 세자관에서 빤히 보이는 거리에 있었다. 피파의 초대를 받은 소현은 주위의 이목 때문에 직접 방문하지 못하고 빈객 박노로 하여금 피파를 만나보도록 했다. 세자의 명을 받은 박노가 피파집을 방문했다.

"어서 오시오. 빈객!"

피파는 박노를 반갑게 맞이했다.

"세자 저하께서 직접 오시지 못함을 해량해 주소서."
"이르다 말씀입니까? 세자 저하의 거둥은 무거워야지요."

"초대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준비한 음식이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많이 드시지요."

세자관에서 고생하는 조선 사람들을 위하여 회은군 딸 이씨가 준비한 음식이 진수성찬이었다.

조국을 도우려는 조선 여인

"조만간 조선에 나갈 일이 있으면 내가 나갈까 합니다. 그 때 내처를 데리고 가서 처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문 닫아걸고 열어주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피파박시가 호탕하게 웃었다. 피파박시(皮波博時)는 청나라 기록에 희복(希福)으로 나오는 만주 정황기인(正黃旗人)출신으로 황제가 출정할 때 데리고 다녔던 문신이다. 범문정이 심양을 지키고 있었다면 피파는 진중을 지키는 홍타이지의 막료였다. 황제가 취했던 이씨를 하사받은 그는 그것이 황제의 총애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이 우리나라 예법입니다. 피파가 황제의 명을 받아 조선에 나간다면 조정에서도 예를 갖춰 맞이할 것입니다."

준비된 진수성찬에 술이 몇 순배가 오고갔다. 화기가 그윽한 분위기였다. 이씨만 남기고 좌우를 물리친 피파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세자책봉을 허락했는데 조선은 왜 주청사를 보내오지 않는 것이오?"

"저희 역시 그 일로 걱정이 많습니다. 세자 책봉식은 모름지기 국본을 세우는 일로서 세자저하께서 인정전에 납시어 예를 행하고 조서를 반포하는 것이 법도입니다. 허나 세자저하께서는 지금 상국에 들어와 계십니다. 이러한 시기에 책봉을 청한다면 세자가 돌아가고자 하는 것으로 의심받을까봐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역(淸譯) 장예충이 끼어들었다. 역시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청나라 사람들과 대화중에 역관 정명수와 김돌시가 통역하면 의사를 왜곡 전달하여 오해와 좌절을 수없이 겪은 세자관은 청나라 말에 능통한 장예충을 대동했다. 그가 작심하고 핵심을 찌른 것이다.

노련한 통역관의 역할

장예충은 어린 나이에 사환통사(使喚通事)로 발탁되어 임진왜란 때부터 노련한 통역관이었다. 영민한 머리와 뛰어난 순발력을 겸비한 그는 천부적인 언어감각으로 통역 이상의 활약을 하여 훗날 승록대부 지중추부사에 올랐으며 왕으로부터 눌암(訥庵)이라는 호를 하사받기도 했다.

"이 일의 성사는 오직 조선에 달려 있소. 황제께 청하지도 않은데 먼저 책봉할 리가 있겠소?"
"우리나라에서 주청사를 보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뒤를 이을 세자를 청하는 것은 나라의 당연지사입니다."
"세자와 대군을 여기에 머물게 하는 것은 귀국이 우리나라를 믿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망한 것을 살려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와의 관계도 끊었습니다. 두 나라가 신뢰한다면 세자를 내보내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인데 피파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조선이 주청하면 나라 안의 일을 주관하고 있는 내가 많이 도와주겠소."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도와주겠다면 세자저하를 내보내 주겠다는 뜻인가?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청나라 조정에서는 책봉과 귀국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지만 피파가 그것을 연계하여 도와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직 청나라의 의중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도와주겠다는 청나라 관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피파의 집을 나서 세자관으로 돌아오는 박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세자관에 도착한 박노는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소현은  절망의 시간에 빛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백만원군을 만난 것 같기도 했다. 소현은 장계를 작성하여 급히 한성으로 보내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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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별궁. 남별궁이 있던 자리에 원구단이 있다. ⓒ 이정근



심양재신 박노가 보낸 장계를 받은 인조는 허탈했다. 세자가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일말의 희망이 보였으나 비문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몸 달아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사신을 위한 연화가 남별궁에서 벌어졌다.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가 살았던 곳이라 하여 '소공주댁'이라 불리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원병을 이끌고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지휘부로 사용했던 곳이다. 오늘날의 조선호텔 자리다.

"조선은 귀화인을 돌려보내고 도망간 포로를 쇄송하시오. 그리고 왕이 직접 입조하시오."

청천벽력이다. 임금이 청나라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가는 것은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나오는 것은 "나가지 말라"하면 못 나오는 곳이 청나라다. 세자처럼 묶여 있을 수 있다. 구금할 수 있는 명령권이 황제에게 있다. 죽일 수 있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청나라다.
#세자관 #남별궁 #회은군 #인조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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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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