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광장에서 '초의 눈물' 닦는 사람들

"왜 하냐구요? 촛불문화제 왜 참여하냐고 묻는 것과 같아"

등록 2008.05.29 16:46수정 2008.05.2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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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촛불 문화제가 끝나고 청계광장 바닥의 촛농을 제거하고 있는 시민들 모습

촛불 문화제가 끝나고 청계광장 바닥의 촛농을 제거하고 있는 시민들 모습 ⓒ 송주민

촛불 문화제가 끝나고 청계광장 바닥의 촛농을 제거하고 있는 시민들 모습 ⓒ 송주민

 

수만 개의 '촛불'이 휩쓸고 간 한밤의 청계광장에는 초가 흘린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있다. 동전으로, 열쇠로, 그리고 '껌 떼는 도구'로 청계광장 바닥의 촛농을 닦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28일 밤 11시가 다 된 시각, '촛불 문화제'를 진행한 사회자가 "오늘의 집회는 여기까지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폐회 선언을 한 이후의 장면이다. 시민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하면 이들은 어디선가 나타나 '도구'를 꺼내어 '촛농 제거'에 들어간다. 

 

스스로 나선 시민들... 하다보면 어느새 같이하는 친구도 생겨

 

이들은 사전에 모집된 자원봉사자일까? 예상외로 그렇지 않다. 자발적으로 나선 일반 시민들이다. 한 시민이 청소에 들어가면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시민이 거들고, 이런 식으로 하나 둘 늘어나 자연스럽게 '행사 뒤처리 일일 자원봉사단'이 꾸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날은 7명 정도의 시민들이 애써 궂은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음악 작사 일을 한다는 백아무개(34)씨는 왜 힘든 작업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 말은 '촛불문화제에 왜 참여하냐'고 묻는 것이랑 똑같은 질문"이라며 "그냥 돕자는 마음에서 혼자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어느새 옆에서 같이 하는 친구도 생기고 그러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백씨는 "청계광장 바닥은 촛농을 제거하는 게 참 어려운데 시청 앞은 잔디에 대리석이어서 제거가 쉬운 편이다, 집회 허가를 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며 살짝 웃은 뒤 "아무래도 이명박 정권이 퇴진하기 전까진 시간날 때마다 계속 이 일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최경미(22)씨는 쪼그려 앉은 채로 제거된 촛농을 맨손으로 줍고 있었다. 최씨는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 치우고 있다"며 "집에 가려다가 옆에서 치우고 있는 분들이 보여서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손이 좀 더러워지는 것은 나중에 씻으면 되니까 상관치 않는다"면서 "내일 학교에 가야 돼서 오늘은 거리에 나가 시민들과 함께 행진은 못하지만 이런 뒷정리 작업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조그마한 종이에 촛농을 쓸어 담았다.

 

"시민들 연행되는 장면보고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열쇠를 꺼내어 바닥의 촛농을 떼어내고 있던 이아무개(32)씨는 "오늘 처음 제거하는 것이라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뒤처리를 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며 "다들 고생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내가 여기서 웅크리고 앉아있다고 해서 결코 더 힘들다거나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토요일 새벽에 시민들이 강제 연행되는 장면을 본 순간부터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며 "그 때부터 나라도 직접 나서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외치며 '촛불'이 흘렸던 '눈물'은 스스로 나선 시민들의 따뜻한 손에 의해 하나둘 청계광장 바닥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갔고 이들이 잠시 허리를 폈을 때, '촛불'은 청계광장을 떠나 서울 한복판의 길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촛불'들 따르는 '메딕'... "시민들 안전은 우리가 맡겠다"

청계광장 '촛불 문화제' 현장에는 '의무병'도 존재한다. 노란색의 조끼를 입고, 구급약품이 든 통을 들고 있는 이들은 '촛불'을 따르며 그들의 안전을 책임진다.

5~7명 정도로 구성된 '의무병'은 지난 24일 이후부터 '촛불'과 함께 하게 됐다. 시민들이 강제 연행되기 시작하고 부상자가 속출하자 이렇게 활동하게 된 것이다. 이들도 역시 소속 단체가 없는 자발적인 시민들이다.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꺼려했다. 한 시민은 "신문에 나오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그냥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고 짧게 답했다.

이어 그는 "우리 중에는 의사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며 "사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모르시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앞에 있던 '촛불'들이 거리를 향해 뛰어가자 뒤를 따르던 '의무병'도 구급통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2008.05.29 16:46ⓒ 2008 OhmyNews
#촛불 문화제 #촛농 제거 #광우병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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