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본위인 '아'를 망각했다

'아'와 '비아'와의 투쟁은 대한민국 불행에 빠뜨릴 것

등록 2008.06.02 13:16수정 2008.06.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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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내뱉은 발언이라고 한 일간지가 보도했다. 이 같은 발언 속에는 촛불문화제 배후에 불순한 조종세력이 있음을 암시하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깔려 있다. 또한 이는 이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철학의 부재 내지 빈곤함을 표출한 대목이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단재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내린 역사에 대한 정의(定義)다. 단재는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외에는 '비아'라 하나니,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미 등을 비아'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무산계급(無産階級)은 무산계급을 아'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 등을 비아'라 하지만, '지주나 자본가 등은 각기 제 붙이를 아'라 하고, '무산계급을 비아'라 한다. 이뿐 아니라 학문에나 의견(意見)에나 그밖에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本位)인 아(我)'가 있으면, 따라서 '아와 대치(對峙)한 비아'가 있다"고 말한다.

 

단재의 역사 정의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문화제는 '아'요, 이와 반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 및 재협상 불가를 말하는 이명박 정권은 '비아'이다. 또한 단재의 "학문, 의견 그밖에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인 '아'가 있으면, 아와 대치한 '비아'가 있다"는 정의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문화제는 본위인 '아'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 및 재협상 불가를 말하는 이명박 정권은 아와 대치한 '비아'이다.

 

역사상 본위(本位)인 '아(我)'는 주체세력이다. 본위인 '아'는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는다. 촛불문화제에 마치 배후세력이 있는 양 호도하면서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1964년 자신이 가졌던 본위인 '아'의 역사관을 뒤집는 언행이다. 이 대통령이 촛불문화제의 본위(本位)인 '아(我)'를 부정코자 한다면 우리나라 근, 현대 역사적 사실과 대통령 자신의 지난 행적이 이를 명징(明徵)해준다.

 

이 대통령이 암시하는 바대로라면 3.1만세운동, 4.19혁명, 5.18광주항쟁, 6.10민주화항쟁 등의 역사적 사실은 모두, 불순한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당해 왔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더구나 1964년 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를 주도했던 이명박 학생 또한 당시 불순한 음모를 가진 배후세력에 조종당해 '박정희 정권 타도'를 외치며 청와대로 돌진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유관순 열사. 그는 불순세력에 조종당해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왜경에 체포되어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감옥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 과연 불순한 배후세력 때문인가?

 

김주열 열사. 그는 불순세력에 조종당해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나? 17살의 나이로 이승만 독재정권의 3.15부정선거 규탄 시위 중 행방불명된 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숨진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과연 불순한 배후세력 때문인가?

 

광주시민. 이들은 불순세력에 조종당해 광주민주화항쟁의 깃발을 들었나? 1980년 5월 광주지역에 투입된 공수부대에 맞서 싸우다가 전두환 군부 일당의 총칼에 참혹하게 유린당한 광주의 ‘그날 오월’이 과연 불순한 배후세력 때문인가?

 

이한열 열사. 그는 불순세력에 조종당해 1987년 6월 9일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았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분쇄키 위한 시위 도중 연세대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21살 청년의 꿈을 앗아간 것이 과연 불순한 배후세력 때문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문화제 불을 지핀 10대 중.고.대학생. 이들이 불순세력에 조종당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나?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참되고 바른 사람이 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와 국가의 가르침에 따라 이들이 촛불을 켜든 것이 과연 불순한 배후세력 때문인가? 

 

이명박 학생. 그는 1964년 6월 3일 '박정희 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1만50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청와대 부근까지 진격해 경찰차와 트럭을 빼앗아 세종로를 질주했다. 박정희 정권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고 이명박 학생은 검거됐다. 내란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학생 등 5명이 자신들이 주도했던 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에 대해 "위정자의 잘못을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 법정 진술이 과연 불순한 배후세력 때문인가? 

 

그렇다. 이들에게는 분명 불순한 배후세력이 존재한다. 좌파 빨갱이가 아니다. 다름 아닌 권력과 무력을 가진 불의의 자들이다. 3.1운동의 불온한 배후세력은 일본 제국주의다. 4.19혁명 배후세력은 이승만 독재정권, 5.18광주민주화항쟁 배후세력은 전두환 군부일당, 6.10민주화항쟁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다.

 

결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문화제 배후세력은 이명박 정권으로 귀결된다. 이를 부정코자 한다면 6.3 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를 초래한 배후세력이 박정희 정권인지 아닌지, 당시 이명박 학생은 잘 알고 있다.

 

당시 이명박 학생은 불순한 배후세력에 조종당해 6.3 한일굴욕 외교 반대시위 선봉에 섰는가? 아니면 본위인 '아'가 주체세력이 되어 시위를 주도했나? 당연히 본위인 '아'가 주체세력이 되어 시위를 주도했다. 그렇다면 3.1만세운동, 4.19혁명, 5.18광주항쟁, 6.10민주화항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문화제 또한 본위인 '아'가 주체세력이다. 따라서 국민 저항을 초래하는 불순한 배후세력은 국민과 정의를 짓밟으며 불법과 불의를 저지르는 권력과 무력을 가진 불의의 자들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시민 불복종'에서 "우리는 불의의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들에게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 결정 협상에 무조건 따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이제 이명박 정권은 '비폭력'을 외치는 국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소로우는 다시 말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신체는 이명박 정권의 신체가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정신은 이명박 정권의 정신이 아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은 국민 개개인의 신체와 정신을 훼손시킬 아무런 권리가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이명박공화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이명박 정권에게 있지 않고, 모든 권력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주체세력은 무한한 국민인 본위인 '아'요, 유한한 이명박 정권은 '비아'이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을 '아'로 보는 오만에 빠져 국민을 '비아'로 간주하면서 국민의 신체와 정신을 짓밟는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말하는 이 대통령. 그는 현재 1964년 6월 3일 자신이 '박정희 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1만50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청와대까지 진격하면서 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는 "위정자의 잘못을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본위인 '아'를 망각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본위인 '아'를 망각한 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촛불을 방패로 끄고, 군홧발로 끄고, 방망이로 끄고, 물대포로 끈다고 촛불이 꺼질리 없다. 초가 있는 한 국민들은 초를 들 것이며 다시 초에 불을 켤 것이다. 이 대통령은 중국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아가 어린 아이를 두 손으로 꼭 감싸 안고 그를 위로하기 이전에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향하는 성난 대한민국 국민을 진정 끌어안는 본위인 '아'로 돌아가야 한다.

 

이 대통령이 본위(本位)인 '아(我)'를 망각하고 무력으로 국민들의 촛불을 끄려하면 할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쟁투(奪鬪)가 더욱 맹렬(猛烈)하여 국민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촛불문화제는 쉼 없이 이어질 것이다. 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의 전도(前途)가 완결되지 않아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鬪爭)은 대한민국을 불행에 빠트릴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이기 이전에 그도 본위(本位)인 '아(我)'인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2008.06.02 13:16ⓒ 2008 OhmyNews
#이명박 #미국산쇠고기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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