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될 도시락 주워가도 반기는 아내

도시락 속 밥이 맛있는 식혜로 변한 사연

등록 2008.06.04 09:44수정 2008.06.0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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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근날 나온 도시락 여러개라 박스에 담아 짊어지고 퇴근했다.
특근날 나온 도시락여러개라 박스에 담아 짊어지고 퇴근했다.변창기

토요일, 특근이 잡혔다. 금요일 밤 9시까지 출근하여 밤샘 일하고 토요일 아침 8시 퇴근한다. 퇴근 30분 후 집에 도착해 씻고 밥 먹고 나면 오전 10시 정도 된다. 밥 먹고 바로 자고나면 얼굴이 부어 오르고 배에 기름기만 늘어나니 두어 시간 정도 소화 시키고 자느라 컴퓨터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정오 12시나 오후 1시 넘어 잠시 눈을 붙이고 난 후 오후 3시 30분경 깬다. 눈꺼풀이 무겁고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일어나야만 한다. 정신 차리고 아내가 차려놓은 밥을 주섬주섬 위장으로 밀어넣고 물 한 잔으로 목에 걸려 덜 넘어간 음식을 마저 밀어넣는다.

오후 4시가 넘어 집을 나서면 오후5시 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한다. 원청 사무실에 들러 출근 눈도장 찍고 일터로 간다. 오후 5시부터 작업 시작하고 나면 중간에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휴식이 있고 밤 9시에 참을 먹게 된다.

30분 주어지는 시간 안에 3000원 하는지, 5000원 하는지 하는 도시락을 다 먹어야 한다. 30분 후 다시 일을 시작하여 다음날(일요일)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야식 시간이다. 그땐 식당 가서 밥을 먹는다. 새벽 2시부터 6시간을 두 시간 마다 쉬면서 다시 일해야 한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8시 드디어 퇴근시간이다.

퇴근 때 나는 짐을 한보따리 싸들고 간다. 박스 안에는 전날 밤 9시에 나온 도시락이 여러개 들어있다. 속이 좋지 않아 그런지 몇몇은 도시락 대신 컵라면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일한다. 남은 도시락은 모두 버려지고 쓰레기로 변한다.

나는 버려지는 게 아까워 주워 모은다. 농민이 봄부터 가을까지 땀흘려 농사지은 쌀로 만든 밥과 반찬일 것이다. 또한, 도시락 하나 나오기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의 수고가 서려있을 것이다. 아까운 도시락을 버려 쓰레기로 변하게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와~ 오늘 몇 만원 벌었네."

별로 시답잖은 반응을 보이면 어쩌나 했는데 아내가 한 박스 짊어지고 온 도시락을 보며 반긴다. "쓰레기 차는데 뭘 가져와"라고 하면서 언짢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음에도 아내는 그 귀찮은 뒷처리를 감수하면서 반기고 있는 것이다.


부자의 아내라면 거들떠도 안보는 싸구려 도시락인데 말이다. 아내는 귀찮을 법도 한 1회용 도시락 뒷처리를 일일이 했다. 반찬은 뜯어 각 반찬 그릇에 담고 국은 뜯어 냄비에 부어 모은다. 그리고 밥은 나중에 식혜할 거라며 위생 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 했다. 그리고 빈 도시락 용기는 모아서 재활용 처리하는 곳에 가져다 두었다. 아내는 참, 알뜰도 하다.

특근날 나온 도시락 밥으로 만든 식혜 아내는 내게 식혜를 맛보라며 한그릇 퍼주었다. 아내가 해주는 식혜는 맛있다.
특근날 나온 도시락 밥으로 만든 식혜아내는 내게 식혜를 맛보라며 한그릇 퍼주었다. 아내가 해주는 식혜는 맛있다.변창기

덧붙이는 글 | 어제 아내는 그 도시락 밥으로 '식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 한그릇 맛보라며 퍼준다.


덧붙이는 글 어제 아내는 그 도시락 밥으로 '식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 한그릇 맛보라며 퍼준다.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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