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4)

― ‘잘나가는’ 기업과 ‘유수의’ 기업

등록 2008.06.06 20:18수정 2008.06.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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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유수의 기업들 상당수가 그렇듯, 구글도 기후 변화를 오히려 사업의 기회로 삼는 녹색기술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 '잘나가는'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 줄이기에 일찌감치 관심을 기울인 공통점이 있다 ..  <정혜진-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녹색평론사,2007) 179∼180쪽

 

'상당수(相當數)'는 '거의 모두'로 손봅니다. '기후(氣候) 변화(變化)'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날씨 변화'나 '날씨 바뀜'이나 '날씨 뒤틀림'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사업(事業)의 기회로"는 "새 일감 찾는 기회로"로 다듬어 보고, "녹색(綠色)기술을 향(向)해"는 "깨끗한 기술로"나 "맑고 좋은 기술로"로 다듬습니다. '전진(前進)하고'는 '나아가고'로 고치고, "온실가스 배출량(排出量)을 줄이고"는 "온실가스를 적게 내뿜고"로 고칩니다. "관심(關心)을 기울인"은 "눈길을 둔"으로 손질하고, "공통점(共通點)이 있다"는 "비슷한 대목이 있다"나 "비슷비슷하다"나 "닮았다"로 손질합니다.

 

 ┌ 세계 유수의 기업들 (x)

 └ '잘나가는' 기업 (o)

 

지식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쓴 글을 읽다가 아찔해지곤 합니다.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욕 한 사발 퍼붓고 싶구나 생각하다가, 욕사발 퍼부은다고 알아듣겠느냐 싶어서 가슴이 저밉니다. 왜 욕사발을 들이붓는지도 못 느끼지 않겠습니까.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릴 적 학교에서뿐 아니라 어버이나 동네 어른한테도 배우는 옛말처럼,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뿐 아니라,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집'니다. 말 한 마디로 돈 천 냥이 오락가락합니다.

 

잘 펼친 말 한 마디로는 돈 천 냥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돈을 넘어서 나와 내 이웃 모두한테 흐뭇함과 즐거움과 따뜻함과 믿음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말입니다. 잘못 펼친 말 한 마디로도 돈 천 냥을 잃을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돈을 넘어서 나와 내 이웃 모두한테 괴로움과 짜증과 차가움과 푸대접과 따돌림을 휘두를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보기글을 쓴 분은 '세계 유수의 기업'이라고 앞머리에 적습니다. 곧이어 '잘나가는 기업'이라고 적습니다. 이때 '잘나가는'이라는 낱말에는 작은따옴표를 붙입니다.

 

가만히 생각합니다. 글쓴이는 '유수(有數)'가 '잘나가는'을 뜻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몰랐을 수 있는데, 어렴풋이나마 느끼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기업을 가리키는 이야기를 펼치면서, 한쪽에는 '유수 + 의'로 적다가, 곧이어 '잘나가는'으로 적습니다.

 

 ┌ 세계에 내로라하는 기업

 ├ 세계에 몇 손가락으로 꼽히는 기업

 ├ 세계에 잘 알려진 기업

 ├ 세계에 손꼽히는 기업

 ├ 세계를 주름잡는 기업

 └ …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말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말선물을 베풀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말고픔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말부름에 즐거워하지 못합니다.

 

또다른 옛말로, '말로 사람을 죽이고 말로 사람을 살린다'고 했습니다. 말 한 마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고이 담습니다. 말 한 마디 가려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살포시 담습니다. 말 한 마디 깊이깊이 헤아린 다음에 하라는 뜻을 고스란히 담습니다. 말 한 마디 두루 돌아보거나 되살핀 다음에 하라는 어진 가르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6.06 20:1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유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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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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