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6월의 거리, 우리는 촛불소녀에게 배운다

[긴급진단 ②] 하승수 변호사

등록 2008.06.07 23:13수정 2008.06.0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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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둘째날인 6일 저녁 촛불문화제가 서울 시청앞 덕수궁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학생과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 유성호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고 불러보는 노래다. 21년 전 6월의 거리에서 목청껏 불렀던 노래를 어제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의 현장에서 다시 듣고 불렀다.

가슴이 울컥했다. 노래 가사와는 달리 지난 21년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나 많이 흔들렸기 때문일까? 내가 많이 흔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21년이 지나서까지 이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이 서글프기 때문일까?

어떻게 보면 21년 전보다 우리 사회는 더 행복하지 못한 사회가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광우병 쇠고기'처럼 인간의 탐욕이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사회는 점점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있고, 사람들은 더욱 돈에만 매달리고 있다.

촛불 소녀들은 지혜롭고 똑똑하다

어제는 며칠째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초를 나눠주고 있다는 고등학생이, 그리고 스무살 대학생이 마이크를 연이어 잡았다. '촛불 소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광우병 쇠고기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운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낳을 극심한 경쟁,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미처 꽃피워 보지도 못한 청소년들의 미래를 박탈해 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촛불문화제가 끝이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든 촛불들이 만든 흐름을 이어가야 하고 자신들도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참 똑똑하다. 지혜롭다. 촛불소녀들은 이미 이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고민하고 있다. 부끄럽다. 저들이 저렇게 느끼고 고민하고 있는데, 기성세대들은 그 절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사실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기성세대들은 민주화 이후의 현실에 무기력하게 적응했다.


돈의 논리와 경쟁에 적응하고 익숙해졌다. 그 배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의 변화에 둔감하고 무관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닌가? 그리고 어리석은 기성세대들이 남기고 갈 '어두운 유산'이 청소년들의 삶을 짓누르게 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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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서 열린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서 한 여학생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가면을 쓴 채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천박한 선진화는 미래를 잠식한다

촛불소녀들도 본능적으로 알듯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졸속 협상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경제성장이 제일 중요하고, 미국식 사회ㆍ경제모델로 가야 된다'는 생각이 지금 우리 사회의 기득권 관료집단·정치인·재벌·보수언론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선진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열 번도 넘게 말했다는 '선진화'의 실체는 바로 미국을 선진국으로 상정하고, 우리 사회를 미국식 사회·경제모델에 끼워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미FTA에 목을 매고 미국산 쇠고기를 서둘러 수입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식 의료모델, 미국식 교육모델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민주당, 자유선진당 같은 야당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들도 기득권 집단에 속해 있고, 그들 중 상당수는 미국식 사회·경제모델을 추구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부분적인 의견 차이를 보일지는 몰라도, 차별성 있는 대안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감히 '선진화'에 반기를 들지 못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는 선진화론자들 중에서도 '천박한 선진화' 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식 사회·경제모델에 대한 추종에 덧붙여서 토건국가식 개발주의를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운하처럼, 미국에서도 하지 않는 '삽질을 통한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촛불소녀들이 너무나 잘 느끼고 있듯이, '선진화'는 우리의 미래를 잠식한다. 선진화론자들이 추구하는 정책은 광우병 쇠고기에서 보듯이 사람들의 건강을 잠식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무분별한 개방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국민들의 건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허약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교육정책은 청소년들을 소진시키고, 그들의 행복을 빼앗아 갈 것이다. 농업정책은 농업과 농촌을 더욱 황폐화시킬 것이고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그 외에 다 열거하기 힘든 여러 정책들은 민주주의와 환경, 공동체와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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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전명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둘째일인 6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 학생들이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서울시청앞 광장을 향해 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한 어린이가 아빠 무등을 타고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양심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으로 실천을 이어나가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오늘 촛불을 드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특히 기성세대들은 양심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앞선 세대들이 저질러놓은 일로 뒷세대들이 고통받고, 최소한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받고, 행복을 박탈당해서야 되겠는가? 광우병쇠고기, 대운하, 교육시장화·경쟁격화, 의료시장화 등은 모두 기성세대보다는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큰 짐을 지우는 일들이다. 여기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무책임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떻게 하자'는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건 누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보이는 촛불들의 움직임이 사람들 속에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하고 적극적인 실천 속에서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뜨겁게 달아오른 6월의 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길을 찾아 나가는 공간이 될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네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인터넷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들을 계속하자. 더 확산시키고 소박하나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가자. 사람들과 함께 내 삶에서부터 고칠 것은 고치자. 그리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자.

'천박한 선진화'에 대항하고 그것과는 '다른 사회'를 꿈꾸는 실천들에 참여하자. 이미 그런 실천들을 하고 있는 여러 모임들이 존재한다. 찾아보고 참여하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선거 때마다 객관식 답안지에 답을 찍듯이 찍고 나오지 말고, 답안지 자체를 바꾸자. 시민들이 답안지를 새로 만들자. 그것도 시민의 권리이다. 다가올 2010년 지방선거부터 그렇게 하자. 필요하면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그게 아니면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끼리 힘을 모으자. 그래야 정치판을 바꿀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하승수 변호사는 참여연대 협동처장을 거쳐, 경기도 과천에서 지역운동을 했으며, 현재는 제주도에 살며 제주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하승수 변호사는 참여연대 협동처장을 거쳐, 경기도 과천에서 지역운동을 했으며, 현재는 제주도에 살며 제주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촛불문화제 #하승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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