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코치'는 틀렸다

등록 2008.06.08 12:14수정 2008.06.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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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노사모 모임에 참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 현 정국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한 달이 넘게 진행된 촛불집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쇠고기 사태가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이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코치(?)는 먼저 새삼 '위협적'이라는 말로 현재 국민들이 펼치고 있는 촛불집회의 위력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그렇다. 사실 이렇게 많은 국민이 수도 서울의 심장부인 청와대 주변을 며칠 낮밤을 둘러싸고 대통령에게 말 좀 듣고 정신차리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면, 기본적인 민주주의를 알고 있는 지도자라면 이미 퇴진을 준비해야 옳은 일이겠다. 하지만 마이동풍 우이독경의 이명박 정권은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데서 바로 문제가 시작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쇠고기 문제로 터진 이명박 정권의 퇴진운동보다 중요한 것은 과반의석 가까이 차지한, 오히려 보수층만 놓고 보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한나라당 및 보수여권의 전횡과 독주를 더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고, 그래서 국회를 압박하여 이미 식물정권이 된 이명박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미 시민의 투표로 당선된 정당한 정부를 중도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끌어내리는 것은 헌정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임기를 끝까지 채우도록 도와달라는 말을 하였다.

 

이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많은 국민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 달을 넘게 정부와 싸우고 있는 국민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진 정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였을까?

 

노무현이 맞다, 그러나 틀렸다

 

먼저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처럼 쿠데타를 통한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정권을 획득한 정부와는 달리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정통성 있는 정부다. 그러므로 정통성이 있는 정부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끌어내리는 것은 대한민국 헌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 맞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법 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길게 보면 그 말이 맞다. 너무도 정확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보다, 가봐야 얻을 게 없는 청와대로 가는 것보다, 식물정권이 기댈 수밖에 없는 여권, 한나라당과 그 아류들을 압박하여 국회에서 함부로 입을 못 놀리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대단히 옳은 지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야 현재로서 법적으로 하야시킬 방법이 없고, 국민과의 일방소통을 바꿀 방법도 촛불집회 말고는 딱히 대안이 없다. 하지만 정치권은 다르다. 이들은 국민 여론이 자칫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언제든 말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이다.

 

이들을 여론으로 압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말에도 표심을 좌우할 여론이 좋지 않다고 느낀 이들이 택한 선택은 바로 노무현 버리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바로 이런 주변 때리기가 현재 가장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을 더 길게, 현 시국이 향후 대한민국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아주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된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러한 낭만주의적 정치관이 집권시 낳은 폐해를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을 하자마자 정치권 및 언론에서는 소위 허니문 기간이라는 집권 초 협조기간도 없이 연일 대통령 때리기에 나섰다. 정책을 발표하면 좌파정책, 인사를 하면 코드인사…. 무조건 정부의 비판만이 살 길이었다. 그리고 하지도 않은 정치보복을 한다며 드러눕고, 썩어 문드러질 정도의 냄새 나는 언론비리는 건드리기 전에 언론탄압이라는 엄살을 떨면서 죽는 시늉을 하였다.

 

이들의 이러한 '생즉사 사즉생'의 처절한 저항(?)은 노 전 대통령의 낭만주의적 정치관과 맞물려 집권 내내 부정적 여론몰이에, 적절한 타이밍에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늘 끌려 다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실패는 바로 이렇게 안하무인이고, 후안무치한 수구세력들을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레슬링으로 따지면 사각의 링 안에서 상대방은 팬티 속에 흉기를 숨기고 나서는데, 우리는 페이플레이 하자며 때리면 맞아가며 그야말로 법대로 맞아가며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00일 뒤돌아보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100일 동안의 모습을 보자. 이들은 집권 초부터 친기업, 친언론 정책(비즈니스·프레스 프렌들리라고 해줘야 하나?)을 선포하고 대놓고 밀어주기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밀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70~80년대처럼 이들을 관리도 하겠다고 대놓고 나선다.

 

노무현 정부 때는 '코드인사'라고 그렇게 비판하더니, 이명박 정부의 똑같은 코드인사에는 당연하다는 수식이 붙는다. 심지어 코드인사의 비리도 더 크고, 더 고약한 비리에도 별 문제가 없다. 그저 능력만이 중요하단다. 그러면서 겨우 100일 된 정부가 심각한 능력 부족을 보이는 것도 참 아이러니다.

 

이들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자마자, 탈락한 이명박씨(?) 측근들의 지역구부터 선거비리 조사에 착수했다. 과거 야권의 모습을 보면 정치탄압이라고 죽는 시늉을 하면서 온 언론에서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퇴보시킨 폭거라면서 거품을 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이 없다.

 

또 정권에 비협조적인 인사들, 특히 단체장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였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본 세무조사는 하면 다 걸리는, 그래서 쉽게 정권 차원에서 이용해 먹는 전가의 보도였다. 이를 이명박 정부에서는 수시로 써 먹는다.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라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언론의 통제가 점점 심해지고, 심지어 낙하산인사들을 통해 언론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길들이기, 언론의 통제가 낳은 대표적인 폐해가 바로 조중동이 아닌가?

 

이들의 이런 뻔뻔하고 비윤리적인 태도들이 바로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심지어 강부자, 고소영 내각도 질끈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다. 능력이 우선이라니 어디 한 번 능력이나 발휘해보라고…. 하지만 그들이 발휘한 능력이란 것이 바로 미국에 국민건강 팔아먹기, 일본·중국에 등신외교하기, 경제정책 거꾸로 펴 민생파탄내기,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운하사업, 민영화사업 밀어붙이기 등 이루 헤아리기도 힘들다. 아마 100일간의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관한 백서를 써도 두툼한 책 한 권이 나올 것이다. 그 짧은 기간인데도 말이다.

 

노무현의 낭만, 그리고 국민의 촛불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코치는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수구세력의 권리도 인정해주면서 페어플레이하자는 낭만주의적 정치는 이미 틀렸다. 물론 저들이 반칙을 한다고 똑같이 반칙을 하면서 싸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정부의 일방통행은 결국 국민의 저항을 가져오고 있고, 이러한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저들이 사용한 방법 또한 구시대적이며, 비윤리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폭력과 선전, 선동과 꼼수는 국민들이 아닌 정부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저들은 합법적이고, 정통성 있는 정부로 시작하여, 이미 짧은 시간 만에 비합법적이고 정통성을 상실한 정부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여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쥐잡기에는 꼭 죽는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살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것은 바로 쇠고기 문제의 전면적인 재협상이며, 운하와 민영화 사업의 백지화이다. 물론 현재의 모습으로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말이다. 만약 국민들의 이러한 생존권을 계속해서 건드리게 된다면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은 더욱 놀라운 모습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2008.06.08 12:14ⓒ 2008 OhmyNews
#노무현 #촛불집회 #노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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