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들이 스스로 목을 자른 까닭을 아십니까

[시 더듬더듬 읽기 101]정호승 시 '소년 부처'

등록 2008.06.09 19:08수정 2008.06.1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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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 목 없는 석조불상군.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 목 없는 석조불상군. ⓒ 안병기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 목 없는 석조불상군. ⓒ 안병기

김알지의 난생설화와 내 삶의 궤적

 

십여 년 전이었던가. 내가 난생 처음 신라의 서울이었던 경주에 처음 찾아간 것은. 경주역에서 기차를 내렸다. 5월의 봄밤이 채 제 그림자를 거두지 못한 새벽 5시였다. 어디서부터 옛 서라벌의 흔적을 더듬어 볼까. 서두를 건 없었다. 지도에 표시된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답사해나가면 되니까.

 

첫 번째 답사 예정지인 계림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을 지나자, 첨성대가 어둠 속에서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시절 이래 사진으로는 골백 번도 더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러나 첨성대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속으로 '별 자리를 관측하는 첨성대가 낮에만 문을 연다는 건 모순이다'라고 중얼거렸다. 할 수 없이 굳게 닫힌 문밖에서 첨성대를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첨성대였으며 첨성대가 저만치서 홀로 반짝이는 별이었다.

 

천문대인지 뭔지 고것 별것 아니네. 첨성대를 잠시의 일별하고나서 곧 계림으로 향했다. 몇 발짝 걷지 않아 금세 계림에 도착했다. 숲은 아직 제 품 안의 고요를 깨우지 못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조잡한 동화 형식으로 된 <삼국유사>를 읽었을 때부터 얼마나 이곳에 오고 싶었던가. 알다시피 계림은 김알지의 고향이다.

 

영평 3년 경신 8월에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다가 큰 광명이 시림 속에서 흘러 나옴을 보았다. 자주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속에 황금궤가 있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빛은 궤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또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이 모양을 왕께 아뢰자 왕이 그 숲에 가서 궤를 열어 보니, 그 속에 사내 아이가 있어 누웠다가 곧 일어났다. 마치 혁거세 고사와 같으므로, 혁거세가 알지라고 한 말로 인하여 이름을 알지라 했다. 알지는 곧 우리말의 아기를 이름이다. 사내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와 뛰놀고 춤추었다.

- <삼국유사>의 한 대목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은 계림의 숲 사이를 걸었다. 숲 깊은 곳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어서 오너라. 네가 아는지 모르지만, 너도 우리처럼 알에서 깨어난 난족(卵族)이란다. 여기서 네가 오기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구나.

 

한순간, 듣도 보도 못한 내 전생이 그림자놀이처럼 차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굵고 푸른 알이 보이고 그 속에서 꿈꾸듯 쭈그린 채 긴 부리를 단 태아가 보였다. 태아는 쉬지 않고 알을 쪼아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알의 껍데기가 쩍, 쩍 갈라지더니 한 아기가 태어났다. 긴 속 눈썹, 우뚝한 콧날. 그것은 의심할 바 없는 내 어린 날의 모습이었다.

 

날 잉태하신 어머니는 열 달 동안 자신의 뱃속에서 고이고이 나를 기르셨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에 있는 영양분을 모두 내게 건네주셨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이르러 온갖 종류의 슬픔의 단백질을 먹이셨다. 내 슬픔은 무럭무럭 자라 샛노란 노른자위를 형성해 갔다. 열 달이 꿈결처럼 흘러가고, 마침내 어머니는 몸을 풀어 나를 낳으셨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어머니가 낳으신 것은 한 개의 알이었다. 그러나 내 부리는 아직 허약했으므로 알의 껍데기를 쉬 깨트리지 못했다. 나는 껍데기를 깨려고 부지런히 부리를 쪼아댔다.

 

내 나이 일곱 살. 어머니는 끝내 내가 알을 깨는 순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셨다. 산맥처럼 굽이치는 노동의 힘줄, 가시처럼 까슬까슬한 손을 가진 할머니가 나를 길렀다. 할머니는 정성껏 슬픔의 단백질을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이셨다.

 

아가, 네가 알 밖으로 나오려면 세상에 대한 공포를 이겨야만 한단다. 내 육신은 이미 세상에 나왔으되, 내 정신은 아직 알을 깨트리지 못했던 것이다. 몇 번인가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껍데기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동네 아이들 10여 명을 꼬드겨 집단 가출을 감행했다. 잣정이·고서·포천 삼거리를 지나 망월리까지 걸어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광주가 나올 것이다. 여름날의 신작로는 후끈 달아 있었고 바람 한 점 지나가지 않는 적막이 몇 필의 비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익히 알고 있던 세상을 떠나 딴 세상으로 간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공포인가. 공포가 내 의식 속에서 잠자던 현실을 깨웠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네네 엄마가 기다리고 계실 거다."

 

그래도 무섭다는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았다. 동네 앞 냇가에 이르자,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 무리가 우리를 찾고 있었다. 내 어린 날의 출가 아닌 가출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렸다.

 

목 없는 석조불상군을 만나다

 

그 후로 난 가출 혹은 출가 따윈 생각지도 못하면서 살았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정신의 알을 깨트리지 못한 채 그저 무탈한 삶이나 도모할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난 아직도 껍질을 깨트리지 못한 채 계림의 숲 속에 놓인 하나의 알이었다. 그리고 경주는 어머니가 나를 낳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내 정신의 원초적 고향이었다.

 

계림과 석빙고·월성 등을 둘러보고 난 다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날이 환히 밝긴 했지만 박물관 문이 열리려면 아직 멀었다. 문 앞을 왔다갔다 서성거리고 있던 차에 마침 작업도구를 손에 든 인부 한 사람이 다가왔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대대적인 수리공사 중이었던 것이다. 사정을 말하고 나서 그를 뒤 따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박물관 건물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으므로 바깥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야외전시장에서 목 없는 석조불상군을 만났다. 모두 17체. 누가, 왜 이 돌부처들의 목을 잘랐을까. 이 불상들은 경주 분황사를 발굴할 때 폐우물에서 발견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들이다. 옛적엔 잘못 만들었거나 파손된 불상은 땅에 묻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불상들은 잘못 만들었거나 파손된 것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숭유억불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 목이 잘려 우물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아무튼 처음 보는 광경 앞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불국사·석굴암에서 그날의 여행은 끝이 났다. 그때 이후로, 2~3년간은 경주와 남산에 미쳐서 틈만 나면 경주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a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창작과비평사

시집 표지. ⓒ 창작과비평사

내가 경주에 처음 다녀온 이듬해였던가. 정호승 시인의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라는 시집이 나왔다. 그 시집 속에서 '소년 부처'라는 시를 읽었다.

 

경주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엊어본다

 

소년 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 정호승 시 '소년 부처' 전문

 

시인에 따르면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석조불상군이 목이 없는 까닭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이 스스로 자기 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엊"기만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 부처 되기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

 

완성을 지향히되 늘 미완성에 그치고 마는 인간의 삶

 

무릇 시인이란 존재는 이렇게 엉뚱한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인 모양이다. 시인의 상상이 유쾌하긴 하지만, 난 그 목 없는 석조불상군을 사진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가없는 슬픔을 느낀다. 남산 삼릉계곡 석불좌상이나 용장사터 경주 삼륜대좌불 등 목 없는 불상들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완성되지 못한 돌부처. 그것들은 마치 완성을 지향하지만 늘 그 목전에서 좌절하고 마는 인간의 꿈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호승의 시를 두고 김승희 시인은 "그의 시에는 '맑음의 참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선(禪)' 적인 것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내 나름대로 조금 윤색한다면 "선적인 깨달음이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깨달음은 너무 맑아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들을 시시때때로 슬픔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동안 한 움큼 움켜쥐고 살아왔던 모래가 꼭 쥔다고 쥐었으나 이제는 손아귀 밖으로 슬슬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손바닥에 오직 한 알 남아 있는 모래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 모래일 뿐이다. 그 모래는 언제나 눈물에 젖어 있었다.

 

시집 속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눈물에 젖은 모래"인 그의 시를 읽는 시간은 아득한 슬픔의 초콜릿을 씹는 시간이다. 마음이 아린 듯싶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초콜릿 말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의 목 없는 석조불상군들은 여전히 잘 계시는지? 세상은 넓고 볼 것은 지천이라, 경주 땅을 밟지 않은 지 벌써 몇 년이 흘렀구나. 내 정신의 원초적 고향, 아니 한국인의 원초적 고향이여.

2008.06.09 19:08ⓒ 2008 OhmyNews
#경주박물관 #석조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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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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