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06.09 19:35수정 2008.06.10 23:34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LP 판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 카페를 알게 되었다. 나처럼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LP판의 음악을 사랑하는 주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카페인데 서울 시내에는 이런 음악카페가 제법 많이 있다고 한다.
그곳은 화려한 내부 장식이 되어 있는 것도 최신식 대리석 건물도 아니지만 왠지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이 나를 반긴다. 아마도 학창시절 추억을 그곳에서 만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70, 80세대 또는 386세대라고 하는 중년층들이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는 이 음악 카페에는 디지털 CD가 주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팔천여 장의 LP를 보관하고 있는 주인 아저씨는 한때 회사원으로 일하셨으나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런 음악 까페를 열었다고 했다. LP판을 모으고 오디오를 사면서 와이프와 참 많이 다투었다며 쓴 웃음을 짓는 그에게 왜 아날로그 판이 좋은지 물었다.
"디지털은 깨끗하죠. 소리에 잡음도 없고 하지만..."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인간미가 없잖아요."
0 또는 1로 일축되는 디지털은 라틴어로 디지뚜스인데 손가락을 뜻한다고 한다.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0 또는 1일 가리킨다는 뜻으로 아주 빈틈없고 정확한 것을 말한다. 아날로그는 아날로지아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는 '비유'란 뜻이며 서로 비슷한 것은 대충 같이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도 너무나 정확하고 빈틈이 없으면 주변에 친구가 없지만 뭔가 부족함을 가진 사람은 모두들 그 사람을 도우려고 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개발되면서 모든 것은 전산화되었으며 세상은 1초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다. 그러나 우리들 중년의 가슴속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해질 무렵까지 신나게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일, 중고등학교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런 LP판 음악을 들으며 밤을 지새웠던 일, 음악카페에서 LP판의 긁히는 소리를 오히려 더 즐거워했던 일 등등. 지난 날을 생각하며 절로 마음이 푸근해지지만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는 과연 어떤 추억을 남겨주었나 아니 어떤 추억을 남겨줄 것인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꾸만 내 곁에서 멀어져가는 떠나가려는 아날로그에 연연하는 나는, 과연 시대에 떨어지는 진부한 사람일까? 학창시절에서 현실로 돌아온 내가 일어서려고 할 때, 내가 신청한 마지막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중략)
못 믿겠어~ 안녕이란 그 말을. 안 듣겠어~ 떠난다는 그 말을. "
2008.06.09 19:35 | ⓒ 2008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