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미만' 쇠고기도 광우병 걱정은 그대로

30개월 미만 SRM 수입 가능성에 눈 감은 정부... 전면 재협상 나서야

등록 2008.06.10 13:37수정 2008.06.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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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쇠고기 협상이 지난 4월 타결된 이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염려하는 시민들의 촛불 행진이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는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새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는 것을 연기하고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민간수출입업체의 '자율결의'를 통해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9일에는 박덕배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을 비롯한 정부 관료 4명이 이에 대한 실무를 의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만 금지하면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할까요?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 4월 한-미 양국 간 합의된 수입위생조건으로는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수입하더라도 광우병 위험에 노출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우 교수가 9일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1980년대에 인류계 내로 들어와 많은 사망자를 낸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그리고 에이즈와 유사한 시기에 인류에 그 이름을 알린 뒤 결국 전염병으로 등장한 인간광우병(vCJD).

이 두 질병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나타난다.

둘 다 신종 전염병으로 단순한 접촉이나 공기 등으로는 전염되지 않고 잠복기가 일반적 질병에 비해서 매우 길다. 에이즈는 주로 성적 접촉에 의해서 전파되며 광우병은 식품 섭취로 확산하기에 두 질병 모두 인간의 기본 욕망인 성욕과 식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두 질병 모두 수혈에 의해 전염되고 아직 치료약은 없다.

한편, 에이즈는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한 전 세계적인 홍보와 정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 만 30년이 안된 작년 말까지 누적 사망자가 3천만 명에 가깝고 매년 200만~300만명의 사람들이 감염되고 있다. 이와 반해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은 폭발적으로 발생하던 1990년대를 지나 이제 발병 건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렇듯 두 질병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행에서 차이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이즈 발병은 증가하는데 인간광우병 발병률은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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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긴급 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미국측에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 요청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조금 단순하게 말한다면 그 차이는 방역의 기본 원칙인 '사전 예방 원칙'의 철저한 적용 여부에 있다.


우선 에이즈는 성병 형태로 전파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대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 당국이 개입해 방역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국가가 개인 생활에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영국은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100만에 가까운 건강한 소를 도살 처분했고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200만 마리 정도의 소를 도축했다. 이러한 사전 예방 원칙은 66억의 세계 인구 중에서 약 200여 명 정도의 사망자를 낸 조류독감(국내에서는 전혀 사망자가 없는) 확산 방지에 전 세계가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에서도 적용된다.  

이렇듯 인류가 처음 겪는 신종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전예방 원칙의 철저한 적용이 매우 중요하다. 영국과 EU가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광우병은 비록 전 세계로 확산하고는 있으나 그 발생률은 감소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전 예방 원칙을 적용하고 유지했기에 광우병 발생률이 감소한 것이다. 광우병이야말로 과학에 근거하여 사전 예방 원칙에 따라 접근하면 그렇게 위험한 질병이 아니며, 또 에이즈처럼 유행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이 정부의 일방적 타결로 마무리된 이후 정부는 유독 광우병에 대한 사전 예방 원칙을 무시하는 방침을 표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과학적 내용마저 유포하여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광우병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 사료 정책과 특정위험물질(SRM) 정책이다. 광우병을 전염시키는 99%의 감염력이 이 SRM에 있다. SRM과 단지 접촉만 해도 SRM으로 간주하라는 단서 조항을 생각할 때 그 위험성과 감염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SRM에 대한 규정은 각 나라의 오염 상황이나 식생활 문화, 축산 산업구조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사전예방 원칙에 따라 SRM 자체는 식용이 되어서는 안 되고 모두 폐기처분해야 한다. SRM의 오염 가능성 때문에 선진회수육(AMR)을 식품으로 사용하는 것의 안전성도 항상 논의의 대상이 된다.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해도 광우병 위험에 노출돼

미 FDA SRM 부위 기준에도 못 미친 한국의 수입위생조건. EU의 SRM 기준과 비교할 때도 확연히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 정의석


그런데 지금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30개월 미만 소에서의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을 보면 이러한 SRM 부위와 선진회수육이 그대로 수입되게 돼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모든 과학적, 경제적 자료를 근거로 하여 지난 달 새로 제정된 EU의 SRM 규정에 의할 때 현재 수입될 30개월 미만 소의 뇌, 척수, 안구, 두개골, 더 나아가 소의 창자 등의 부위는 모두 SRM에 해당한다.

더욱이 SRM이 아닌 살코기만 수입할 때에는 30개월 령이라는 소의 나이 판정이 그렇게까지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30개월 령이라는 나이 판정에 따라 SRM을 수입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소의 나이 판정도 매우 엄밀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받아들이고 있는 소의 연령판단은 치아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치아 감별법은 대략적 나이 추정에는 사용되지만 정확한 월령 판단에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내외 교과서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나라인 일본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쇠고기를 수입할 때 더 과학적인 연령 판단법을 제시하라고 요구하였고, 수출국인 미국은 도축된 소의 근육, 뼈, 연골 등의 생리학적 성숙도 등을 고려한 등급법을 적용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으로 연령을 판정하고 있다.

한국민의 식생활 습관과 축산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고려해 볼 때 미국에서 광우병 위험 요소를 유입하면 국내에서 폭발적인 광우병 발생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광우병의 국내 유입과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협상을 해 지금과는 달리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엄격한 수입조건을 달아야 할 것이다. 
#SRM #촛불문화제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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