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게 보물이야? 복원한 것 같은데

역사책에 나오는 절집 곡성 태안사

등록 2008.06.10 19:04수정 2008.06.1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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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태안사 일주문

태안사 일주문 ⓒ 전용호


지난 8일 호남고속도로 주암 나들목으로 나와 국도 18호선을 타고 태안사로 향했다. 말이 국도지 구불구불 2차선 도로는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나면서 보성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한적한 도로. 주변 경치에 한눈을 팔다 태안사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쳐 버렸다. 다시 돌아 다리를 건너 한참을 가니 태안사로 올라가는 입구에 식당 건물이 보인다.

"아직도 그대로 있네."
"그때 비가 몹시 왔지. 우산은 부서지고, 비를 흠뻑 맞고 내려와서는 음식을 먹었는데."


참 꿈 같은 이야기다. 작은아들이 등에 업혀 있을 무렵. 그때는 차도 없었다. 기차를 타고 곡성역에서 내려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가, 버스를 타고 태안사 입구에서 내렸다. 이슬비 정도 내리던 길을 도란도란 걸어서 올라간 숲길은 기억 한편에서 청량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살아나고 있다.

지친 걸음을 쉬어가게 하는 능파각

a 능파각 한국전쟁 때 소실되지 않은 건물로 시원한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더불어 금강문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능파각 한국전쟁 때 소실되지 않은 건물로 시원한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더불어 금강문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 전용호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덮은 비포장 길. 걸어가면 더 좋을 길을 차로 거침없이 올라간다. 다리를 하나, 둘, 여러 개를 건너고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올라서니 능파각(凌波閣)이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국전쟁 통에 목숨을 부지한 건물은 절집에서 떨어져 있는 일주문과 능파각이라고 한다.

난간에 서서 물길을 굽어본다. 숲길을 따라 힘들게 걸어 올라오다 보면 지칠 만한 곳에 다리를 놓고 지붕을 덮었다. 잠시 쉬어가라고. 절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라는 배려를 한 것일까?

바로 위로 경찰충혼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1950년 8월 곡성경찰서는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태안사에 전투본부를 설치하고 유격전을 펼치던 중 기습으로 인해 47명의 경찰이 전사했다고 한다. 전쟁은 절과 사람 모두에게 커다란 아픔을 남겨 놓았다. 충혼탑 앞에는 호국의 달이라 그런지 대형화환이 환하게 웃고 있다.


쉬운 산이 어디 있겠어

먼저 산에 올라갔다 오기로 하였다. 태안사를 감싸고 있는 산은 봉두산이다. 이 산은 원래 산의 형태가 오동나무 속처럼 아늑하다고 해서 동리산(桐裏山)이라고 불렀는데, 오동나무에 봉황이 사므로 산 정상을 봉두산(鳳頭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측으로 돌아 바로 올라가는 가파른 등산로로 들어섰다. 유월의 녹음은 하늘을 덮었다. 20여 분을 가파르게 올라가니 외사리재가 나온다. 1킬로 올라왔다. 정상까지 2.5킬로를 더 가라고 알려준다. 다시 길을 잡으니 완만하게 이어진 능선길이다. 숲을 덮고 있는 떡갈나무며 상수리나무는 하늘로 하늘로 키 자랑을 하고 있는 듯하다.

정상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던데, 바쁘게 걸었는데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보고 올라서면 고개 너머 다시 또 오르막이 나타난다.

"쉬운 산이라더니 그렇지도 않네."
"산은 산이요."
"그래. 쉬운 산이 어디 있겠어."

그렇게 수차례를 넘어서니 정상 표지석이 나타난다. 정상(753m)은 오래 서 있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은 아니다. 도장 찍고 바로 내려섰다. 내려오는 길도 올라가는 길과 별반 차이가 없다. 숲속으로 이어진 길은 절재를 거쳐 3.2킬로를 내려가니 절집으로 안내한다.

a 봉두산 산행 중 세림(초2), 윤성(초4), 재형(초6) 그리고 아내. 세림이가 땀에 젖은 머리를 모아 원숭이 흉내를 내고 있다.

봉두산 산행 중 세림(초2), 윤성(초4), 재형(초6) 그리고 아내. 세림이가 땀에 젖은 머리를 모아 원숭이 흉내를 내고 있다. ⓒ 전용호


a 하산길에 마냥 즐겁다. 숲속을 마음껏 거닐다 보니 애들도 밝아지고 여유로와 진다.

하산길에 마냥 즐겁다. 숲속을 마음껏 거닐다 보니 애들도 밝아지고 여유로와 진다. ⓒ 전용호


일주문을 지나 부도탑에 눈 맞춤

태안사는 학창시절에 역사를 배우면서 좔좔 외던 유서 깊은 절이다. 신라 말 선종이 번성하면서 9산 선문을 개창하였는데, 842년 혜철(蕙哲) 국사가 개창한 동리산문(桐裏山門)이다. 하지만 정유재란과 한국전쟁 중에 불탔다가 다시 옛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절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일주문은 동리산태안사((桐裏山泰安寺)라고 큰 글씨로 쓰여 있다. 다듬지 않은 일주문 기둥이 자연스런 비례를 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정숙이라고 쓴 글씨가 눈길을 끈다. 참 어려운 말인데 예전에는 많이도 썼다.

a 일주문으로 바라본 풍경 스님들이 나무그늘 아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주문으로 바라본 풍경 스님들이 나무그늘 아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전용호


a 광자대사탑 부도탑으로 웅장함과 예술성을 갖추었다.

광자대사탑 부도탑으로 웅장함과 예술성을 갖추었다. ⓒ 전용호


a 광자대사 탑비 비신은 부서져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 귀부와 이수의 조각이 굵고 힘찬 모습이다.

광자대사 탑비 비신은 부서져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 귀부와 이수의 조각이 굵고 힘찬 모습이다. ⓒ 전용호


바로 옆으로 부도밭이 있다. 너무나 잘생긴 부도탑이 눈에 쏙 들어온다. 보물 제274호인 광자대사탑(廣慈大師塔)이다. 광자대사는 고려 초 태안사를 중창하였으며, 이 탑은 광종 원년(950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팔각 형태로 상륜부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균형 잡힌 몸매는 나를 흠뻑 취하게 만든다.

그 옆으로는 몸통을 잃은 보물 제275호인 광자대사비(廣慈大師碑)가 앉은뱅이처럼 엎드려 있다. 현재 비의 몸돌은 파괴되어 일부분만 남아있는데, 비문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충분히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고 있다. 머릿돌(螭首)에 강렬한 조각은 기운이 넘친다. 중앙에 머리를 잃은 가릉빈가의 날갯짓이 헛바람만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너무나 완벽한 또 하나의 부도탑

절집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면 대웅전이 마당을 지나 서 있다. 계단 옆으로 만세루(萬歲樓)와 보제루(普濟樓)란 현판을 단 마루건물이 텅 빈 채 앉아가라고 한다. 기둥 사이로 파란빛 단청을 한 목어를 달았다. 마루에 앉아 대웅전을 바라보며 절집의 한가함을 느낀다. 대웅전 옆 건물에도 마루를 차지한 관광객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a 만세루 마루에 앉아 절집의 한가로움을 즐긴다.

만세루 마루에 앉아 절집의 한가로움을 즐긴다. ⓒ 전용호


a 적인선사 조륜청정탑 너무나 깨끗하여 복원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부도탑.

적인선사 조륜청정탑 너무나 깨끗하여 복원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부도탑. ⓒ 전용호


부도탑이 하나 더 있다던데 보이지 않는다. 절집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저 아래에 있는 부도탑 말고 부도탑이 하나 더 있다고 하던데요."
"아! 보물. 저 위에 있지. 저기 담장 너머로 끝 부분이 보이지."

부도탑은 대웅전 옆으로 있는 절집들 사이 맨 위에 담장을 치고 있었다. 보물 제273호로 지정된 이름도 거창한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寂忍禪師 照輪淸淨塔)이다. 적인선사는 동리산문을 창건한 혜철 스님이다. 가파른 계단 위로 문을 세우고 바로 보여 주지 않는다. 계단에 올라서자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래에 있는 광자대사탑보다 작은 규모. 그리고 너무나 깨끗한 탑.

"아빠! 이게 보물이야? 복원한 것 같은데."

큰아들 재형이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아무리 보아도 너무나 새것이다. 첫눈에 복원을 해놓았다는 선입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옥개석 일부분들이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의심을 떨칠 수가 있었다. 너무나 완벽하게 보존된 부도탑. 옥개석의 지붕골들은 뾰족한 각을 잡고서 마모됨이 없이 천 년 이상을 버텨 왔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였다.

적인선사 조륜청정탑은 혜철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신라말 경문왕 원년(861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기단부의 팔각 각 면마다 새겨놓은 사자는 심한 몸부림을 치는 듯 모양을 바꾸고 있다. 탑신은 문양이 뚜렷하지 않아 알아보기 힘들지만 완벽한 균형을 잡고 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양식을 따라 기왓골을 표현하였으며, 상륜부는 앙화, 복발, 보주 등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a 태안사를 나서며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태안사를 나서며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 전용호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만세루 마루에 앉아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내를 재촉한다. 절을 나오면서 동그란 연못에 하얗게 서 있는 삼층석탑에 들렀다. 연못에 떠있는 섬이 외롭게 보인다.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셨으니 경건하게 참배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나무다리를 건너 작은 섬으로 들어가 탑돌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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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용호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에서 진입하는 방법과 국도 19호선을 따라가다 곡성 압록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는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에서 진입하는 방법과 국도 19호선을 따라가다 곡성 압록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는 없습니다.
#태안사 #봉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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