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좀 만들게 잠 좀 자자!"
카툰 10편으로 바라본 6월항쟁

백만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10개의 카툰 단상들

등록 2008.06.13 15:30수정 2008.06.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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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저는 그곳에 갔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두 발로 내딛고 두 눈에 담았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저를 부끄럽게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감도 주었습니다. 만화 그리는 능력 밖에 없어서, 보고 들은 걸 그림으로 기록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재밌게 봐주세요... 푸타파타

 

a  "명박이형, 이제 GG쳐요"

"명박이형, 이제 GG쳐요" ⓒ 이영민

"명박이형, 이제 GG쳐요" ⓒ 이영민

 

[장면 하나] "명박이형, 이제 GG 쳐요"

 

촛불집회의 실질적 배후세력은 고등학생들이 아닐까? 유모차부대·하이힐부대·넥타이 부대·대학생들까지. 하지만 시작은 그들이었다. 순수하고 직설적인 구호, 예기치 않은 방식.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이라고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아스팔트 바닥에 낙서를 남긴다.

 

동아일보 깃발에 뭔가를 열심히 적는 한 여고생은 말한다. "기사 제대로 쓰라구요. 문제 핵심을 잘 파악 못하고,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안 쓰고 일부분만 보고 비판해요."

 

이런 그들에게 배후론을 제기하고 빨갱이·사탄 등의 이름을 붙인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배후론을 우습게 만드는 참가 단체명 몇 가지를 소개한다. '도봉구에 사는 걱정 많은 사람들의 모임', 다음 카페 '맛동산 부대', '매일 유머'. 그리고 'casto와 푸타파타' 정도?

 

a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걸 골라보세요”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걸 골라보세요” ⓒ 이영민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걸 골라보세요” ⓒ 이영민

 

[장면 둘]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걸 골라보세요"

 

집회거리에 마술사가 나타났다. 가게 오픈 기념행사 단골 손님인 키다리 피에로들도 참여해 풍선을 불어댄다. 수염을 기른 예술가는 시민들이 직접 북을 치게 하는 참여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 곳은 축제장이다!

 

마술사는 몸에 붙인 수많은 쪽지 중에 "세상에서 없애고 싶은 것 하나를 골라보라"고 했다. 한 어머니가 '쇠고기 수입반대'라고 적힌 쪽지를 떼어 딸에게 건넸다. 촛불에 갖다댔더니 순식간에 사라진다.

 

딸과 함께 나온 조태현(41·자영업)씨는 지금의 시위문화가 좋다고 말한다. "6월 항쟁 때는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졌다. 그 땐 그런 방법밖엔 없었다. 그러나 던지고 부수고 할 땐 일반 시민들이 소외되는 부분이 있었다"

 

6살 난 딸은 왜 나왔냐는 질문에 "나쁜 소 먹기 싫어서요"라고 대답한다.

 

 

a  "널려있는 쓰레기는 조중동의 기삿거리다"

"널려있는 쓰레기는 조중동의 기삿거리다" ⓒ 이영민

"널려있는 쓰레기는 조중동의 기삿거리다" ⓒ 이영민

 

[장면 셋] "널려있는 쓰레기는 조중동의 기삿거리다"

 

조중동은 얘기한다. '촛불시위가 시민의 불편을 야기하고, 거리를 쓰레기장으로 만든다. 여긴 무법천지다.' 그러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민들은 각자 필요한 역할을 찾는다. 쓰레기를 줍고, 의료 지원팀을 꾸리고, 김밥과 우비를 나눠준다.

 

다른 곳에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데, 발언들이 참 재밌다. 법적인 측면에서 촛불집회를 논한다.

 

한 여성 변호사의 말이다. "컨테이너가 차도 사람도 못 지나가게 막고 있는데, 어청수가 하는 일이야 말로 도로 교통 방해죄입니다."

 

젊은 청년 변호사도 한마디 한다.

 

"집시법은 야간에 진행되는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합니다. 그러나 헌법에 어긋나는 법은 구속력이 없습니다. 헌법엔 시위·집회에 대해 특정 조건에 의해 허가하는 등의 규정을 만들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집회 97%가 신고 안 된 집회입니다. 과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촛불집회를 계기로 이를 바꿔봤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이 나라 정치인들이 만든 법에 이 나라 정치인들이 저촉되는 셈이 되어 버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광장에선 펼쳐지고 있었다.

 

a  "명박아, 우리 애 좀 만들게 잠 좀 자자!"

"명박아, 우리 애 좀 만들게 잠 좀 자자!" ⓒ 이영민

"명박아, 우리 애 좀 만들게 잠 좀 자자!" ⓒ 이영민

[장면 넷] "명박아, 우리 애 좀 만들게 잠 좀 자자!"

 

광화문 도로 어딘가. 이 곳은 한순간 '대통령께 보내는 롤링페이퍼'가 되어 버렸다. 종이는 아스팔트, 필기도구는 분필이다.

 

이런 글귀도 있다.

 

'물대포가 그렇게 안전하면 청와대 비데로 써라'

 

a  명박산성은 높았다

명박산성은 높았다 ⓒ 이영민

명박산성은 높았다 ⓒ 이영민

 

[장면 다섯] 명박산성은 높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담벼락. 휴전선보다 높은 일명 '명박산성'이 서울 한복판에 깔렸다. "넘자"-"넘지 말자"는 논쟁이 시작됐다. 여기에 대형 스티로폼이 쌓이기 시작하자 광장은 토론의 난장으로 변했다.

 

스티로폼을 갖고 온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들은 컨테이너와 같은 높이의 연단을 만들 생각이었다. 시민 발언대로 이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스티로폼을 명박산성 높이까지 올리자는 시민들도 있었다.

 

조급한 사람들은 '이러다 날 새겠다'며 흥분했다.

 

a  2008년, 서울에 등장한 ‘아고라’

2008년, 서울에 등장한 ‘아고라’ ⓒ 이영민

2008년, 서울에 등장한 ‘아고라’ ⓒ 이영민

[장면 여섯] 2008년, 서울에 등장한 '아고라'

 

내 앞에 앉은 사람들도 싸우기 시작했다.

 

앞의 누나는 '안전문제가 있으니 더 높이 쌓지 말고 연단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에 동조했다. "컨테이너 높이까지 쌓으면 가뜩이나 불안한 스티로폼이 무너질 수도 있고, 흥분한 시민들이 컨테이너에 발라진 기름에 넘어지거나 반대편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옆의 아저씨는 "컨테이너 높이만큼 쌓아 정부에 뭐라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콘크리트 위로 올라가되 깃발만 올리자는 중재안이 나왔다. 결정은 시민들의 박수 소리로 동의를 받았다.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라고 쓰인 펼침막이 올라갈 때는 일종의 희열까지 느껴졌다.

 

온·오프의 경계를 넘는 토론광장. 그 속의 합의, 정치인들에게 꼭 체험시켜주고 싶은 '아고라'가 여기 있었다.

 

a  "촛불 다방입니다~"

"촛불 다방입니다~" ⓒ 이영민

"촛불 다방입니다~" ⓒ 이영민

 

[장면 일곱] "촛불 다방입니다~"

 

새벽 4시. 졸리고 배고픈 시간이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잠시 화장실에 가는 길에 본 거리 곳곳에는 가방을 베개 삼아 잠시 잠을 청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스티로폼 계단에 대한 의견 차로 분위기가 삭막한 가운데 "커피 왔습니다!"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참 따뜻하다.

 

a  "광우병 소고기 너나 쳐먹어"

"광우병 소고기 너나 쳐먹어" ⓒ 이영민

"광우병 소고기 너나 쳐먹어" ⓒ 이영민

 

[장면 여덟] "광우병 소고기 너나 쳐먹어"

 

날이 밝았다. 밤에 비하면 사람들이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몇천의 시민들이 남아있다. 무엇이 이들을 아침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가?

 

점퍼로 얼굴과 가방까지 감싸고 앉아계신 한 할머니. 허리는 굽고 몸채는 허약하신데 목청은 얼마나 크신지. 청와대까지 울림이 느껴질 듯하다.

 

걸쭉한 입담에 속이 너무나 시원하다.

 

a  "기동대의 방송. 적반하장?"

"기동대의 방송. 적반하장?" ⓒ 이영민

"기동대의 방송. 적반하장?" ⓒ 이영민

 

[장면 아홉] "기동대의 방송. 적반하장?"

 

날이 밝으니, 컨테이너 건너편에서 앰프가 울린다.

 

"시민 여러분, 이제 해산해주시기 바랍니다. 날도 밝았으니(여기서 다들 웃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주시기 바랍니다. 해산하시지 않으면 강제진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출근 시간입니다. 시민들의 교통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말.

 

"여러분의 행동을 '국민과 언론'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인 곧 국민인데, 어떤 국민을 말하는 겁니까?"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 국민과 소통을 닫아버린 정부를 탓하고, 주요 외신들은 컨테이너를 도심 한복판에 설치한 정부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데, 어떤 언론을 얘기하는 겁니까? 조중동 얘깁니까?

 

"앰프를 돌려 그 멘트 그대로 청와대에 방송해주세요. 제발!"

 

 

a  상상을 뛰어넘는 시민의식

상상을 뛰어넘는 시민의식 ⓒ 이영민

상상을 뛰어넘는 시민의식 ⓒ 이영민

 

[장면 열] 상상을 뛰어넘는 시민의식

 

집회 현장을 떠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아무 생각없이 도로를 바라보다 문득 어제 생각이나 화들짝 놀라버렸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온갖 팸플릿·포장지·촛농·종이컵이 엄청나게 소비되고, 촛불행렬을 만든다고 중앙선을 따라 수만 개의 초를 갖다놓았던 곳. 바로 그 곳이 다음날 정말 감쪽같이 말끔하게 치워져있다.

 

반면, 같은 시각 조금 더 걷다보니 조선일보 사옥이 눈에 띈다. 현관문이 온갖 스티커와 낙서로 도배되어 있다. 다른 곳은 말끔하고 그 곳만 더러우니 최소한 거리가 더럽다고 나대지는 않을 테지.

 

미숙한 10개의 카툰, 그것을 바라보는 10개의 시선.

당신과 공유하고 싶다.

 

 

[관련기사 | 미국 쇠고기 수입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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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13 15:3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 #촛불시위 #쇠고기 수입 반대 #르포 만화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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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주대학교에 재학 중인 4학년 학생입니다. 언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만화를 그릴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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