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마치고 사진을 찍는데 6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관심 있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기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소개하고, 어디에서 오셨으며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참여라기보다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직접 현장을 보고 싶어 왔습니다. 누군가가 '사탄' 발언을 했던데, '‘사탄'은 '악마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악마 같은 사람들이 이곳에 나왔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오늘이 3번째인데 많은 걸 배운 것 같네요."
덕천에서 온 고영대(63세)라며 이름까지 밝히는 아저씨 말씀은 막힘이 없어 좋았습니다. 마음이 끌리더군요. 해서 우방이라고 하면서 불합리하게 맺어진 협상을 수정하지 않겠다며 배짱을 부리는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군인들이 많이 와서 고생도 많이 했고 죽기도 많이 죽었으니 고마운 나라지요.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진정한 우방이라면 이럴 수는 없지요."
미국을 고마운 나라라고 하면서도 진정한 우방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아저씨 말씀과 표정이 단호했습니다.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데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정답게 얘기를 나누기에 다가가 옆에 앉았습니다. 여학생들만 보다 남학생을 보니 반가워 대화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며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그들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압력을 넣지는 않지만, 선생님들이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빼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어 행사에는 두 번째 나왔다며 불평등하게 맺어진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고 이 대통령의 친기업적 사고를 버리고 사회의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펴달라고 주문하더군요.
개성고등학교 2학년 장원, 박재석이라고 밝힌 두 학생은 시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였는데, 학교를 의식해서인지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사양하더라고요.
[#현장 2] 13일 저녁 7시 '촛불문화제' 시작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미선이의 6주기를 맞는 13일 부산의 '촛불문화제'는 저녁 7시에 열려 저녁 8시 30분에 자유발언을 끝내고 곧바로 거리행진에 들어가 밤 10시 10분쯤 자진 해산했습니다.
쥬디스태화 사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이 4천여 명쯤 되어 보였는데 행사는 효순·미선이의 명복을 비는 묵념으로 시작, 추모시 낭독과 20여 명이 나와 자유발언을 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학생과 시민들은 참가자들과 함께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며 서면의 초여름 밤을 잔치마당으로 만들었습니다.
묵념이 끝나고 무대로 올라온 임봉(여·30세)씨는 효순·미선이를 추모하는 시를 낭독해서 행사장 분위기를 잠시 숙연하게 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기에 다가가 낭독한 시를 메모하고 싶다고 하니까 자신이 지은 시가 아니고 효순·미선이가 다니던 학교 교장선생님이 5주기를 앞둔 작년에 지은 시 ‘우리들은 다 여기 있는데’를 낭독했다고 하더군요.
'이명박 물러가라' 구호를 선창하고 참가자들을 따라오게 한 뒤 자유발언을 시작한 20대 젊은이는 이름 밝히기를 꺼렸습니다. 그는 이 대통령의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은 전 정부가 미국과 협상을 맺을 때 이용했던 교환카드를 부시에게 넘겨준 꼴이라며 분개했습니다.
김종훈 통상교섭 본부장이 협상하러 오늘(13일) 미국에 갔는데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그가 어제 MBC <100분 토론>에 나와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면서 "그런데 믿음이 가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라며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형식적으로 마치고 돌아올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나이는 25세이고 취업 준비생이라며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그에게 "이명박 정부에게 두려움을 느끼나요?"라고 물었더니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신원조회에 걸리면 어떻게 해요, 솔직히 이명박 정부가 무서워요"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슴이 아프더군요.
자유발언이 한참 이어지는 저녁 8시쯤 버스에서 내리는 화물연대 회원들이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합류,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부산 청년들의 모임인 '통일 시대 젊은 벗' 회원 넷이 무대에 올라 효순·미선이를 추모하는 노래(우리 촛불이 되자!)와 함께 가자는 의미가 담긴 민중가요(격문2)를 부르고 구호도 외치며, 쇠고기 재협상이 무시됐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당위성'을 설명했습니다.
'통일시대 젊은 벗' 회원 석미나(여·27세)씨는 "미선이를 살려내라! 효순이를 살려내라! 살인 미국 처벌하라!"를 외치며 자신이 대학생이던 6년 전 서면에서 촛불을 들고 외쳤던 구호라고 소개하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당당한 내 나라를 만들겠다고 두 동생에게 약속했던 저는 직장인이 되었고 당당한 내 나라를 만들려고 또다시 초를 들었습니다. 지금 들고 있는 이 촛불로 효순이와 미선이가 살아오고 이 땅의 미래, 행복을 위해 싸워온 사람들의 눈물과 땀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석미나씨는 이어 "2008년 지금 이 자리에 역사의 현장에서 이명박 정권이 내다버린 건강주권과 우리의 자존심을 이 촛불로 지켜냅시다"면서 "이번에는 끝까지 이길 때까지 싸웁시다, 우리가 이깁니다!"라고 해서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현장 3] 13일 저녁 8시 30분 자유발언 끝나고 도로행진
20여 명이 신청한 자유발언은 저녁 8시 30분쯤 끝나고 2천여 명의 시민이 도로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중고생들과 화물연대 회원들이 앞에서 대열을 이끌었는데 정해진 리더는 없었지만 "오~탄핵 이명박!", "조중동은 폐간하라!", "고시철회 협상무효!", "어청수는 감옥가라!", "버시바우 집에 가라!", "부산시민 함께해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중앙에서 지시가 내려왔는지 경찰들은 호의적이었고, 앞에서 대열을 인도해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가다 창을 내리고 '화이팅'을 외치며 박수를 치는가 하면 중간에서 합류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복개천을 행진하는데 산타페 한 대가 대열 방향으로 경적을 울리며 달려들더니 차 주인이 내려 "차도 다니지 못하게 시위를 한다"라며 시비를 거는 바람에 고성이 오가고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쳤고, 화물연대 회원들이 말려 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행진 대열은 서면 태화백화점을 출발→ 서면 로터리→ 밀리오 레오→ 광무교→ 복개천→ 서면 로터리로 돌아왔는데 길가에 서 있던 시민들이 박수로 환영하는 바람에 잠시 열기가 오르기도 했습니다. 도로행진은 1시간 30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이루어졌고 참가자들은 밤 10시 조금 넘어 행진을 마치고 자진해산 했습니다.
2008.06.14 13:3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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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취업준비생 "이명박 정부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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