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에서 만난 제비전기줄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문일식
아마도 도시사람들에게는 잊혀져버린 바로 제비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대도시 뿐 아니라 여느 웬만한 농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종이 돼버린 제비. 제비는 오래전부터 강남으로 불리는 남쪽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대표적인 여름 철새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참새만큼이나 많았던 새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참새도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제비는 바로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입니다. 박씨를 물고 돌아온 제비, 착한 흥부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악한 놀부를 패가망신케 했던 바로 그 제비는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 따뜻한 봄날 바깥에서 들려오는 제비의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마치 반가운 손님이 집으로 찾아온 듯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진흙을 물어다가 처마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 마음 좋은 어르신들은 제비집이 부서질세라 나무로 만든 받침대를 제비집 밑에 대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제비가 알을 낳고, 알에서 새끼들이 태어나면 더욱 더 분주해지는 제비들은 연신 먹이를 나르느라 더욱 더 잽싼 날갯짓을 했습니다. 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면 잠잠했던 둥지 속에서 노란 부리를 연신 벌리며 제 달라며 아우성치는 제비들을 볼라치면 정말 생명의 신비감에 젖어 들기도 했습니다.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고 훌쩍 커버린 제비는 금세 몸을 불려서 자기 세상인양 날갯짓을 하고 둥지를 나섭니다. 그동안 둥지에 머물렀던 제비들이나 이웃 제비들이 빨랫줄에 나란히 앉아 "지지베베" 하며 재잘재잘 거리는 소리는 그렇게 정겨울 수 없었습니다.
이토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제비의 모습이 깊게 자리 잡고 있지만, 사람들은 각박한 생활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서서히 지워내고야 말았습니다. 모두 어디로 사라진건, 이제는 저 먼 남쪽지방의 인적 드문 곳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급속한 산업발전과 도시화, 그리고 농촌의 생산성 향상 등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해 제비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리고 사람도 모르게 희생양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요?
처마에만 집을 짓던 제비들은 날로 늘어가는 성냥갑 모양의 집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주거공간을 잃어갔을 테고, 제비가 물어오는 진흙이나 곤충들은 다량으로 사용된 농약으로 오염된 것들을 물어왔을 테니 어미든 새끼든 간에 치명적인 해를 입었을 게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떳떳하게 잘 살고 있지만, 제비들은 터전을 잃고, 개체수도 현격히 감소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제비는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제비를 만나는데서 오는 반가움도 있지만, 그들을 통해 '이곳이 때 묻지 않은 깨끗한 곳이 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4일 전남 신안군 증도에 여행 갔다가 한 마을에서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제비들, 민가 처마 밑에 만들어 놓은 제비집, 그 제비집 속에서 어미가 모이를 가져다주길 기다리는 어린 새끼 제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녀석들을 한번 찍어보려고 한동안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