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번에 전격 진행되는 KBS의 특감, KBS 외주제작사 세무조사 등이 '정연주 사장 퇴출'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권의 사정기관으로서 공권력을 발휘하는 감사원, 국세청, 검찰이 비슷한 시기에 KBS를 겨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그 동안 공기관의 경우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나 회계문제가 발생할 경우 치명적이다. 이미 KBS는 지난 1990년 노태우 정권 때 KBS 법정수단 변태지출과 예능 PD들의 제작 비리 사건을 빌미로 삼아 서영훈 당시 KBS 사장을 퇴출시킨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기관의 대대적인 수사가 언론기관이자 공기관인 KBS의 도덕성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 드라마팀에 강도 높은 자료 요청
이번 KBS특별감사(이하 KBS특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정연주 사장 퇴진' 'KBS 수신료 반대' 등을 주장한 일부 보수단체가 제기한 국민감사청구를 감사원이 전격 받아들이면서 결정됐다. 이 때문에 특감이 결정되는 그 순간부터 '표적감사' 의혹이 일었다.
감사원은 지난 11일 29명의 직원을 KBS에 파견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KBS 내부에서는 이번 감사가 2004년 때보다 감사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하고 있다. KBS의 한 관계자는 "각 팀별 회계자료를 비롯해 KBS사보, KBS노보 등에 기재됐던 내용까지 모두 감사 검토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며 "'경영부문을 넘어서는 KBS의 모든 사안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특히 감사원은 드라마 외주제작 비용 처리 등 드라마팀에 자료 요청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2004년 이후 4년간 KBS와 외주제작사 간 체결된 계약서를 비롯해 야외오픈세트 비용, 드라마 기획운영 회의록, 외주제작 비용처리 문제 등의 자료들을 KBS 드라마팀에 요청했다. KBS 드라마팀 관계자는 "외주제작 프로그램과 관련해 감사원이 연일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먼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KBS 특감을 진행 중인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KBS는 큰 조직이기 때문에 특정한 파트가 아닌 여러 파트를 나눠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KBS가 외주비 1000억 원이나 쓰고 있어 그 부분에 자료 요청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팬엔터테인먼트 등 KBS와 주거래 외주사 대상으로 세무조사
최근 방송계에서는 드라마 외주제작사 문제에 집중하는 감사원 특감이 최근 진행되는 외주제작사 세무조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외주제작사 대부분이 KBS와 거래 매출액이 높은 외주제작사 5곳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된 업체 가운데 확인된 곳은 5곳. 이 중 드라마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김종학프로덕션, 삼화네트웍스 3곳과 시사교양 프로그램 독립제작사 리스프로, 허브넷 등 2곳이 포함됐다. 이 밖에도 1~2곳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모두 KBS에 집중적으로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곳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KBS는 물론이고 독립제작사들 사이에서도 "KBS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리를 캐내거나 우회적인 압박카드를 찾기 위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화네트웍스는 현재 KBS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를 제작하고 있으며 지난 3월 KBS와 100억 원 규모의 드라마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해 삼화네트웍스 매출액 대비 약 79.9%에 해당하는 액수다.
팬엔터테인먼트는 2002년 KBS <겨울연가> 이후 <태양인 이제마>, <여름향기>, <장밋빛 인생>, <인생이여 고마워요>, <소문난 칠공주> 등 KBS 주말연속극, 특별기획, 수목 드라마 등을 제작하며 KBS의 주요 드라마 제작을 거의 도맡아 해온 대표적인 외주제작사다.
특히 팬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성실 납세자로 기획재정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2년 동안 세무조사를 면제받았지만 최근 뚜렷한 이유 없이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들어가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허브넷과 리스프로도 예외는 아니다. 리스프로는 KBS <인간극장>, 허브넷은 <VJ특공대>,<주주클럽> 등 인기 장수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드라마 외주제작사를 제외한 KBS 외주제작사 가운데 매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립제작사의 한 관계자도 "이번 세무조사가 정기적인 세무조사가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냐"며 "우연일지 모르지만 KBS와 거래가 많은 외주제작사들이 집중적으로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국세청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국세기본법 81조 10항에 의거, 정확한 세무조사 업체와 세무조사 기간 등을 정확하게 밝힐 수 없다"며 외주제작사 세무조사에 대한 어떤 내용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검찰, 정 사장 '배임혐의 의혹'으로 소환 방침
검찰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검찰은 정연주 KBS 사장을 배임혐의로 소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검찰은 지난 17일 오후 2시까지 정 사장에게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 통보했지만 일단 출석하지 않았다. KBS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변호인단을 통해 검찰 수사에 대한 협조 시기와 방법에 대해 검찰과 협의하겠다"며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이번 검찰 소환에 대해서도 '표적 수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KBS 전 법무팀 직원이 정연주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지 한 달 만에 검찰이 정 사장을 소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급작스럽게 진행된 검찰 소환 통보로 인해 정 사장의 변호인단은 검찰 소환 시점인 17일에서야 꾸려졌다.
검찰에 정 사장을 고발한 전 KBS 법무팀 직원도 '정 사장 퇴진'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KBS 공정방송노동조합(공동 위원장 윤명식)의 조합원으로 밝혀져 "의도성이 짙은 검찰 고발"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KBS는 검찰의 소환에 대해 지난 13일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정 사장의 배임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KBS는 "KBS와 국세청은 이와 같은 소모적인 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 위하여 법원의 조정 권고를 통하여 합리적인 납세기준을 설정하고, 국세청이 명백히 부당하게 부과한 일부 세금은 KBS가 돌려받게 된 것"이라며 "따라서 KBS가 2000여억 원을 승소하고도 일부 세금만을 환급받고 소송을 포기한 것처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언론계 "정연주 사장 퇴출 위한 사전 작업"
언론시민단체, 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번에 진행되는 KBS의 특감, 세무조사 등에 대해 '정연주 사장 퇴출'을 위한 도구 활용 측면이 강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정연주 사장의 검찰 소환에 대해 변호를 맡은 '민주시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은 17일 오전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검찰의 조치는 극히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을 권력기관의 수족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충분히 의심할 만 한 것"이라며 "공영방송의 독립성, 중립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적극 변론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연하게도 공권력이 투입된 세무조사, 특감의 시기가 들어가고 있는 사실은 KBS를 압박하고 있는 근거가 된다"며 "정 사장 압박해 내보내려고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도 11일 비판성명을 발표하고 "감사원이 이번 감사를 방송구조 개편이나 구조조정 등 공영방송 KBS를 통제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할 경우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며 "아울러 공영방송 KBS를 길들이려는 정권의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경고한다"는 뜻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2008.06.18 12:0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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